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소풍



# 경운기를 타고~



고창과 부안 사이에 등대섬이 하나 있다. 부안 쪽의 작당골 마을 앞에서 보면 한 손에 잡힐 것 같은 아주 작은 섬이다. 섬도 작고, 등대도 작다. 보면 그냥 외로워만 보이는, 그래서 보고 또 보면서도 차마 들어가 볼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던 그 작은 등대섬 옆에 커다란 암초가 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았다. 크기는 제법 크지만 육지에서는 거의 보이지도 않는다. 썰물 때 물이 완전히 빠진 뒤에도 수면으로 삼사십 센티미터밖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아무것도 없이 그저 물만 있다가 물이 빠지면 슬그머니 얼굴을 내미는 이 암초에 나로서는 태어난 이후 처음 보는 생물이 대량 서식하고 있었다.

큰 고둥 같기도 하고 어린 소라 같기도 하지만 그 맛은 사뭇 다른 이 생물을 고창 사람들은 ‘따시락’이라 불렀다. 고창 사람이라 해서 다 아는 것은 물론 아니고, 직접 잡아본 사람이거나 먹어본 사람만이 알고 있는 이 ‘따시락’은 골뱅이 무침을 연상케 하면서도 그보다는 훨씬 깊은 풍미에 향기마저 있었다. 신선한 향기를 온 몸으로 흡입한다고나 할까, 하여튼 너무나 색다른 맛이어서 나는 그것을 채취하는 현장을 직접 가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갯마을 사람들의 반응이 천만뜻밖이었다. 

“아이고, 누가 데려간다요?”
터무니없는 꿈은 아예 꾸지도 말라는 투의 그 한 마디에 나는 기가 죽었다. 기가 죽었으면서도 뭐지? 뭐지? 하는 투의 호기심과 의구심으로 한 달여 가까이나 호시탐탐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그 기회를 잡았다. 
“우리랑 항꼬 가 보실라요?”




# 삿대로 노를 젓고~



갯벌 일이 없는 어느 하루 아주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따시락’ 채취를 겸한 소풍을 계획하고 있는데 따라가 볼 생각이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오 맙소사,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내 마음의 진정성이 마침내 그 마음에 닿았구나, 어쩌고 그렇게 내심 흥분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때까지도 그곳이 ‘그곳’인 줄은 당연히 몰랐고, 몸이 편하게 앉아 있을 만한 자리는 한 뼘도 없이 뾰족뾰족한 굴 껍질로 뒤덮인 암초라는 사실은 더더욱 몰랐다. 

“거그는 아무나 못 가요 잉? 데려가지도 않아요.”
아주머니는 한 번 더 다짐을 주었다. 어부한테 특별히 부탁해서 데려가는 것이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라는 얘기였다. 들을 때는 무슨 뜻인지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저 알았습니다, 하고 겸손하게 감사의 표시를 했고,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을 드렸다. 내가 인생 말년에 아리따운 여인과 동거를 하고 있는 중인데 혼자서는 집을 나서고 싶지가 않다고, 그러니 내여자 그녀도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달라고 했더니 아주머니 왈 이미 알고 있단다. 그런 얘기가 나올 줄 알고 벌써 그렇게 조치를 해놓았으니 걱정 말고 두 사람이 함께 나오라는 것이다.

뭐가 뭔지 얼핏 감을 잡기는 어려웠지만, 특별한 대우를 해주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우리는 그렇게 ‘특별한’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 사탕도 좀 챙기고, 과일도 챙기고, 카메라와 필기도구도 가방에 넣고, 장소가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는 몰라도 바다라는 것은 알아서 장화도 신기는 했지만 의복은 그야말로 소풍 차림으로 가볍게 그리고 조금은 ‘멋져 보이게’ 차려 입었다.

우리의 그런 소풍 기분과는 영 다르게 아주머니들은 중무장 차림이었다. 갯벌 일을 할 때와 똑같은 가슴장화에 고무장갑을 끼고 챙이 넓은 모자에 두건까지 얼굴에 뒤집어쓰고 있었다. 게다가 달랑 두 사람뿐이었다. 아주머니 두 분에 우리 두 사람 그렇게 네 명이서 소풍을 겸한 ‘따시락’ 채취 여행을 떠나게 돼있다는 것이었다. 뭐냐 이거, 뭐지? 의혹이 불처럼 일어나고 있었지만 사전 지식이 너무 없다 보니 무슨 질문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조차 없었다. 그저 벙긋벙긋 웃어가며 우리를 데려다 주기로 했다는 어부가 나타나는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 서서히 드러나는 암초



어부는 숭어를 잡아서 숭어 회집에 공급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지금은 숭어가 맛을 내는 계절이 아니라서 그물에 걸린 온갖 쓰레기를 청소하러 가는 길에 ‘그곳’을 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그 사람의 행동거지가 마음에 들면 데려다주고 안 들면 대꾸도 안 하는 그런 매우 개성이 강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곳, 그러니까 ‘따시락’이 대량 서식하는 암초가 있는 주변에 그물을 친 사람은 오직 그 어부 한 사람뿐이고, 따라서 그곳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 평소부터 그 어부에게 믿음을 주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뭐가 이렇게 복잡하고 어지러운가, 갈수록 의문이 증폭되고 있었지만 역시 우리는 뭘 몰라도 너무 모르는 까닭에 무슨 질문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기다리던 어부가 드디어 나타났다. 서부 영화에 등장하는 카우보이 총잡이처럼 담배를 꼬나물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경운기를 몰고 나타난 건장한 체격의 그는 우리가 하는 인사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 대꾸조차 없이 그저 한 마디, “타시오”하고 있을 뿐이었다.

경운기에는 이미 그물 청소 도구가 실려 있었고, 사람이 타서 앉을 만한 자리는 거의 없었다. 달랑 네 명이 올라탔을 뿐인데도 발을 어디에 둬야 할지, 엉덩이는 어디에 의지해야 옳은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 순간에 알았다. 고생문이 활짝 열렸다는 것을.

그렇다고 무슨 후회를 했던 것은 아니다. 후회는커녕 새로운 차원의 고생을 하게 됐다는 긴장감에 더불어 호기심이 부쩍 일어나고 있었다. 그녀라도 혹시 인상을 찡그리며 뭐 이런 소풍이 다 있어,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면 내가 무안해서 하늘이나 보고 있었겠지만, 고맙게도 그녀는 야 이것 참 신기하네, 신기하네 하는 투의 표정으로 벙싯벙싯 웃고나 있었다.
아주머니는 그녀의 적극적인 자세가 기특해 보였던 모양이다. 마치 자신의 딸이라도 대하듯이 장화가 너무 크다고 빨간 장화 한 켤레를 새로 구해 와서 신겨주는가 하면, 모자가 바람에 날아갈 수 있다고 바지락을 담을 때 쓰는 검정색 망으로 손수 정성껏 묶어주기까지 하는데 그것 참, 어떻게 그런 허접한(?) 망으로 그렇게도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인지, 그녀는 순식간에 영화에서나 봄직한 공주? 귀부인? 하여튼 이국풍의 숙녀로 거듭나 있는 것이어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내 가슴이 참 묘하게 설레는 것이었다. 




# 이게 암초라는 사실




“야 이것 참, 이런 소풍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여 잉? 돈이 많다고 갈 수 있는 소풍도 아니고, 그 어떤 권력으로 성사시킬 수 있는 소풍도 아니랑게, 안 그려?”
내 입이 나도 모르게 자꾸 그런 소리를 내고 있었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정말이지 그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소풍이라 해도 아마 과장은 아닐 것이다.

우선 때를 정확히 알아서 그 때에 맞춰 들어가는 게 관건이다. 썰물 시간에 들어가는 것은 맞지만, 덮어놓고 들어가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 물이 너무 멀리 나가 있어도 안 되고, 너무 안 나가 있어도 안 된다. 그 시간은 그 길을 다녀본 사람만이 안다. 그래서 같은 갯가에 살면서도 그 길이 언제 열리는가에 대해서는 모른다. 오직 한 사람, 그 길목에 그물을 쳐놓고 있는 그 사람만이 안다. 그 시간은 그 어떤 바다 전문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그 사람이 “자 갑시다” 하면 그 뒤를 따라나서는 수밖에 없다.

일단 경운기를 타고 물이 빠진 갯벌을 달린다. 한참을 달리던 경운기는 이윽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야 이거 물에 잠겨버리는 거 아냐? 하는 불안이 슬슬 밀려올 때까지, 그러니까 어른 키로 말하자면 바닷물이 무릎에 차오를 정도까지 경운기는 물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멈춘다. 딱 그 자리에서 멈춰야지 안 그러면 돌아 나올 때 경운기가 물에 잠겨버리는 수가 있단다.

어쨌든 경운기가 멈춘 지점에서 약 이십여 미터 저쪽에 모터보트가 대기하고 있다. 누구 다른 사람이 있어서 그것을 대기시켜 놓은 것은 아니다. 어부는 항상 그 지점에 닻을 내려 모터보트를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보트는 일정한 수심이 담보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가슴 높이까지 차오르는 물속을 어부는 걸어서 모터보트가 있는 곳까지 간다. 그리고 경운기가 있는 곳까지 모터보트를 손으로 끌고 와서 필요한 물품을 옮겨 실은 다음 부웅, 하고 시동을 걸어서 목적지로 출발하는 것이다.




# 삭신이 녹아버렸나봐~



목적지에 닿았다 해서 끝난 것은 아니다. 암초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물이 좀 더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모터보트의 엔진을 꺼놓고 이런저런 잡다한 이야기꽃을 피워내고 있노라면 이윽고 암초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면 어부는 삿대를 챙긴다. 스크루가 암초에 걸리면 보트가 망가지기 때문에 삿대로 조심조심 천천히 노를 저어 암초에 접안하면, 그러면 도착에 필요한 절차는 일단 끝난다. 어부는 다시 보트를 삿대로 저어서 자신의 일터로 가버리고, 암초에 상륙한 사람들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소풍놀이에 들어간다.

말을 좋게 하자고 소풍이란 이름을 붙이기는 했지만, 몸을 의지할 만한 것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가 없다. 길이가 족히 한 뼘은 됨직한 굴 껍질만 살벌한 소리를 내며 발에 밟힐 뿐이다. 굴의 입장에서 보자면 천적이랄 수 있는 사람의 왕래가 없는 곳이다 보니 자랄 수 있는 한 자라다가 때가 되면 자연사를 한다. 굴이 죽은 그 껍데기 위에 다른 굴이 붙어서 자라고, 또 자라고, 죽고, 또 죽고, 그리하여 원래의 바위는 형체조차 찾아볼 수 없이 굴 껍질로 뒤덮였다.

오래된 껍질들은 석회로 산화하고, 그리하여 여기저기 도처에 구멍이 뚫렸는데 이 구멍 속에 꽃게를 비롯한 온갖 생물들이 집을 짓고 있었다. 사람이 다가서면 집게발 두 개를 쭉 뻗쳐서 높이 들어 올린 채로 덤벼, 덤벼, 하고 마치 최후의 결전이라도 벌이겠다는 듯 부산을 떠는 꽃게를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절로 터지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꽃게의 허둥거림에 나 자신이 투영되면서 일순간 숙연해지기도 한다.

면적을 따지기로 하자면 아마도 축구장 열 개쯤은 될 것 같았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다고 볼 수도 있는 이 암초는 굳이 비유를 하자면 육지의 축소판이다. 무릎까지 한 번에 쑥 빠져드는 늪이 있는가 하면, 허벅지까지 물이 차오르는 강도 있고, 산도 있으니 영화 같은 것을 찍으려고 만들어놓은 미니어처 같기도 했다. 동행한 아주머니들은 ‘따시락’ 채취에 여념이 없었지만, 우리는 영화 속의 주인공들처럼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느라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다.




# 보트를 끌고 오는 어부



“아유, 온 삭신이 다 녹아나는 것 같애.”
어느 순간 그녀가 중얼거렸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그늘 한 점 없는 곳에서 내리쬐는 태양 볕이 살벌했다. 마치 사막을 헤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세 시간 이상을 엉덩이 한 번 땅에 붙여보지 못한 채 섰거나 혹은 쪼그려 앉아 있기만 했었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갈매기들 소리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마 진즉에 나가떨어졌을 터이었다. 더 이상은 못 견디겠다 싶을 즈음쯤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이 들어오면 나가야 한다. 등대섬 옆에서 그물 청소 작업을 하고 있는 어부가 이제 곧 우리를 데리러 올 것이다. 그것은 약속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물이 암초의 태반을 장악하고 이제 조금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어부는 멀리서 자신의 일을 하고만 있을 뿐 이쪽으로 올 생각은 안 하고 있었다.

“오매, 저 양반이 우리를 오늘 물속에 빠쳐 벌랑가 비네 잉?”
아주머니가 한 마디 중얼거리듯이 내놓고는 까르르 웃었다. 웃자고 한 말이기는 했지만, 듣고 보니 정말로 그랬다. 만약에 어부가 무슨 말 못할 사정이라도 생겨서 보트를 몰고 와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꼼짝 없이 수장을 당할 판이었다. 문득 생각해보니 어부와 우리들 사이에는 아무런 명시적인 약속도 없었다. 우리를 암초까지 데려다 주었으니 때가 되면 으레 데리러 오겠거니 하는 믿음이 있을 뿐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우리의 그 믿음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당연히 두 눈 벌겋게 뜬 채로 수장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안 믿어야 하는가. 안 믿고 미리서 구조신호를 보내야 하는가? 설마, 설마 하면서도 머릿속은 대단히 복잡했다. 자기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서서히 죽어갈 수도 있다고 하는 이 엄청난 명제 앞에서 우리는 갑자기 남쪽 바다의 아이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헬리콥터 소리가 요란하고, 앞뒤 좌우 사방에서는 온갖 선박들이 요란을 떨고 있는데도 시시각각 가라앉고만 있는 세월호 안에서 아이들이 느꼈을 공포와 배신감 그리고 치욕감의 무게가 순식간에 우리를 덮치고 있었다. <다음에 이어집니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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