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 지음/ 삼인





이지상은 노래하는 사람이다. 음악인으로 살아온 20여 년 동안 그가 다니는 곳은 대개 아픈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낮은 공간이었고, 그가 노래하는 건 사람이었다.

“물은 웅덩이를 비껴가지 않는다(영과후진, 盈科後進)”는 말대로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 눈앞의 물웅덩이를 메꾸는 데 진력을 다한 삶이었다. 우회로 없는 길, 질퍽거리는 웅덩이와 씨름하는 삶을 지탱해주는 건 “적당한 갈망, 지나친 낙관”이라는 표어였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은 이런 삶의 낙관을 지지해주는 일이자, 갈망을 다독여주는 일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지 않아도 좋다. 그저 바이칼의 언덕 위에서 너의 모든 짐을 던져보아라. 호수에 작은 파문이라도 새겨진다면 그것으로 너의 삶은 괜찮다. 괜찮은 것이다.”(18쪽) 

2010년 여름부터는 해마다 시베리아로 떠났다. 블라디에서 하바로, 치타에서 이르쿠츠크로, 모스크바에서 노보시비리스크로, 옴스크에서 이르쿠츠크로. 다섯 번의 여정에는 북경에서 몽골로, 울란우데에서 바이칼로 가는 길도 포함되어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서가 아니라 버스와 기차를 타고 대륙의 국경을 넘는 경험. 땅끝마을에서 경의선을 거쳐 만주로 가든지 초량에서 동해선을 타고 청진, 함흥을 거쳐 연해주로 가든지, 남도의 작은 마을이 대륙으로 가는 출발점이길 꿈꾸는 지은이에게 시베리아 철도 여행은 한층 더 의미가 깊다.

우리말 발음으로 꼭 욕같이 들리기도 하는 ‘스파시바’는 러시아 말로 ‘고맙습니다’라는 뜻이다. 가장 많이 써야 할 단어가 욕처럼 들리는 건 재밌는 일이다. 우수리스크 시장에서 만두 파는 아주머니에게 처음 들은 (조금 센 억양의) ‘쓰파씨~바’를 들었을 때 순간 느꼈던 카타르시스를 잊지 못한다.

지은이는 이 말 ‘스파시바’를 낙관의 근거가 된 시베리아에 가장 먼저 바친다.

정리 이주리 기자 juyu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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