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연재> 숭인동 길 레스토랑 그곳엔 ‘사람’이 있다






인을 떠받드는 동네 `바다`에 푹 빠지다

40대의 멀쩡한 가장을 손가락 없는 노숙자로 만든 마사회 장외발매소는 전언했듯 약 100여미터 간격으로 두 곳이나 있다. 웃기지도 않을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파생되는 숭인동 전체, 다시 말해 인(仁)을 받드는(崇) 동네 전체의 분위기다. 한마디로 완전히 X됐다. 금요일과 토요일, 일요일에만 들려야 할 말발굽 소리가 월요일도 화요일도 수요일도 목요일도 들리는 것이다. 연중 무휴다.

처음 길레스토랑에서 막걸리 한 사발 하다가 들었다. 아니, 주말도 아닌데 왠 말발굽소리가? 의아했다. 익산떡이 해결사다.

"아따, 스크린 경마장 소리 아니여…."

스크린 경마장?

순진한 화자, 처음엔 잘 이해 못했다. 아니 마사회 장외발매소 쯤으로 생각했다. 익산떡의 첨언을 듣는 동안 그 실체를 이해할 수 있었다. 몇 해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 스크린 경마장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스크린 경마장은 길레스토랑이 있는 주차장 바로 옆에 있다. 말발굽소리 끊이지 않는다. 말꼬리 잡는 소리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또 다른 곳에도 있었다. 과거형을 쓰는 건 지금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또다른 낯선 풍경들이 하나둘씩 자리하기 시작했다. PC방이다. 처음엔 그냥 일반 PC방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앞에 `성인`자가 붙어 있는 걸로 봐서 야릇한 동영상 등을 볼 수 있는, 옷 벗고 채팅도 한다는 그 성인 PC방인줄 알았다. `바다 이야기`가 뭔지도 몰랐다. 기자 생활을 하는 화자, 참 한심하게 느껴지실 게다. 기자라고 해서 전지전능한 건 아니다. 변명 아니다.

`바다` 이야기가 들어선 것도 익산떡 통해서 알았다. 익산떡의 숭인동길레스토랑의 이곳 숭인동의 모든 정보가 집결되는 곳이다. 익산떡은 기지국인 셈이다.

낮, 어디선가 요란한 음악소리가 울려댄다. 낭랑한 아가씨들의 목소리가 귓청을 때린다.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럽다. 굉장한 소음이다. 나가본다. 매끈하게 빠진 내레이터모델들이 속옷이 거의 드러난 옷차림으로 몸을 흔들어댄다. 남자 아니랄까봐 눈이 똥그래진다.

성인PC방이 오픈하는 것이다. 음악소리는 일주일에 몇 번씩이고 들려왔다. 오늘은 이 골목에서, 내일은 저 골목에서….
어쨌든 그렇게 하나 둘씩 늘어가던 성인PC방은 최근 `바다 이야기` 사건이 터지기 전엔 한 집 걸러 하나씩 있을 정도가 됐다. 동네를 가득 메웠다. 보이는 것이라곤 울긋불긋 거대한 성인PC방 간판 뿐….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바다이야기`도 두 곳이나 있었다.

이곳을 출입하는 사람들은 익산떡네 길레스토랑으로 몰려들었다. 한 잔 하기 위해서였다. 돈을 따면 기분이 좋아서, 잃으면 기분이 나빠서 그들은 술을 마셨다.

성인PC 게임장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길레스토랑에서 볼 수 있었다. 누가 어떤 곳을 운영하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들은 그들끼리 뭉쳤다. 서로 장사가 어떻느니 하면서 정보를 교환하는 모양이었다. 대부분 기분 좋은 표정이었다. 술도 많이 마시지 않았다. 밤을 새워서 게임장 문을 열어야 하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날, 그들의 얼굴색이 달라져 있었다.

정서룡 기자 sljung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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