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연재> 숭인동 길 레스토랑 그곳엔 ‘사람’이 있다






그는 왜 자신의 손가락을 자른 것일까?

마사회는 국가에 돈벌어주는 단체다. 그 돈은 경마장에서 나온다. 경마장에 돈을 갖다 바치는 사람들은 국민들이다. 그들중 많은 수는 서민들이다. 아니 대부분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한 달 전쯤 손가락 잘린 사람을 봤다. 숭인동 장외발매소 근처에서다. 며칠 전 그 사람을 다시 봤다. 물었다. 손가락이 왜 그렇느냐고…. 놀랄 만한 답이 돌아온다. 잘랐다는 것이다. 자신이 자신의 손가락을 잘랐다는 것이다. 왜냐고 다시 물었다. 그런 걸 뭐하러 아느냐고 쭈뼛대다가 결국 입을 연다. 놀랄 만한 얘기가 흘러나온다. 결론은 안중근 의사처럼은 아니지만 나름의 큰 뜻을 품고 `단지`를 했다는 것이다. 그럼 그 큰 뜻이란 게 뭘까. 바로 경마다. 말꼬리잡기다. 경마를 끊기 위해서다. 말꼬리를 자르기 위해서다.

그, 40대 후반이다. 인생 60부터라고 하는데 분명 아직 젊은 나이다. 그가 경마에 손을 댄 건 10여년 전이다. 조그마한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을 무렵이었다. 결혼도 한 상태였다. 우연한 기회에 친구 따라 경마장을 찾은 것이 계기였다. 계기는 그를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집 날렸다. 2년전 아내와도 이혼했다. 두 명의 자식들은 아내가 키운다. 그런데도 말꼬리 잡기는 계속됐다. 집 날린 것보다, 아내와 이혼한 것보다, 더 나쁜 짓도 서슴지 않았다. 나쁜 짓이 뭔지는 묻지 않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에겐 오로지 힘차게 뛰는 말굽 소리와 말꼬리잡는 사람들이 질러대는 함성, 경마장 아나운서의 요란한 중계소리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서서히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남은 건 아무 것도 없는 이들이 종종 택하는 방법이다. 손목을 그었다. 피가 흘러나왔다. 생명은 질겼다. 병원에 실려갔다가 며칠 만에 다시 경마장 근처로 돌아왔다. 손 목에 자국이 선명했다. 그 며칠 뒤 손가락을 잘랐다. 스스로에 대한 맹세였다.

약간의 세월이 지나고 잘린 손가락이 아물 무렵, 그는 경마장 근처를 배회하는 자신을 다시 발견해야 했다. 한때 그는 숭인동이 아닌 다른 지역의 장외발매소 앞에서 경마지를 팔기도 했다. 경마를 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손엔 다시 `팔기 위한` 경마지가 아닌 `산` 경마지가 들려있었다.

지금도 주말이면 경마장에 간다. 경마를 하진 못한다. 돈이 없다. 단지 말발굽 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말꼬리 잡는 사람들을 보기 위해서다. 그렇게 라도 느껴보기 위해서다.

그는 용두동에 산다. 용두대교 아래가 집이다. 노숙자로 살아가고 있다.

"대학까지 나왔어요. 그런데 어쩌다 인생이 이리 꼬이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그는 물론 안다. 자신의 인생을 그토록 꼬이게 한 게 뭐라는 걸….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진 않은 표정이었다.
그의 잘려진 손엔 여전히 경마지가 들려있었다.

정서룡 기자 sljung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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