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캐럴 지음/ 박경선 옮김/ 동녘





펜타곤과 미국 패권의 비극을 다룬 ‘전쟁의 집’ 저자 제임스 캐럴이 이번에는 인간의 광기로 얼룩진 폭력의 장소, 예루살렘을 고발한다.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은 그는 사제로 지내면서 외려 이분법적인 종교적 사고에 물음을 던지며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던 때에 그의 마음이 동한 곳은 예루살렘으로, 1973년 초여름에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성지순례를 시작한 그는 그곳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신앙에 대한 확신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예루살렘 성지에 있는 모든 교회에 있는 복제화 수점과, 예수가 처형을 선고받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간 고난의 길로 알려진 ‘십자가의 길’ 14지점이 중세 후기 그리스정교회의 관광 독점에 대응하고자 프란체스코회에서 만들어 낸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곳과 연관된 서사들이 허구였음을 깨닫고, 그는 사제직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신이란 지금 내가 있는 현재의 삶 속에 존재함을 믿는다고 캐럴은 말한다.

수 세기 동안 신앙을 들먹이며 예루살렘을 성지로 만든 이는 바로 수많은 인간들이었으며, 그들은 그들 자신의 신앙에 도취되어 예루살렘이라는 땅이 메시아의 재림과 계시라 이루어질 곳이라 여기며 병적인 열광과 집착을 한다는 것이 캐럴의 시각이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폭력과 전쟁의 역사는 종교라는 명분으로 포장되어 행해졌지만 실상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인간이 의식적으로 지키는 종교가 인간에 의해 왜곡되어 전통으로 굳어졌다고 캐럴은 말한다. 결국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한 인간의 선택일 뿐이라고 저자는 이 책에서 분명히 말한다.

예루살렘에 대한 다소 충격적이면서도 생소하게 느껴지는 그의 시각은 종교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과 반성을 넘어서 예루살렘이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세계에 점철된 폭력의 역사를 정확하게 응시하는 데 도움을 준다. 게다가 이 책은 예루살렘에 대한 정보가 빈약한 국내 독자들에게 고대부터 지금까지 예루살렘을 둘러싼 서구 역사를 관통하는 데 더없이 훌륭한 안내서이다.

정리 이주리 기자 juyu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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