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진의 영화 리뷰> ‘컬러풀 웨딩즈’


유럽 영화, 특히 프랑스 영화는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다. 문화의 나라 혹은 예술의 나라를 자처하는 분위기 탓에 스토리보단 배우들의 감정과 심리 그리고 미장센(영화적 미학)에 집중한 작품이 주를 이룬다. 이런 영화들은 보는 맛을 즐기는 것보단 영화 자체의 심미안적 관점을 관객들에게 봐달라고 주장하는 작품들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우습게도 프랑스 영화가 어렵다고 느끼는 또 다른 이유는 언어적인 부분이다. 미국 영화 특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길들여진 국내 관객들은 프랑스 언어를 통해 다소 불편한 선입견을 드러내기도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필자 주변을 돌아봐도 이런 이유를 언급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가장 섹시하고 매혹적인 언어로 프랑스어를 꼽는 사람들도 있지만 감상 그리고 재미를 위한 언어로서의 프랑스어는 사실 좀 고리타분한 면이 없지 않단 거다.

이런 여러 이유를 들더라도 ‘컬러풀 웨딩즈’는 상당히 의외성을 띠는 프랑스산 코미디 영화다. 역대 프랑스 영화 흥행 ‘톱 10’안에 들 정도로 흥행력을 보장받은 이 유럽의 코미디 영화에 국내 관객들이 얼마나 동조를 할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실제 관람을 하면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유럽영화 특히 프랑스 영화가 가진 동양권의 정서가 너무도 딱 들어맞는다는 것에 놀랄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다문화시스템이 발달했다는 프랑스. 그 다문화를 소재로 한 이 코미디는 한 집안에 네 명의 다른 국적을 가진 사위가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문화적 충돌에 따라 벌어지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순혈주의를 중시하는 국내 관객들에게 이런 류의 코미디영화는 상당히 익숙한 편이다. 하지만 유럽에서 그것도 프랑스에서 이런 소재를 다뤘다는 건 다소 의외다. 하지만 바로 그 의외성이 ‘컬러풀 웨딩즈’를 웃게 만드는 요소다. 이미 익숙한 소재 속에서 신경 쓰지 못했던 포인트를 잡아 관객들의 동조를 이끌어 내는 영리함이 주된 장치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뼛속까지 순수 프랑스 상위 1%를 자랑하는 클로드 부부에겐 금지옥엽으로 키운 딸 네 명이 있다. 첫째와 둘째 그리고 셋째는 1년 터울로 결혼을 한다. 하지만 첫째는 아랍인 그리고 둘째는 유태인, 셋째는 중국인과 결혼을 해 클로드 부부를 경악케 한다. 프랑스의 상류층인 클로드 부부는 의외로 보수적인 면이 강하다. 이들 부부의 세 사위는 모이기만 하면 싸움을 일삼는다. 아랍인 첫째와 유태인 둘째의 싸움은 중동 전쟁을 방불케 한다. 셋째는 유럽인들의 동양인 비하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각자를 빈 라덴 혹은 이소룡 자장면이라고 부르면서 속을 긁는다. 이들 모습을 보는 클로드 부부는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느라 매일이 전쟁이다. 그래도 이들 부부에게는 한 가지 희망이 있다. 가장 애지중지 키워온 막내딸이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

어느 날 막내딸은 부모님에게 자신의 예비 남편을 소개하고 싶다고 한다. 클로드 부부는 막내딸이 평범한 백인에 가톨릭 신자이기를 바란다. 참고로 아버지는 프랑스의 보수당 대통령이던 샤를 드골의 열렬한 지지자다. 막내딸은 예비 남편이 가톨릭 신자이며 이름까지 드골 대통령의 이름을 본 딴 ‘샤를’이라고 소개한다. 구름 위를 걷는 듯 클로드 부부는 꿈에 부풀어 있다. 드디어 막내딸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위를 선택했다고 생각하며 기뻐한다. 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예비 막내 사위의 정체는 바로 흑인. 게다가 예비 남편의 집안에서까지 백인 며느리를 달갑지 않게 여긴다. 클로드 부부와 예비 사돈 집안은 두 손을 꼭 잡고 이들의 결혼을 막는 작업에 들어간다. 이 과정이 우리네 영호남으로 갈라진 결혼문화에 얽힌 해프닝을 그린 영화 ‘위험한 상견례’를 꼭 닮아 있어 웃음을 자아낸다.

결혼은 동양과 서양의 관점에선 아주 극단적으로 대척점에 서 있는 코드다. 동양의 경우 기본적으로 혈연관계 특히 순혈주의에 대한 강박 관념이 극심하다. 쉽게 말해 입양에 대한 부분도 공개 입양 혹은 비밀(비공개) 입양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가족 안의 문제에 대해 타인과의 공유를 극도로 꺼린다. 반면 서양은 극단적으로 결혼과 이혼이 아주 간결하다. ‘컬러풀 웨딩즈’에도 나오지만 시청 공무원 앞에서 결혼 서약을 통해 부부 관계를 증명하고 면허증 발급식의 등록을 하면 그만이다. 이혼 역시 간단하다.

결혼에 대한 관점을 바라보는 지점이 이렇게 다름에도 ‘컬러풀 웨딩즈’가 유럽권 특히 다문화가 발달한 프랑스에서 흥행에 성공한 것은 전혀 보지 못했던 부분을 들춰낸 것이고, 국내 관객들에게도 크게 어필할 충분한 요소를 갖췄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국적과 종교, 다른 피부색으로 갈등을 겪는 얘기는 지금의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국내 극장가에서 코미디 장르의 단골 소재로 쓰이고, 최근에는 지상파 케이블 채널의 드라마와 예능 소재로 ‘다문화’가 적절한 요소로 변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컬러풀 웨딩즈’ 속 결혼 문화에 대한 해석은 놀랍게도 동양적인 시각과 색채가 상당히 강하다. 처가와 시댁으로 나뉘는 양가 부모 그리고 사돈끼리의 기싸움 등은 놀라울 정도로 우리네 결혼 문화와 맞닿아 있다.

결혼 문화에 대한 동서양의 재해석과 공감으로만 ‘컬러풀 웨딩즈’가 채워져 있지는 않다. 코미디 영화답게 곳곳에 폭소를 자아내는 시퀀스가 즐비하다.

유대교 전통에 따라 손자의 할례 후 남은 표피를 정원에 파묻다가 애완견이 이를 집어 먹는 장면, 서로를 빈 라덴, 이소룡 등으로 부르는 호칭문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아랍과 유태인의 문화적 차이, 중국인 셋째 사위에게 무술대결을 요청하는 둘째 사위의 호기, 전자담배를 진짜 담배로 착각해 끄는 장면, 거대한 물고기와의 사투, 사돈 간의 혈투 등은 배꼽을 잡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코믹의 결정판이다.

더욱 칭찬할 만한 요소는 감독의 유려한 연출력이다. ‘컬러풀 웨딩즈’는 자칫 ‘인종차별’로 변질될 수 있는 위험성이 다분하다. 유럽권은 이에 대한 규제가 엄격하다. 감독은 이를 탄성이 쏟아질 정도로 교묘하게 이용해 관객들에게 5초마다 한 번씩 폭소를 선물한다. 영화를  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이런 사실감 넘치는 연출력은 감독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감독 자신이 아프리카계 여성과 결혼을 했고, 그 과정에서의 실제 경험담이 ‘컬러풀 웨딩즈’의 리얼한 코미디로 되살아났고, 스토리의 흐름이 자연스러우면서도 묘한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다.

영화 속 숨은 얘기 가운데 하나. 극중 중국인 사위의 결혼식 장면 속 등장한 수십명의 중국인 가족들. 이들은 실제로 그 중국인 사위의 가족들이란다. 이들 가족의 출연료는 한 명당 우리 돈으로 4000원 정도였다고. 엄청난 흥행을 한 탓에 러닝개런티 계약을 맺지 않은 점을 땅을 치고 후회할까.

프랑스 영화는 어렵다는 선입견, ‘컬러풀 웨딩즈’를 통해 스스로 깨버리는 기분 좋은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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