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진의 영화 리뷰> '인터스텔라'


플롯은 영화에서 하나의 사건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다. 건물을 짓는데 질이 좋은 벽돌을 사용하느냐 아니면 날림으로 제조된 모래투성이 벽돌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완성도는 하늘과 땅으로 갈라진다. 최근 잠실에 세워진 한 높은 빌딩이 하루가 다르게 흔들리고 뒤틀린다는 소식을 접하면 이해가 조금 빠를까. 그래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눈이 하루가 다르게 높아져 가고 있고, 영화의 완성도가 최고의 미덕으로 추켜세워지고 있는 현실이 결코 이상하지 않다.

10월과 11월은 전통적으로 극장가 비수기로 통한다. 9월의 추석 시즌이 끝난 뒤 각급학교 겨울방학까지의 약 두 달 동안의 기간이 한국영화계에는 휴식기로 통한다. 이 시기에는 대작 영화들이 개봉을 피하고 손익분기점이 낮은 적은 예산의 영화들이 이른바 ‘단타’ 개봉을 하는 시기다. 관객들이 적고 흥행 리스크가 적은 영화들이 몰린다. 사실 이렇게 되니 전반적인 흥행 시장 자체가 축소되는 경향이 크다. 쉽게 말해 파이 자체가 작은 데 먹을 개미들이 급격히 몰리면서 각자에게 돌아가는 양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이다. 이번 10월과 11월은 그 파이가 더욱 극심해져 비수기를 넘어 빙하기란 말조차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빙하기를 녹일 대작 한 편이 개봉해 국내 극장가에 단비를 내려주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다.



# 놀란 감독


개봉 5일 만에 200만 관객을 넘게 동원하며, 올해 초 신드롬을 일으켰던 1000만 영화 ‘겨울왕국’의 흥행 성적을 가볍게 넘어서고 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역시’ ‘최고’ ‘끝판왕’ 등 동원할 수 있는 최고의 수식어를 전부 가져다 붙이며 ‘인터스텔라’를 찬양 중이다. 실제 영화적 완성도 역시 다른 블록버스터의 그것을 넘어서며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한다.

사실 놀란 감독은 해외에선 ‘영화 천재’ 혹은 ‘리얼리티의 신’으로 불릴 정도로 비교 불가의 영역을 구축한 신흥 거장이다. 탁월한 장르적 해석력과 극사실주의에 입각한 스토리 구성, 그리고 시퀀스와 플롯을 갖고 활용하는 그의 연출력은 경악을 넘어 경탄의 수준이란 찬사를 이끌어낸다.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그의 데뷔작 ‘메멘토’다. ‘메멘토’는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한 남자가 아내를 죽인 범인을 찾아나서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 전체의 스토리 배치가 완벽하게 거꾸로 진행된다. 하지만 각각의 시퀀스와 그 안에 자리한 플롯 자체는 아이러니하게도 순방향으로 흐른다. 그만큼 놀란 감독은 영화의 흐름을 한 눈에 꿰뚫고 이를 활용할 줄 아는 지능적이고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감독이다.

그의 이름을 전 세계에 떨친 작품은 공교롭게도 코믹스 원작이자 전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으로 손꼽히는 ‘배트맨’ 트릴로지(3부작)다. ‘배트맨 비긴즈’ ‘다크 나이트’ ‘다크 나이트 라이즈’로 이어지는 영화를 통해 놀란 감독은 ‘만화를 현실로 끄집어 낸 위대한 신’이란 찬사 중의 찬사를 받았다. 3편이 연이어 개봉하면서 전 세계는 그야말로 ‘멘붕’ 상태에 빠졌다. 코믹스의 만화적 상상력을 놀란 감독처럼 해석한 이는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었기에 사실 거부감이 큰 면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영화가 차츰 열광적인 마니아들을 만들어냈고, 결국에는 전 세계 극장가 흥행 시장을 재편하면서 놀란 감독은 말 그대로 전 세계 영화계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기적을 선보였다.

놀란 감독의 마니아들은 국내에도 두텁게 형성돼있다. 그의 철학적이고 메소드적인 스토리 라인에 다소 거부감을 느끼는 영화팬도 분명히 있다. 놀란 감독의 영화에는 ‘엔터테인먼트가 없다’고 혹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조건을 배제하더라도 그의 영화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완성도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인터스텔라’는 놀란 감독을 ‘입신의 경지’로 이끄는 정점에 서게 할 작품임에 틀림없다.



# 영화 `인터스텔라`


영화는 무려 169분의 러닝타임을 자랑한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이 살 수 없게 된 지구를 버리고 새로운 별을 찾아 나선 사람의 얘기를 그린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익히 봐온 기본적인 기획 콘셉트다. 하지만 놀란의 영화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는 스크린을 통해 구현된 현실과는 다른 완벽한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과학적 학문의 기본이라고 부르는 이론 물리학 개념을 도입했다. 시간을 분해하고 가공해 물리학이 도달할 수 없는 불가능의 영역으로 불리는 시간의 역행을 만들어 냈다.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 킵손의 ‘웜홀’ 이론을 도입해 스토리를 구성했다. 스토리는 놀란 감독의 친동생이자 그의 오랜 영화적 동지 조나단 놀란이 담당했다. 그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위해 킵손이 교수로 재직한 캘리포니아 공대에 직접 들어가 4년 동안 물리학을 공부했다고 하니 영화적 완성도는 따져 물을 수준이 안된다.

지난 10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한국 기자단과의 회견에서도 놀란 감독은 “현재까지 나온 모든 과학적 사실이 이 영화 한 편에 전부 담겨 있다”면서 “적어도 영화 속에서 나온 모든 현상은 실제 증명된 과학적 사실들이다”고 자신했다.

그의 발언대로 ‘인터스텔라’는 시간 여행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는 성간(星間) 이동을 시간의 분해와 결합으로 이뤄냈다. 극중 등장하는 상대성 이론과 웜홀 이론, 블랙홀 이론 등의 어려운 과학적 증명을 설사 모른다고 해도 이는 크게 어려운 조건이 아니다. 배우들의 연기와 놀란 감독 특유의 ‘가족애’가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 지원군 역할을 자처한다.

영화 스토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SF장르의 외피 안에 특유의 캐릭터 중심 스토리가 자리하고 있다. 극심한 환경오염으로 인해 전 세계는 식량 고갈 위험에 빠지게 되고, 혹독한 토양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밀조차 생산이 불가능해진 지구는 인간이 살 수 없는 척박한 행성으로 버려지게 된다. 급기야 병충해가 들끓고 공기 중 질소 함량이 많아지면서 인간의 생존권마저 위협받게 된다. 과거 유능한 비행사였으며 현재는 농부이자 엔지니어로 살아가는 쿠퍼(매튜 매커너히)는 우연한 기회에 딸 머피가 발견한 신호를 통해 지구의 어떤 곳이 표시된 좌표를 해석한다. 찾아간 곳엔 해체된 것으로 알려진 미항공우주국(NASA)이 자리하고 있었다. 쿠퍼는 그곳에서 인류의 행성 이주 기획을 알게 되고 자신과 인연이 있던 브랜드 박사(마이클 케인)와 그의 딸 아멜리아(앤 해서웨이)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감지한 그 신호가 ‘그들’이라고 불리는 미지의 존재들이 보내는 것을 알게 된다.

쿠퍼는 이들을 통해 토성 근처에 인위적으로 생성된 ‘웜홀’과 그곳을 통해 다른 차원의 12개 행성으로 떠난 연구원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한 구조대에 합류하게 된다.

이런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인터스텔라’는 시간의 개념을 새로운 차원으로 해석한 영상 미학의 집대성을 화면에 그린다. 놀란 감독은 ‘인터스텔라’를 만든 이유에 대해 “우주에서의 인간이 위치하는 이유와 존재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인터스텔라’를 통해 떠나보는 169분의 우주여행, 경이로움을 넘어 경악의 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인터스텔라’는 분명 11월 꽁꽁 얼어붙은 국내 극장가를 해빙해줄 훈풍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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