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환 선생님의 동학농민혁명 이야기


이 글은 갑오농민혁명계승사업회 이사장이신 조광환 선생님(전북 학산여중)이 들려주는 청소년을 위한 동학혁명이야기입니다.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다시금 되새기고 그 의미를 상기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리란 생각에서 연재했던 것을 독자님들의 적극적인 재 연재 요청에 의해 다시 한번 게재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 일본군에 끌려가는 전봉준 장군



결국 1876년 개항 이후 조선은 청일의 각축장이 되었으며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으로 인해 조선에서의 주도권은 청이 장악하게 되었답니다. 이에 일본은 군비를 확충하여 한편으로는 청과의 일전을 준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에서의 정치적 열세를 만회하고자 경제적 침략에 주력하게 되어 조선은 일본의 상품시장인 동시에 원료공급지 및 식량 공급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영국산 면제품이나 냄비 등 값싼 자본주의 생필품을 미끼로 한 일본의 쌀 수입이 늘어나게 되자 국내 쌀값은 폭등하게 되어 조선 민중은 물가고와 식량부족에 허덕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정부는 이전보다 훨씬 많은 세금을 거둬 민중을 수탈하였으며 관직을 직접 매매하는 매관매직도 여전히 성행하였습니다.

이렇듯 우리 민중들은 봉건정부의 말단 하수인인 지방 수령들과 아전들 그리고 청일과 러시아 및 서양 제국주의라는 외세의 침략 앞에 2중의 고통을 겪어야만 했답니다. 따라서 당시 민중들의 입장에서는 외세에겐 무능력하고 비굴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자국민들에게는 호랑이보다도 무섭게 굴던 조정 대신들과 탐관오리들은 물론이거니와 이 땅을 침탈하려는 외세에 대한 반감이 매우 컸을 것이란 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지요.


『비바람이 일어나는 듯, 홍수가 치달리는 듯, 천둥 번개가 우는 듯, 파도가 치는 듯, 불길이 타는 듯, 20세기 제국주의여 !
신성한 먼로주의가 백기를 든 이후로 동서 6대주에 소위 6대 강국이니 8대 강국이니 하는 열강이 모두 치열하게 제국주의를 숭배하여 세계무대에 제국주의가 날뛰게 되었다.
그런 즉 이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즉 민족주의를 분발하는 것이다. 이 민족주의는 실로 민족 보존전의 유일한 방법이다. 이 민족주의가 강하면 나폴레옹 같은 영웅도 어찌할 수 없으니, 오호라 민족을 보존코자 하는 자가 이 민족주의를 버리고 무엇을 취하겠는가? 그런 까닭에 민족주의가 팽창하고 웅장한 모습을 갖추면 어떠한 극렬하고 고약한 제국주의라 하더라도 감히 침입치 못할 것이니, 요컨데 제국주의는 민족주의가 약한 나라에만 침입한다.
비단같고 꽃같은 한반도가 오늘에 이르러 암흑 속에 빠지게 됨은 무슨 까닭인가? 이는 한민족의 민족주의가 강하지 못한 까닭이니, 바라 건데 한국 동포는 민족주의를 크게 떨쳐 ‘우리 나라는 우리가 주장한다’는 자세로 호신부를 만들어 민족을 보전할지어다.』
<1909. 5. 28. 대한매일신보>


위의 글은 일제시대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신 신채호 선생의 글입니다. 선생은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민족주의가 발휘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민족주의는 바로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는 사상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민족주의가 발전하면 어떠한 극렬, 고약한 제국주의라도 감히 침입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과, 한국동포는 민족주의를 대분발하여 “우리 민족의 나라는 우리 민족이 주장한다”는 한마디를 호신부로 삼아 민족을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개항을 전후해서 서세동점(서양세력이 동양을 점령해 나감)에 위기를 느낀 조선인들의 여러 형태의 ‘민족주의적’ 반응이 나타나는데 ‘위정척사(衛正斥邪)운동’, ‘민중운동’ 및 ‘개화운동’이 그것이지요.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바로 민중운동이지요.
민중사상 혹은 민중운동은 19세기초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농민운동을 통해 집적된 힘이 1860년대에 최제우가 창도한 동학과 연계됨으로 사회사상 및 사회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1840~60년대에 중국이 서양 제국으로부터 침략을 당하게 되자 불안을 느낀 민중들은 세계사적 혁명을 예고하는 천지개벽사상과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사상을 수용하게 되었는데, 인내천 사상은 사람이 곧 하늘님이라고 가르치는, 일종의 평등사상을 담고 있었답니다. 이 민중사상이 사회적 실천운동으로 나타난 것이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동학농민운동이 민족주의 성격이 짙다는 것이지요.
동학농민혁명의 반제국주의적이고 반외세적인 성격은 ‘척왜(斥倭), 척양(斥洋)’이라는 구호에서 드러났고, 특히 일제의 경복궁 습격이후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의 2차봉기는 분명 제국주의 침략 세력 앞에서 국가적 독립을 지키려 했던 반외세적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지금으로부터 120여년 전 이 땅의 자주적 근대화를 이룩하고자 하는 꿈을 갖고 소수의 젊은이들이 갑신정변을 일으켰지요.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서재필 등 젊은 그들이 제 가문의 멸문지화까지 감수하면서 갑신정변을 계획했던 배경을 생각하면 120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이 그 때 상황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을 며칠 전 한 신문 만평에서도 묘사를 해놓은 것을 보면 이런 생각이 나만의 생각만은 아닌 듯 합니다.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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