<김범진의 영화 리뷰> ‘타짜-신의 손’



100번, 1000번, 10000번 얘기해도 결과는 항상 비슷하다. 그냥 숫자 뒤에 붙은 ‘0’의 개수만 늘어갈 뿐이다. 무슨 얘기냐고? ‘형보다 나은 아우 절대 없다’는 영화계 속편 저주의 공식 말이다. 사실 아우가 형보다 꼭 못나야 한다는 법은 없다. 우리네 인간사에서만 보더라도 얼마든지 ‘찌질한’ 형 아래 ‘특별한’ 동생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유독 이게 영화계에서만 들어맞는 공식일 수밖에 없는 것은 아무래도 익숙함과 모험 그리고 독창성의 강조(이걸 때로는 ‘오버’라고도 한다), 삼박자 조율을 하지 못하는 속편 감독들의 능력 부족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일 게다.

속편이란 전편의 흥행에 힘입어 제작사 혹은 투자사가 또 다시 판을 깔고 제작하는 영화다. 전작에서 연장선으로 걸쳐지는 스토리로 관객들의 궁금증을 자극하고 관람을 유도한다. 사실 이렇게만 보면 흥행에 대한 보장성은 충분해 보인다. 그런데도 전작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저주는 영화계에선 깨지지 않는 공식처럼 돼버렸다. 앞서 설명한 3박자의 문제가 속편 제작진이 간과한 부분이라면, 관객 입장에서의 중점은 아무래도 기대감에 대한 배신일 것이다. 관객 대부분은 전작에서 어떤 포인트를 보게 된다. 주연 배우의 존재감, 전체 스토리의 균형미, 혹은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에 대한 호감, 장르에 대한 선택권, 여배우의 노출 호기심까지, 이 모든 게 대박에 일조하는 것들이고 관객들은 기대를 갖는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뒤바꾸는 영화들도 더러 있다. 걸작 중에 걸작으로 꼽히는 대부 시리즈 가운데 ‘대부2’는 지금도 평론가들 사이에서 역대 최고의 걸작으로 꼽는 작품이다. 같은 감독이 연출했다는 점도 있지만, 오히려 같은 감독이었기에 자가당착에 빠질 위험이 가장 클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영화 역사에 이런 기념비적인 작품이 탄생된 것은 오롯이 거장 중의 거장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능력이 집대성됐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사설이 길었다. 지난 3일 개봉해 추석시즌 극장가를 평정한 ‘타짜-신의 손’ 때문이었다. 2006년 개봉해 추석 극장가 최고의 화제작으로 이름을 남긴 ‘타짜’의 후속편이 바로 이번 ‘타짜-신의 손’이다.






# 강형철 감독



우선 전편의 흥행 공식을 짚어 봤다. ‘타짜’는 전형적인 캐릭터 영화다. 주인공 ‘고니’가 도박에 빠진 뒤 복수를 위해 스승을 만나고 실력을 쌓아 결국에는 복수에 성공하고 홀연히 사라져 가는 스토리다. 이른바 주인공이 ‘입신’의 경지에 들어서고 또한 완벽한 ‘권선징악’의 스토리를 얘기하는 것이 바로 ‘타짜’ 1편이었다. 초반 ‘고니’의 초라한 모습과 그가 도박판의 술수에 빠져 가족의 돈을 탕진하고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동정의 표를 던진다. 도박이란 게임의 법칙 속에서 관객은 세상살이의 각박함과 세상이란 도박판이 가진 냉정함을 보게 되고 결국 힘이 있는 자(육식동물)들만 살아남고 힘이 없는 자(초식동물)들은 잔인하게 뜯어 먹히는 모습에서 흡사 자신의 모습을 봤을 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지키고 있는 그 자리에서 어쩌면 자신도 고니처럼 언제 어떻게 권모술수에 빠져 도태되고 낙오되고 끌려 내려올지.

하지만 인생에는 그런 순간 길라잡이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평경장(성이 평씨고 이름이 경장인지는 모르겠다. 아니면 평씨 성을 가진 경찰의 경장 계급 출신인지, 구하기 힘든 허영만 화백의 원작 만화를 통해 확인하기 바란다)을 만나 진정한 타짜의 세계로 빠져들며 고니는 환골탈태의 기회를 잡는다. ‘타짜’ 1편에 등장하는 평경장 집에서 고니의 수련 장면은 흡사 무협지 속 주인공의 무공 연마를 떠올릴 정도로 묘한 기시감이 있다. 아니 고니란 캐릭터 자체가 도박판(강호)에 뛰어든 절치부심의 주인공을 연상케 한다. 무협지를 통해 대중들이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바로 ‘타짜’ 1편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물론 고니의 이런 행적 자체가 ‘타짜’의 흥행 코드 전부는 아니었다. ‘타짜’ 시리즈는 멀티 캐스팅의 교본이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존재감들이 등장한다. 우선 이번 ‘신의 손’편에도 등장하는 ‘떠벌이 타짜’ 고광열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극 전체의 활력을 담당한다. 평경장은 그 어디에서도 어떤 장르에서도 등장하는 주인공의 스승이다. 짝귀는 강호의 혈투에서 패한 뒤 초야에 묻혀 사는 숨은 고수다. 정마담은 주인공 고니를 흔드는 팜므파탈 혹은 양념처럼 등장해야 하는 필요충분조건 ‘섹스 코드’의 메인 디시다. 하지만 ‘타짜’의 진짜배기는 누가 뭐래도 ‘아귀’다. 흉측한 외모,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아귀의 특성을 고스란히 살린 캐릭터는 잔인함과 포악함으로 도박 속 도박을 즐기는 인물로 묘사된다. ‘타짜’ 1편 마지막 고니와 아귀의 대결 시퀀스는 필자가 개인적으로 꼽는 한국영화 역대 하이라이트 ‘TOP 5’에 넣어도 손색이 없는 명장면이다.

사실 이 모든 건 케이퍼 무비(범죄 영화 중 도둑들을 주인공으로 다룬 영화)의 장인으로 통하는 최동훈 감독의 조율 속에 탄생된 것이다. ‘타짜’의 경우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사건 전개와 그 전개 속에서 얽히고설킨 인물들의 실타래가 ‘케이퍼 무비’의 전개 방식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범죄=도박’이란 공식은 기묘하게도 맞아 떨어져 ‘타짜’ 곳곳에 숨결을 불어 넣는다. 다음 최동훈 감독의 영화들만을 묶어서 ‘케이퍼 무비’ 특집을 고려해보겠다.

3일 개봉한 ‘타짜-신의 손’은 글쎄 속편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좀 따르기는 한다. 일종의 번외편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1편의 고니가 아귀를 응징 후 도박판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를 고니의 조카인 함대길이 물려받아 이어가는 구조다. 얘기의 구조도 완벽하게 다르다. 1편이 앞서 설명한 고니의 ‘입신’에 대한 과정이라면, ‘신의 손’은 그저 도박판의 물고 물리는 연속성에 대한 얘기에만 집중한다.

1편의 카타르시스를 그리워하는 관객이라면 이번 영화는 사실 성에 차기 어렵다. 1편에서 고니가 보여 준 압도적인 카리스마도 크게 쇠락한다. 대길은 흡사 1편의 정마담과 같은 도박판의 설계자 같은 느낌이 오히려 강하다. 선악에 대한 구분도 1편에 비해 모호해졌다. 아니 분명히 선도 있고 악도 있다. 하지만 ‘신의 손’은 결국 ‘도박판에선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진리를 더 강하게 얘기할 뿐이다.

1편 자체가 캐릭터로 승부를 걸었고, 그로서 관객들에게 공감을 이끌어 냈다면 ‘신의 손’은 완벽하게 상황적인 묘사 위주로 변주가 됐다. 연출자는 다름 아닌 현재 충무로 상업 코드의 최정상을 지키고 있는 강형철 감독이다. ‘과속스캔들’과 ‘써니’ 단 두 편이 그의 필모그래피 전부다. 하지만 이 두 편으로만 무려 1500만명이 넘는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였다.

그가 두 편의 전작에서 보여 준 상황 설정과 표현, 유머와 인간미가 ‘타짜-신의 손’과 만나 과연 어떤 시너지를 표현해 낼지는 극장에서 확인해보기 바란다. 현재 극장가 최고 화제작인 ‘타짜-신의 손’이다. 그럼 강형철의 ‘타짜’가 또 다른 ‘타짜’의 변주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원조 ‘타짜’ 마니아들의 생각도 그럴 지는 장담하기 힘들다.

<김범진 님은 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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