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직 지음/ 창비





국가적 재난에 무력한 정부, 당리당략을 좇는 국회, 온갖 비리에 물든 사법부. 정치의 실종을 의심하는 오늘날이다. 이러한 때 한국시민운동의 궤적을 살펴보는 책 ‘사건으로 보는 시민운동사’가 출간되었다. 저자 차병직 변호사는 이데올로기 논쟁보다는 한국현대사의 사건과 그 과정에서의 시민운동단체 활약에 주목한다. 가려뽑은 사건들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숨가쁘다. 사법부 최대 스캔들인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부터 2000년 대선정국을 뒤흔든 낙천?낙선운동, 경제민주화의 씨앗을 뿌린 소액주주운동, 지금은 정계의 흔한 풍경이 된 인사청문회, 시민들의 발랄한 저항의 전범이 되는 ‘최저생계비로 한달 나기’와 1인 시위 등 가장 최근의 한국현대사를 직접 체험하는 느낌이다.

차 변호사는 한국의 대표적 시민운동단체인 참여연대 창설 당시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으로 시작하여 협동사무처장과 집행위원장을 거쳐 정책자문위원장으로 활동한 한국시민운동의 산증인이다. 그가 경실련, 전국연합, 환경운동연합의 뒤를 이어 등장한 참여연대에 투신해 20년간 활동해온 과정은 한국시민운동 20년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 변호사와 그가 몸담은 참여연대의 첫마음, 상처와 영광을 딛고 숙성시킨 오래된 고민을 담은 이 책은 한국시민운동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시민들이 보기에 언제나 정부는 무능하고, 국회는 권력다툼과 자리싸움의 난장판이며, 사법부는 온갖 특혜와 비리가 횡행하는 곳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가진 자들은 소시민의 삶을 좌지우지하며 권력자와 붙어 지내는 사람들이다.
시민들은 또한 알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이처럼 엉망이라는 것을 푸념만 한다고 해서 지금 이곳의  삶이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한국시민운동의 고민은 바로 이 지점에 서 있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앞장서 나왔다. 입법·사법·행정부를 감시하고 재벌과 특권층의 부도덕한 행위에 책임을 물었으며, 시민들이 정당한 요구를 마음놓고 할 수 있게 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이렇듯 한국시민운동 20장면을 다룬 ‘사건으로 보는 시민운동사’는 그 과정에서 얻어낸 ‘작은 권리’의 목록이며, 한국 민주주의의 성장 일기이다. 또한 20년 전과 다를 바 없는 불통의 정치, 무능한 정당정치, 파렴치한 비리를 해결하기 위한 현재진행형 노력의 기록이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말을 행동으로 증명해온 시민운동단체들에 우리 사회, 특히 정치는 빚진 것이 많다. 저자는 이에 대해 상찬을 받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조그마한 관심이라도 기울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집필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완성해나가는 과정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은 그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정리 이주리 기자 juyu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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