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연재> 숭인동 길 레스토랑 그곳엔 ‘사람’이 있다








`바다` 불똥, 숭인동을 덮다

언론에선 연일 성인PC 게임장들의 폐해가 지적되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는 성인PC 게임장들이 서민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이곳 숭인동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창신동에선 소규모 봉제공장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줄을 지어 폐업을 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수십년간 봉제공장을 하며 생계를 이어오던 이들이 성인PC 도박에 빠져 빚더미 위에 올라 앉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공장에 집까지 날리고 이혼을 하는 이들도 급증하고 있다는 얘기도 포함됐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곳 그러니까 숭인동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 성인PC 게임장들이 그처럼 많이 들어선 건 전언했듯 이곳도 창신동과 마찬가지로 서민들의 동네였기 때문이다. 수십년간 원단가게를 운영하며 차곡차곡 돈을 모아온 이들도 성인PC 게임장의 좋은 타깃임은 물론이었다.

하지만 사태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들, 다시 말해 성인PC 게임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얼굴색이 달라진 건 그로부터 얼마지나지 않아서였다. 채 `바다이야기`가 언론지상에 오르내리기 전이었다. 그쪽에 있는 사람들은 미리 감지한 모양이었다. 화자도 정보계통을 통해서나 조금씩 조금씩 접하고 있던 차였다.

그리고 어느날 숭인동 도로 한복판에 커다란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바다이야기`가 슬슬 수면 위로 나올 무렵이었다. 아직 당국의 수사는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플래카드엔 "사행성 게임장은 도박이기 때문에 운영하는 사람도, 게임을 하기 위해 찾은 사람도 사법처리가 된다"는 식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길레스토랑에 모인 운영자들의 얼굴색이 달라진 이유였다. 그들이 수군거리는 이유였다.

그리고 때마침 `바다이야기` 쓰나미가 몰아쳤다. 거셌다.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정치권과 청와대가 거론됐다. 일부 인사의 연루가 사실로 드러나기도 했다.

숭인동에도 여지없이 `바다` 불똥이 튀었다. 불똥은 거친 바람을 타고 숭인동 전역으로 삽시간에 번졌다.

하루가 멀다하고 생겨나던 그때의 풍광이 이번엔 거꾸로 펼쳐지고 있었다. 족히 수십개는 될 듯한 게임장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간판을 내리기 시작했다. 불과 2개월 여만의 일이었다.

길레스토랑에서 만난 그들, 게임장 운영자들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말 없이 술잔만 기울였고, 한숨을 토해냈다.

그들도 피해자였다. 정부의 부실한 대책과 무능한 정책에 의한 철저한 피해자였다. 이곳 숭인동에 문을 연 대부분 성인PC 게임장 운영자들은 열이면 아홉이 그랬다. 그들이 순전히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지역에 비해 뒤늦게 문을 열었다는 데 있다. 이미 `바다이야기`를 비롯, 일찍 문을 연, 그래서 돈 꽤나 번 업주들은 문제 아니었다.

한 운영자에 따르면 왠만한 규모의 성인PC 게임장을 오픈하려면 최소 2억원 이상의 돈이 든다. 그들은 투자한 돈을 몽땅 날리는 수밖에 없었다. 오픈할 때는 순순히 허가를 내주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칼로 자른 격이었다.

아직 `바다` 파문이 채 가라앉지 않은 숭인동은 다소 생뚱한 모습을 하고 있다. 커다랗게 내걸려 있던 성인PC 게임장 간판들이 텅 빈 채로 매달려 있는 것이다.
거기엔 또 어떤 글씨가 채워질지 모른다.

정서룡 기자 sljung99@naver.com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