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진의 영화 리뷰> ‘슬로우 비디오’





“빠르게 그리고 더욱 빠르게.” 어느새 대한민국의 일상이 돼버린 말이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은, 가장 신기하게 보이는 것 중의 하나로 한국인들의 ‘빠르게’를 외친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채 10분이 걸리지 않고, 전화를 걸면 30분, 20분, 아니 10분 만에 배달을 해준다는 프랜차이즈업체들. 동네 귀퉁이의 한 공사현장, 분명 엊그제 포클레인이 건물 철거에 들어간 것을 봤고 간신히 얼마가 지났을 뿐인데 번듯한 건물 한 동이 들어서있다. 겨우 4~5층짜리 건물 한 동 가지고 그러냐고? 도심 한복판으로 시선을 옮기면 20층, 30층, 50층이 넘는 빌딩들이 순식간에 하늘을 찌를 듯한 위용으로 들어서 있는 모습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사설이 길었다. ‘슬로우 비디오’란 영화를 소개하기 위함이다. ‘헬로우 고스트’를 통해 인상적인 데뷔를 한 김영탁 감독 작품이다. 김 감독은 ‘헬로우~’를 통해 사회의 소수자 혹은 소외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인간미를 스크린에 옮기는 발군의 실력을 과시한 바 있다. 귀신을 보는 한 남자의 얘기란 다소 황당한 설정은 그의 손을 거치면서 가족극의 테두리 속에 절묘한 조화로 재탄생됐다. 물론 그 안에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다소 불균질한 사회 문제도 녹아들어있다. 하지만 개봉 당시 별 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코미디에 발군의 실력을 갖춘 차태현이란 배우까지 나섰지만 역부족일 것으로 보였다. ‘귀신’이란 식상한 코드가 문제였다. 하지만 감독의 선구안과 걸출한 배우가 만들어 낸 시너지효과는 예상 밖의 대박으로 이어졌다. ‘헬로우 고스트’는 그렇게 흥행했다. 말도 안되는 얘기도 말이 되게 만드는 김영탁 감독의 세공력과 말도 안되는 밉상이라도 그가 하면 결코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차태현의 설득력이 만들어 낸 결과였단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의기투합한다. 바로 ‘슬로우 비디오’다. 다음 달 2일 개봉한다.

이 영화 역시 우리가 한 번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설정에서 출발한다. 동체시력을 가진 한 남자의 가슴 따뜻해지는 해피무비란 출발점은 김영탁-차태현 콤비의 파워를 느끼게 하는 기본 공식으로 보인다. 하지만 동체시력이라니…이게 대체 뭐지? 동체시력이라 함은 움직이는 물체를 집중해서 볼 수 있는 능력, 혹은 그 움직이는 물체가 남들보다 더 잘 볼 수 있는 능력 정도로 풀어볼 수 있겠다. 쉽게 말하면 프로야구 선수들이 시속 150km가 넘는 투수의 공을 야구 배트로 정확하게 때려서 담장을 넘길 수 있는 것도 뛰어난 동체시력 때문이라는 얘기다. 이종격투기나 프로복싱 선수들이 상대의 주먹과 발을 휙휙 피하는 것도 바로 이 동체시력이 좋기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슬로우 비디오’ 속 주인공 ‘여장부(차태현)’는 이런 동체시력의 수준을 넘어선다. 몸  속에 완벽한 ‘슬로우 모드’가 탑재된 인간이라고 보면 된다. 눈앞 1m 거리에서 안과의사(고창석)가 던지는 강속구를 천연덕스럽게 맨 손으로 잡아내는 능력. 이 정도면 지구를 지키는 히어로 군단 ‘어벤져스’의 일원으로 합류해도 손색이 없을 게다.





그런 이상한 능력 때문에 어릴 적부터 주변에서 왕따를 당하며 방안에서만 생활하던 여장부는 우연한 기회에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알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고 세상 속으로 나오게 된다. 자신의 그런 비상한 능력을 십분 발휘해 직장도 잡게 된다. 그 직장은 다름 아닌 CCTV 관제소의 비정규직 직원이다. 수십대의 모니터를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종로구 필운동(보통 삼청동이라고 통칭) 일대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자신만의 시선을 그들에게 조금씩 보내기 시작한다.

동네 마을버스 운전기사의 외로운 모습을 보게 되고, 매일 아침 동네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 리어카를 끌고 마을 언덕길을 오르는 소년을 보게 되고, 자신의 어릴 적 첫 사랑 봉수미(남상미)를 보게 되고, 그들의 아픔을 하나 둘씩 자신만의 방식으로 ‘힐링’시켜 나간다.

남들과는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는 그. 그렇기에 빠르게 돌아가는 다른 이들의 삶 속에서 자신의 눈에 비친 느리게 돌아가는 삶의 여유를 알고 있다. 다른 이들의 아픔과 고민을 해결해주는 도시의 천사 역할을 수행해나간다. 봉수미의 휴식처인 커피숍이 있는 골목길 가로등 아래, 남들이 버린 소파를 가져다 놓는 모습이나, 매일 밤 놀이터에서 홀로 야구공을 던지는 마을버스 기사를 위해 CCTV관제소에서 홀로 포수 역할을 해주는 모습, 동네에서 가장 먼저 아침을 여는 소년의 리어카 주변으로 달려가 그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 등은 너무도 상식적이고 일상적이면서도 참 독특하게 다가온다. 여장부의 극중 대사 중 이런 말이 있다. “사람들도 내가 사는 이 세상처럼 조금은 느리게 사는 법을 알게 된다면 정말 좋을 텐데.”

눈으로 본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는 얘기다. 그건 상대방에 대해 선입견을 갖지 않는 아주 좋은 방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일면 부작용도 있을 법하다. 겉모습만으로 그 사람의 내면을 판단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고 싶지 않은 것도 해야 하고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하는 게 우리네 삶의 모습이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일들이 그 사람들의 진짜 모든 것을 다 말해주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영화에서도 이런 고민이 몇차례 등장한다. 수미의 예전 모습만을 기억하고 있는 여장부는 수미가 모든 것을 잃고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혼란스러워한다. 느리게만 보이는 세상과 CCTV로만 보던 걸러진 세상. 장부에게 그런 세상은 진실이 아닌 거짓으로도 , 거짓이 아닌 진실로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탁 감독은 CCTV란 매개체를 통해 직관적 시선이 아닌 객관적 시선의 삶을 관객들에게 요구하는 것 같다. 조금만 상대방과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지내다 보면, 딱 그 거리만큼의 시선 속에 갇힌 진실(혹은 거짓)이 그 상대방의 전부는 아닐 것이라고. 그래서 여장부는 결코 빠르게 달릴 수 없는 세상에서 홀로 산다. 동체시력이 가진 부작용으로 빠르게 달리는 세상 속에 자신을 우겨넣은 뒤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모습은 작금의 세상에 던지는 강한 메시지다. 조금은 느리게 가면서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주변에 항상 있지만 느낄 수 없고 고마움도 모르던 공기의 흐름에 감사함을 전할 여유를 가지자는….

영화 마지막의 다소 고정된 흐름(‘클리셰’라고도 한다)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슬로우 비디오’의 꽤 유려한 흐름을 흩트리는 나쁜 선택으로 보인다. 하지만 ‘슬로우 비디오’란 제목과 동체시력이란 생소한 아이템 그리고 김영탁 감독과 차태현 콤비의 또 다른 해피 바이러스 무비란 점에선 올 가을 필수 관람 작품으로 ‘강추’해도 손색이 없는 영화다. 참고로 남자보다 여성 관객의 호응도가 아주 높을 것 같다.

<김범진 님은 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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