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백혈병 3자 교섭, ‘반올림’ 배제돼

삼성 직업병 문제해결을 위한 교섭이 합의와 파행을 거듭하면서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반올림-가족대책위-삼성의 3자 교섭에서 가족대책위와 삼성은 ‘조정위원회’에 합의한 반면, 조정위 구성에 반대한 반올림은 결국 교섭에서 퇴장했다.

조정위 구성을 포함 조정위원장까지 합의를 마친 가족대책위와 삼성은 “반올림이 조정위에 반대한다 하더라도 조정위 구성을 완료해 교섭을 이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반올림은 조정위를 중간에 둔 교섭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황이어서, 사실상 삼성백혈병 교섭에서 반올림의 목소리가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과 가족대책위, 반올림은 8일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8차 교섭을 진행했다. 2시간 남짓한 교섭에서 가족대책위와 삼성은 조정위원회 구성에 최종 합의하고, 조정위원장으로 김지형 전 대법관을 선임키로 결정했다. 그동안 조정위원회 구성에 반대했던 반올림은 “조정위원회 관련 논의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며 교섭장을 빠져나갔다.

그동안 삼성 백혈병 교섭에서는 사과-재발방지대책-보상 등 3개의 의제가 중심 쟁점이었다. 그러나 지난 9월 16일 교섭에서 가족대책위가 ‘조정위원회’ 구성을 제안하면서 쟁점은 ‘조정위원회’로 모아졌다. 반올림은 당시 교섭에서 당사자와의 직접교섭을 강조하며 조정위 구성에 합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가족대책위와 삼성은 조정위원회 구성을 재빠르게 준비하며 20여 일만에 조정위원장 선출까지 마쳤다. 그동안 세 차례의 실무교섭에서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시켜 온 결과다. 가족대책위는 실무교섭에서 조정위원으로 5명의 인사를 추천했고, 그 중 한 명인 김지형 전 대법관을 조정위원장으로 추천했다.

3차 실무교섭에서 가족대책위의 제안에 확답을 하지 않았던 삼성은 8일 가대위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울러 삼성 측에서도 2명의 인사를 조정위원으로 추천했다. 조정위원장으로 선임된 김 전 대법관은 추천된 인물들 중 2명을 조정위원으로 선임하게 된다. 가족대책위와 삼성은 향후 조정위원장과의 논의를 통해 조정위의 구체적 역할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3명으로 구성된 조정위는 당장 다음 교섭부터 참여할 전망이다.




문제는 3자 교섭 과정에서 반올림과의 합의가 사실상 배제된 채 조정위원회가 구성됐다는 것. 반올림은 삼성-가족대책위가 진행한 3차례의 실무교섭에서도 배제돼 왔다. 현재 반올림은 조정위 구성이 아닌, 당사자들과의 직접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굳이 조정위원회를 구성하지 않아도 삼성이 의지가 있다면 교섭을 진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반올림은 이미 지난해에 삼성 측에 사과-보상-재발방지대책 등의 요구안을 제시한 바 있다. 8일 열린 교섭에서도 반올림은 요구안에 대한 삼성 측의 답변을 촉구했지만 교섭 쟁점은 조정위 구성으로 쏠렸고, 이에 반발한 반올림은 결국 교섭장을 빠져나갔다.

공유정옥 반올림 교섭단 간사는 “삼성 측에 6가지 보상기준과 관련한 논의를 이어가자고 했더니 삼성 교섭단은 침묵했고 웃기까지 했다. 교섭내용은 삼성과 가대위의 조정위 구성 논의가 중심이 됐고, 반올림은 ‘3가지 의제와 관련해 논의할 준비가 되면 연락하라’고 교섭장을 빠져나왔다”며 “두 차례 교섭에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았지만 여전히 조정위 구성 논의를 이어가고 있었다. 반올림은 조정위 구성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조정위 구성 논의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삼성은 교섭 초기 교섭주체 문제로 시비를 걸더니, 교섭을 하겠다고 말을 바꿨고, 이제는 조정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말을 돌리고 있다. 반올림의 요구안은 검토조차 하지 않은 채 조정위원회 뒤로 숨겠다는 의도”라며 “우리는 삼성이 3가지 의제를 논의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겠다. 반올림은 이 교섭의 불청객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종란 노무사는 조정위원회 구성과 관련 “조정기구의 역할은 중재안, 양보안, 타협안을 내는 것”이라며 “삼성은 조정위원회 뒤에서 직업병 문제를 손쉽게 풀려고 한다. 하지만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는 식으로는 결코 직업병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삼성과 가대위는 반올림의 교섭 불참에 유감을 표하면서도 향후 조정위가 구성된 새로운 틀에서 교섭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조만간 실무교섭을 열어 조정위원회 구성 및 역할 등을 확정해, 다음 교섭 때부터 조정위를 중심으로 한 논의를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조정위 구성에 반대해 온 반올림은 당장 다음 교섭에서부터 참여 여부가 불투명하다. 삼성 역시 다음 교섭에서 반올림 측에 참석을 요청할 지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삼성은 이 역시 조정위와 논의를 한다는 계획이어서, 사실상 교섭주체 문제부터 조정위의 권한으로 넘어가버렸다.

특히 가족대책위가 조정위원회 제안부터 위원장 선출, 구성까지 주도해 온 만큼, 삼성은 조정위원회 활동에 따른 책임을 피해나갈 수 있게 됐다. 백수현 삼성전자 상무는 교섭 직후 브리핑을 통해 “조정위원회 구성은 시작부터 끝까지 가족들이 제안했고 주도했다. 회사 의견은 들어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조정위에 반대하는 반올림과 별도의 협상 테이블을 구성할 계획이 없다”며는 “반올림에 조정위 체제의 교섭 틀로 들어와야 한다”을 강조했다. 백 상무는 “조정위에서는 그동안 반올림, 가대위 모두가 요구했던 사과-보상-예방에 대한 모든 논의를 해 나갈 예정이다. 반올림도 조정위 체제에 참여해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가족대책위 송창호 씨도 “가족대책위의 제안을 삼성이 받아들여 조정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조정은 중재와는 다르게 우리의 의견이 많이 포함될 것”이라며 “반올림에게도 문을 열어 놓겠다”고 밝혔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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