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담 걸쭉한 ‘익산떡’의 육자배기로 풀어내는 情
입담 걸쭉한 ‘익산떡’의 육자배기로 풀어내는 情
  • 정서룡 기자
  • 승인 2014.10.05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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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연재> 숭인동 길 레스토랑 그곳엔 ‘사람’이 있다






세상을 향한 분노…그래도 온정은 있더라

일그러진 얼굴, 일그러진 입, 그보다 더 일그러진 목소리…분노였다. 일그러진 분노. 무참히 짓밟힌 삶에 대한 분노였다. 그 일그러진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일그러진 말의 의미는 중요하지 않았다. 길을 지나던 세 살 먹은 아이도 알 법했다. 그건 분노라는 걸.

어떤 이가 나섰다. 예순은 됐음직한 어르신. 그 어르신은 익산떡 길레스토랑이 문을 열기 전, 그러니까 낮동안 그 길레스토랑 자리에서 옷 등을 판다. 노점상이다. 그리고 늦은 6시 무렵 길레스토랑과 임무교대를 한다. 그렇다고 아예 장사를 접는 건 아니다. 길레스토랑 바로 옆으로 자리를 옮길 뿐이다. 아직 그 어르신에게서 옷을 사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관심이 없어서일 게다. 하지만 어르신은 길레스토랑처럼 거의 매일 문을 연다.

이날도 그랬다. 길레스토랑과 임무교대를 마친 뒤 바로 옆자리에 좌판을 깔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가지 파는 남자를 줄곧 지켜보고 있었던 터이다.

자동차 바퀴에 짓밟힌 가지를 사방에 흩뿌리는 걸 잠시 지켜보고 있던 이 어르신. 갑자기 빽, 하고 소리를 지른다. 이 역시 순식간에 일어난 일. 화자는 적잖이 긴장해야 했다.

상대, 그러니까 40대의 가지 파는 남자는 전언했듯 극도로 분노한 상태였다. 게다가 인사불성으로 술까지 취한 상태. 하지만 어르신 한번 열린 입, 거침이 없었다.

"야이눔아, 여기저기다 그걸 버리면 어떡해!!"

가지 파는 남자, 힐끗 쳐다본다. 순간 감도는 긴장감. 뭔가 한 판 크게 벌어질 게 뻔했다. 바로 곁에서 이를 지켜보는 화자는 물론, 퇴근 시간 발걸음을 재촉하던 행인들도 이 또다른 돌발상황에 숨을 죽였다. 유독 그런 상황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단 한사람이 있었다. 익산떡이다. 그저 배달돼 온 생선들을 전시하고, 물수건으로 탁자를 닦고, 화자 일행에게 막걸리 주전자를 갖다주고….

"야이눔아, 빨리 안줏어?"

또 한번의 불호령이 뒤를 이었다. 버린 가지를 주우라는 얘기다. 명령이다.

그런데 순간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가지 파는 남자가 달라진 것이다. 다소곳해진 것이다. 그는 주춤주춤 자신의 삶이 담긴 리어카로 되돌아갔다. 한마디로 어처구니 없는 변화라고 하면 될까. 적어도 화자에겐 그렇게 느껴졌다. 하지만 가지 파는 남자, 골목길 이곳저곳에 던져진 짓뭉개진 가지의 잔해를 줍지는 않았다. 그렇게라도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켜야겠다는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침묵하던 막걸리 잔을 들어 메마른 입에 대려는 찰나, 어르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제대로 벌어지려나 보다. 헌데….

또 한번의 급작스런 변화가 일어났다. 반전의 대반전이었다. 어르신, 이번엔 옷을 파는 리어카 어디에선가 빗자루를 꺼내든 것이다. 다음은? 그 빗자루로 가지 파는 남자를 때렸느냐고?

하하, 그 정도로 각박한 세상은 아닌가 보다. 세상은 이래서 살 만 한가 보다. 어르신, 가지 파는 남자가 흩뿌려놓은 짓뭉개진 가지의 잔해들을 하나씩 하나씩 모아 담기 시작했다. 가지 파는 남자는 애써 어르신의 행위를 외면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상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정서룡 기자 sljung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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