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 대신 껍질을 먹는 거라고? 어머∼세상에, 아유∼세상에!!
알맹이 대신 껍질을 먹는 거라고? 어머∼세상에, 아유∼세상에!!
  • 김수복 기자
  • 승인 2014.10.23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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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선운산을 다녀오던 길에 산초를 보았다. 건드리면 칼칼한 향기를 아낌없이 발산하는, 건드리지 않아도 주변 사방을 마치 정화라도 하는 듯이 은근한 향기로 꽉 채워놓고 있는 열매가 한둘이 아니었다. 여기도 산초나무요, 저기도 산초나무였다. 산을 다니면서 산초나무와 그 꽃을 더러 보기는 했지만 열매가 그것도 무더기로 달려 있는 것을 보기는 내 생전 처음이었다.

아 이런, 이런 횡재가 어디 있는가. 우리는, 그녀와 나는 서로의 손뼉을 짝짝 쳐주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이거 우리 거다. 우리가 따다가 향신료로 써먹자. 추어탕 같은 비린 음식을 요리할 때 이것만큼 좋은 게 없다. 그런데 아직 덜 익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일 주일만 있다가 와서 따 가자. 우리는 그렇게 약속을 했고, 맹세도 했고,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하기는 했지만, 우리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은 까닭에 처음부터 성공하지는 못했다.

내가 산초의 맛을 처음 안 것은 다섯 살에서 일곱 살 사이 그 어디쯤이었다고 기억된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니까 어쨌든 여덟 살이 되기 전이었다. 그 해의 어느 날 아버지를 따라서 꽤 먼 길을 나섰다. 지금 생각하면 십 킬로미터가 채 안 되는 곳이니까 그리 멀다고 할 수도 없지만, 그때는 자동차를 구경하기 어려웠고, 자전거조차도 아무나 타고 다니던 시절이 아니었다.

구불구불 끝도 없이 이어지는, 끝났는가 하면 다시 시작되고 또 끝났는가 하면 또 다시 시작되는, 논두렁 밭두렁을 지나서 시내를 건너고 고랑창을 뛰어넘어 이따금 다람쥐며 고라니 같은 산 동물들이 사람을 구경하러 나와 있기도 하는, 칙칙한 산길을 오르고 내리기를 몇 번이나 해서 초주검이 돼버린 몸으로 당도한 그곳에 키가 무척 작은 외할머니가 계셨다.
지금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기도 한 애기단풍 군락지인 그곳에서 키 작은 외할머니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존재는 어디에서 시작돼 어디에서 끝나는가, 등등 뭐 그런 복잡한 공부를 하시던 중이었다고 나는 지금도 믿고 있지만, 소문은 영 다르게 나 있었다.



# 가시덤불 사이를 헤쳐가며 산초를 찾는 그녀


흔히 하는 말로 청상이었다. 청상과부. 외할아버지께서 돈을 꽤 많이 좋아하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만 남긴 채로 외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돌아가셨다. 일본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돈을 꽤 모았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그놈의 돈이 원인이 되어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크게 충격을 받았고, 훗날 나의 어머니가 되시는 막내딸을 열세 살 나이에 얼른 시집을 보내버리고 당신은 평소에 다니던 절간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남의 사생활로 말 짓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외할머니가 ‘중놈하고 눈이 맞았다’고 했다. 평소에 사모하고 있던 절간의 스님에게, 남편이 죽자 때가 되었다 하고, 자식도 버리고 들어가 버렸다는 것이었다. 나는 유, 소년기부터 스무 살 이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수도 없이 외할머니의 절간을 드나들었지만, ‘중놈하고 붙어 있는’ 장면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린 동자승들의 찢어진 장삼 자락을 바늘로 꿰매느라 허리를 깊이 숙이고 있는 장면은 수도 없이 보았다.

동자승 가운데 한 명은 장마철의 오이처럼 금방 자라버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와 동급의 개구쟁이 소년이라 여겨서 반말은 기본이요 욕지거리도 곧잘 했지만 그는 어느새 스님 소리를 듣고 있었다. 어른들이 모두 스님이라 부르며 그 앞에만 서면 합장을 하니 나 또한 반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염불도 곧잘 외우는 등 어른스런 면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나로서는 믿어지지가 않았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마 나름대로 연구도 꽤 했었던 모양이다. 다른 사람과 똑같이 나도 그를 스님이라 부르기는 싫고, 그렇다고 이름을 부르기도 좀 그렇고, 나이는 나보다 어쨌든 많으니까 대충 외삼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얼떨결에 외삼촌 하나를 얻었는데 이 가짜 외삼촌은 나의 아버지와 죽이 제법 잘 맞았다. 실제로 뭔가 통하는 것이 있었는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석가탄신일 같은 큰 일이 있을 때면 항상 붙어 있다시피 했다. 한 달여 전부터 대나무를 베어다가 다듬고 말려서 연등을 만드는데 두 사람의 호흡이 그렇게 잘 맞을 수가 없었다. 그 모양을 옆에서 바라보는 나의 심사는 꼬일 대로 꼬이고 뒤틀릴 대로 뒤틀려서 인상을 찡그리지 않는 시간이 거의 없을 지경이었다. 그때의 내 마음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아마 이런 게 아니었을까 싶다.



# 이제 막 익어가는 중의 산초


“저 어린놈이 언제 저렇게 자라서 나의 아버지와 동급이 돼버렸지?”

지금 생각하면 그와 나는 그릇 크기가 달랐던 것이지만, 못난 놈은 역시 못난 생각만 하다가 제 발등을 찍더라고, 나는 계속 헛발질만 해대고 있었다. 무엇보다 밥상머리에서 벌이는 나 혼자만의 신경전은 지금 생각해도 포복절도를 해야만 할 정도로 무지몽매하게 바보스러웠다. 그것이 산초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외할머니께서 여름이면 산초 열매를 송이채로 따다가 간장에 절여 장아찌를 만드셨다. 밥상에 올라온 그것을 생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저것이 대체 무슨 괴물인가 싶었다. 녹두알만한 열매가 숭얼숭얼 매달린 것이 색깔조차 거무튀튀해서 도무지 밥반찬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작은 접시에 간장 색깔을 띤 채로 올라와 있는 그 괴상한 것을 아버지는 좋다, 좋다, 하면서 맛나게 드시고 계셨다. 맞은편의 동자승도 그것을 입에 넣고 무슨 사탕이라도 먹듯이 싸락싸락 소리가 날 정도로 씹어대며 짜릿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로서는 도무지 젓가락조차 대기 싫은 저것이 그렇게도 맛있단 말인가? 은근한 호기심이 나를 추동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선뜻 손이 그쪽으로 가지는 않았다. 망설이고, 또 망설이고, 몇 번인가를 주저주저 하다가 마침내 산초장아찌 한 송이를 집어다가 입에 넣고 싸락 소리가 나게 한 번 씹어보는 순간 강렬한 자극이 내 입안을 뒤집어놓았다.



# 알맞게 익은 산초


놀라서 얼결에 퉤 퉤, 소리를 내며 뱉어버리고 있는 나를 쳐다보며 외할머니는 “그것이 공부란다” 하면서 방그레 웃고 계셨고, 아버지는 “한 이십년쯤 지나면 너도 이 맛을 알 것이다” 하고 계셨고, 동자승 시절의 가짜 외삼촌은 다른 아무 말도 없이 히죽, 한 번 웃어주는 것으로써 내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아놓고 있었다. 그 웃음이란 두 말이 필요 없이 ‘넌 아직 아니야 인마’하는 조롱으로 내게는 읽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

다음 번 밥상 앞에 앉았을 때 나는 그것을 또 집어다가 입에 넣고 있었다. 그 아찔하게 강렬한 향기의 추억이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면야 얼마나 좋을까마는, 오직 하나 가짜 외삼촌과 동급이 되고 싶다는 질투심 때문이었고 보면 그 맛을 온전하게 음미할 만한 여유는 사실상 없었다. 그랬다. 나는 끝내 산초장아찌를 맛나게 먹지는 못했다. 오만상을 찡그린 채로 간신히 씹고, 그리고 독약이라도 삼키듯이 안간힘을 다해 겨우 삼켰을 뿐이었다. 한두 차례 그러고 나면 바야흐로 입맛이 돌 법도 하건만 열흘이 넘도록 매번 그런 꼴이었다.

어린 시절 산초와의 인연은 그렇게 어리버리한 채로 끝났다. 그리고 잊었다. 도시 생활을 하면서 후추 같은 향신료를 더러 먹기는 했지만 산초를 먹어볼 기회를 얻지는 못했다. 세월이 흘러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도시 생활을 그만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다니던 중에 그 시절의 가짜 외삼촌이 주지로 계시는 작은 사찰을 찾아갔을 때, 그때 밥상에 산초장아찌가 올라 있었다.

그것 참 신기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도 고약하기만 했던 산초의 강렬한 향기가, 삼십여 년이 흐른 뒤의 그날 먹었을 때는 그렇게도 신선하게 강렬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날 아마 내심 결심을 했었을 것이다. 앞으로 시골 생활을 하게 되면 내 손으로 산초장아찌를 만들어 먹겠다는 결심을.



# 흑진주 같은 산초


하지만 결심은 결심일 뿐이었다. 내 손으로 산초열매를 송이채로 따다가 장아찌를 담기는커녕 산초열매 자체를 아예 구경조차 해보지 못한 채로 나는 매년 같은 생각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봄에 고사리를 꺾으러 다니면서 산초꽃을 보면 그 자리에 손수건 같은 것을 묶어 표시까지 해두면서도, 초목이 무성한 여름이면 이미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봄이면 산으로 고사리를 채취하러 갔다가 산초꽃을 보는 순간 아 이런, 하고 나 자신과의 약속을 환기하기는 하지만 다시 초목이 무성해지는 여름이면 또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아직 산초가 가루를 내서 후추처럼 사용하기도 한다는 생각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열매가 연할 때 따다가 담그는 장아찌뿐이었다. 비유를 하자면 쌀은 쌀밥만 해먹을 수 있다는 식의 생각에 함몰돼 있었던 셈이다. 어쩌다가 내 생각의 범위가 그렇게도 좁아터지게 제한적으로 구성되었던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하여튼 사실이 그와 같았다.

내가 나 자신의 그렇게도 좁아터진 세계관을 발견하고 놀라기 위해서는 그녀가 필요했다. 그녀, 어느 하루 거짓말처럼 내 곁으로 와 있는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지금도 산초는 장아찌로만 먹을 수 있다는 인식의 포로가 돼있을 것이다. 하여튼 미꾸라지를 사다가 추어탕을 끓이고자 하는데 그녀가 산초가루를 찾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후춧가루밖에 없는데 산초가루를 찾고 있는 그녀가 나는 매우 수상스러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놀라고 있었다.

산초가루도 있단 말인가? 아니 산초를 그렇게도 먹는 것이었어? 아하, 경상도 쪽에서는 그렇기도 한가 보구나.







그 뒤로도 그녀는 가끔 산초가루를 찾고 있었고, 왜 산초를 안 먹고 후춧가루만 먹지? 하고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산초나무가 어떻게 생긴 줄은 모르고 있었다. 나는 산초나무가 어떻게 생긴 줄은 알아도 그것으로 가루를 내 먹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던 반면, 그녀는 가루를 낸 산초의 맛은 알아도 원재료의 생김과 그것을 가공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몰랐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가 한 가지씩은 모르는 채로 툭하면 산초를 찾는다고 산자락 주변을 두리번거리곤 했다. 그러다가 그날, 선운산을 다녀오던 길에 우연히 그것을 보았다. 산초를 찾는다고 열심히 찾아다닐 때는 보이지도 않던 그것이, 그날은 생각도 안 하고 있었건만 갑자기 무슨 개안이라도 된 것처럼 발견이 된 것이었다.

살다 보니 이런 횡재도 있구나 싶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왔노라, 보았노라, 취했노라, 하는 식의 콧노래까지 불러대며 열심히 산초열매를 수습해 들였다. 그야말로 정신없이 따다 보니 그 무게가 심상치 않았다. 너무 욕심을 많이 낸 거 아닌가 이거? 나는 은근 그런 걱정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자기도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시시하게 웃는 것이었다. 요컨대 누구도 주고 또 누구도 준다는, 나눔의 즐거움을 그녀는 이미 상상으로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내가 바지락채취 현장에 나가 있는 동안 혼자서 열심히 알맹이와 껍질을 분리해내는 일을 했다. 그 작은 알맹이를 손으로 일일이 하나씩 껍질과 분리해내는 그녀의 세심한 집중력은 가히 장인에 가까웠다. 분리된 그 모습은 또한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다. 새까만 알갱이 수백 수천 개가 한데 모여 영롱한 빛을 내는데 흡사 흑진주 같았다.





그녀는 흑진주 같은 그것을 절구통에 넣어 빻았다. 열심히 빻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너무도 이상했다. 코에 대고 맡아본즉 아무 향기도 없고, 입안에 넣고 씹어본즉 아무런 맛도 없이 마치 무슨 모래알 같은 것을 분쇄해서 씹는 느낌인 것이었다.

“어? 이거 왜 이러지? 이상하네. 정말로 이상하네.”

아마 그러한 상태를 ‘멘붕’이라고 하는 것일 게다. 그녀는 어리둥절하고, 또 어리둥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마침내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여쭤보았다. 그 결과는 너무도 황당해서, 우리는 몇날며칠을 두고 웃어대야만 했다. 엄마의 말씀인즉 산초는 알갱이를 먹는 게 아니라 껍데기를 먹는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세상에, 아유 세상에.”

어쩔 것인가. 알갱이를 먹는 줄 알고 알갱이만 취하고 내버린 껍데기를 다시 불러들이는 수밖에. 어쨌든 우리는 큰 것을 배웠다. 너무도 큰 것을 배웠다.

그리고 나는 새로이 알았다. 산초 껍데기 가루에는 후춧가루에 없는 향기가 있다는 것을, 박하향 같은 오묘한 향기가 산초 껍데기 가루에는 있다는 것을 완전 새롭게 알았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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