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노정선 연세대 명예교수

남북관계가 인천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변화의 바람을 타고 있다. 북한 대표단의 지난 아시안게임 폐회식 참석으로 정체되었던 남북관계에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북한의 군과 당 실세인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을 비롯 북측 고위급 인사들이 전격 방남했다. 이들은 우리 정부가 제안한 2차 남북고위급 회담을 수용했다. 이제 관심은 10월말~11월초 열리게 될 고위급 회담에 쏠리고 있다.

남북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이후 핵 문제 등 무거운 이슈도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5·24 조치 등을 일시에 전면 해제할 수는 없지만 단계·점진적 조치를 취하면서 서로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나아가 보다 큰 틀의 논의를 이어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관측이다.

박 대통령이 여러 차례 남북 정상 간 만남 가능성을 열어왔다는 점에서 현재 남북대화 무드는 남북정상회담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는 평가다. 다만 우리 정부로선 북측이 과거 유화 제스처를 취하다가 미사일 도발 등 강경으로 돌아섰던 전례가 있는 만큼 향후 실무접촉 등을 통해 신중한 접근방식을 택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드레스덴에서 발언한 ‘통일 대박’이 현실화 되려면 지금부터라도 금강산 관광 재개, 5.24조치 해제 등의 성과를 내기 위해 실천적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위클리서울>은 한반도 정세 분석 전문가이자 오랫동안 민간통일운동에도 참여해온 노정선 연세대 명예교수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았다. 노 교수는 “카지노 용어인 대박이 언어적 투기로 비춰질 공산이 크다”며 “대박이 되려면 지금이라도 금강산 관광 재개, 5.24조치 해제 등 한 두건의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개성공단이 유일하게 유지되는 것 같지만 남북 상황이 전투적으면 변하면 또 폐쇄할 것이다. 개성이 잘 나간다며 희망을 걸고 있지만, 이미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있다”며 “골든타임을 이미 놓치기 시작했다. 세월호가 갈아 앉을 때 골든타임에 손 못써서 다 죽었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골든타임 안에 의미 있는 협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 교수는 “5.24조치를 1~2개월 내에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걸 안 풀고 대화를 이어가려 한다면 결국 노무현 정부 때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이 집권하고 1년 차에 10.4선언을 만들었다면 통일은 30~40% 앞당겨 졌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도 이런 점을 명심하고 실제 행동으로 무엇인가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노정선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 최근 대북 전단 살포로 정국이 어수선하다.
▲ 파주, 연천 등엔 평소 관광객이 수 백명이 오고 간다. 일단은 동네 경제 망치는 행위다. 주민들이 제발 전단 살포 말라는데, 이 사람들(탈북자 단체)에게 전혀 먹히지 않다. 그리고 정부는 이들의 행위를 사실상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고 파시즘이다. 동네 주민들의 진정한 의사표현은 무시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이런 전단 살포는 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나도록 하는 전략 중 하나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탈북자 단체 위원장조차 내란은 일어날 수 없다고 한다. 제가 전단 살포 현장에 있었는데, 영국 기자가 위원장에게 이렇게 하면 내란이 일어나느냐고 질문한다. 그런데 위원장이 “당신은 북한이라는 나라를 너무 모른다. 내란이 일어날 수 없는 나라다”고 답한다. 그렇게 답하면서 전단을 살포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저로서도 이해할 수 없다.


- 북한을 자주 오고 갔다. 북한 분위기는 어떤가.
▲ 전단 살포와 관련해선 크게 동요하지 않는 분위기다. 평양만 해도 그렇다. 북한 경제도 조금씩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에 평양에 갔었다. 지금 평양은 과거 평양이 아니다. 7년 전만 해도 아파트 벽에 페인트가 흘러내렸고, 창문은 비닐이었다. 지금은 깔끔한 45층짜리 아파트가 곳곳에 들어서 있다. 아동병원의 기계는 모두 첨단화 돼 있다. 전국에 그런 시설을 모두 배치할 수 없으니 군 단위 병원은 화상통화하면서 수술을 한다. 거리의 자동차도 많이 늘었다. 교통체증이 발생할 정도다. 우물론 선전형태로 돼 있어서 바닥까지 얼마나 퍼져 있는지 모니텅링 해야 하지만, 과거 남한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보다 나아진 건 틀림없다.
그쪽 목사가 이런 말을 하더라. 자동차(평화자동차) 살 돈은 있는데, 살 수 없는 게 번호판이라는 것이다. 자동차가 너무 많이 나와 있으면 공기가 나빠진다는 이유로 통제한다는 얘기다. 그런 면에선 북한 내부 경제력이 오르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인다. 최대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제 남한이 가지고 있는 인식의 기준을 과거 북한을 바라보던 잣대를 대면 제대로 볼 수 없다.


- 앞서 북한 붕괴론이 언급됐었다. 북한이 붕괴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북한사회를 강력하게 지탱하는 건 ‘사회주의 노동청년회’다. 20만명으로 구성돼 있는 단체다. 이 사람들의 충성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높다. 이 사람들은 북한의 각 행정 분야에 퍼져 있다. 과거 자신의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항일 투쟁하다가 죽어 고아가 된 아이들을 김일성이 거둬들였다. 우리의 경우 항일투사 자손들은 대학도 못갔는데, 북은 그 고아들에게 최고의 교육을 시켰고 최고의 의식주를 선사했다.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충성심이라는 건 세뇌와는 별개의 문제다.


- 청년회 구성원들은 고령화 돼 있을 법한데.
▲ 인천 아시안게임 때 방한한 최룡해가 청년회를 관리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 있다. 그런데 그건 한 때다. 우리 상식으로는 지금쯤이면 빨치산 1세대나 나이가 많은 80대가 권력을 쥐고 있을 것이라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은 40대들이 실제 권력을 쥐고 있다. 지난번 북한에 갔을 때 당국자가 제가 “이번에 들어가시면 조심할 일이 있다”고 하더라. 젊은 사람들에게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더라. 40대 사람들이 북한사회의 실권자라고 하더라.
북한은 은퇴를 안 시키는 문화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권력을 이어가는 게 아니다. 이런 가운데 40대 사회주의 노동청년회에게 암행어사 권한이 있다. 이들 30~40대는 계급이 낮지만 장군들에게 비리가 있으면 당에 보고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빨치산 1세대도 이 사람들에게 고발당하면 인생 끝난다.


- 청년회의 충성심이 아무리 높아도, 결국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국가와 사회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청년회엔 난상토론 그룹이 있다. 자유롭게 발언을 해도 처벌을 안 당하는 그룹이다. 말 잘못하면 다 요덕으로 끌려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그만큼 표현의 자유를 보장 시켜놓은 상태에서 국가발전을 위해 무슨 얘기든 다 해라고 한다. 단 조건은 하나 있다. 지도자(김정은)를 비방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외엔 무슨 말이라도 다 할 수 있다. 비판해야 나라가 발전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상호비판을 어릴 때부터 시킨다. 모이기만 하면 누가 규칙을 위반했고, 공부시간에 졸았고, 횡령했고 등등의 비판을 이어간다. 상호 감시가 부정적인 면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청렴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반부패’로 이어지는 것이다.


- 최근의 남북관계, 어떻게 진단하나.
▲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드레스덴에서 ‘통일 대박’ 발언을 했다. 지금까지 보면 일종의 언어적인 투기였다. 카지노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대박’ 아닌가. 정말 대박이 되려면 지금이라도 금강산 관광 재개, 5.24조치 해제 등 한 두건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
개성공단이 유일하게 유지되는 것 같지만 남북 상황이 전투적으면 변하면 또 폐쇄할 것이다. 개성이 잘 나간다며 희망을 걸고 있지만, 이미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있다. 골든타임을 이미 놓치기 시작했다. 세월호가 갈아 앉을 때 골든타임에 손 못써서 다 죽었다. 천안함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통일 정세를 보면, 말은 좋은데 협상만 들어가면 깨진다. 우선은 우리정부에 능력이 없고, 그리고 전문가가 없다. 현상전문가가 없다. 대한민국 안에 전문가는 많은데 진짜 전문가는 정치선상에 안 올라와 있다.


- 정부에게 요구되는 점이 있다면.
▲ 협상 내용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가능하면 5.24조치를 1~2개월 내에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걸 안 풀고 대화를 이어가려 한다면 결국 노무현 정부 때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노 대통령의 10.4선언은 선언만으로 볼 때 100점 짜리였지만, 말만 하고 끝났다. 실천된 게 하나도 없다. 서해평해지대 만들자고 했는데, 아직도 북측은 만들자고 하는데 포격만 일어난다. 노무현 정부의 가장 위대했으면서 실패한 전략이 통일전략이다. 집권하고 1년 차에 10.4선언을 만들었다면 통일은 30~40% 앞당겨 졌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도 이런 점을 명심하고 실제 행동으로 무엇인가를 보여야 한다.<이 기사는 심층인터뷰로 이어집니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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