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조광환 선생님의 동학농민혁명 이야기



# 황토현


“김경승에게는 엄혹한 우리 근현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시대의 모순과 과제를 해결하려 온몸을 던져본 삶과 사상이 없다.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고 가까이 지냈던 흔적도 눈에 띄지 않는다. 1894년 목숨걸고 치열하게 싸웠던 농민군의 투쟁의지, 농민전쟁의 의미, 전봉준 장군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형상화 할 수 있는 실천과 경험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동상은 위압적이나 1894년은 사라졌다.”

보통 사당의 구조는 외삼문을 지나 내삼문을 들어서면 그 건물의 중심에 위패를 모셔둔 본전(本殿)이 자리하고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황토현기념관에서는 그 본전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앞서 얘기한 문제의 전봉준 장군의 동상과 부조물이 중심이 되어 들어서 있으며, 그 덕분에 사당은 좌측으로 밀려 있어 이곳 기념관이 한눈에 보아도 갑오년 민중들의 함성과 힘찬 기상을 담아놓기보다는 전봉준 개인을 위한 시설물임을 한눈에 느낄 수 있습니다.

다시 밖으로 나와 보면 광장 건너편엔 다소 거창하게 느껴질 건물 2동이 건립되어 있습니다. 이는 이제까지 100여 년의 세월동안 편견과 억압 그리고 왜곡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의와 정신을 바로잡고 이를 후세에 전승하는 교육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역여론이 바탕이 되어 김대중 전 대통령 지시사항으로 추진됐던 사업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추진상황은 2차 사업이 예산확보 미비 등의 이유로 현 상태에서 마무리되지 않나 하는 우려가 큽니다. 만약 지금 상태로 봉합된다면 교육관과 전시관 2동의 거대한 건물만 덩그러니 지어져 기존의 황토현기념관과 부조화된 상태로 놓이거나 전체적으로 조화롭지 못한 모습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걱정입니다.

요즘 가히 사극 열풍이란 말이 실감납니다. 사극(史劇)은 말 그대로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입니다. 사극은 드라마이기 때문에 재미있어야 합니다. 재미없는 사극은 보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사극의 제작자들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각종의 수단을 강구하게 됩니다. 화려한 전투장면 등 눈요기 거리뿐만 아니라, 이루어질 수 없는 애절한 사랑이야기, 더 나아가 선정적인 장면이나, 민족적인 정서의 자극 등 갖가지 수단이 동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청자들이 사극을 단순히 드라마로서만 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시청자들은 사극에서 드라마적인 재미를 추구하면서도 그것을 사실로서의 역사로 인식한다는 것이지요. 학창시절 역사교과를 기피하던 시청자들이 역사드라마를 시청하면서는 자연스럽게 해당 시기의 인물이나 사회 등에 대한 나름대로의 역사인식을 갖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극을 만드는 작가나 제작자와 역사가 사이의 충돌이 발생하기 마련이지요. 그 중 사극이 비판받는 가장 큰 이유는 명백하게 “있었던 과거” 자체를 왜곡하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수단이 공중파방송일 때는 그 심각성이 더욱 엄청납니다.

이전에 성공리에 치러졌던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면 그 사실이 자명해집니다. 제작자의 말을 빌리면 ‘뮤지컬 명성황후’를 기획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한국 일본이 공동 개최한 2002년 월드컵이라고 합니다.

“‘명성황후’에 대한 수많은 부정적 인식들은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조선을 강점한 사실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만들어낸 역사적 날조와 변조에 기인한 것이 대부분”이므로 “권력에 집착한 여인, 친족의 이익을 위해 국가적 이익을 희생한 여인”으로 얼룩진 명성황후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야겠다는 것이 명성황후의 기획의도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울러 “뮤지컬 명성황후가 젊은 층에까지 호응을 얻는데 성공한 것은 일제의 강점기를 패망의 역사가 아니라 승리의 역사”로 바꾼 데 있으므로, 몇년전 방송됐던 드라마 명성황후 역시 그러한 구도를 따랐습니다.

일제의 변조에 의해 명성황후가 “권력에 집착한 여인, 친족의 이익을 위해 국가적 이익을 희생한 여인”으로 잘못 얼룩져 있다면 이를 바로잡는 것은 후손의 당연한 의무이며, 그 원인이 기본적으로 ‘식민사관’에서 비롯되었다면 당연히 척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명성황후에 덮어씌워진 부당한 평가를 바로잡으려는 목적이 긍정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방법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야 할 것입니다. 명성황후에 대한 무조건적인 미화를 반대하는 것을 식민사관으로 치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사실 대원군이 물러나고 명성황후가 집권한 1873년 이후 근 20년 동안 국가의 중요한 관직을 모두 민씨들이 장악하였으며 또 민씨들이 이를 통해 나라와 백성을 파탄으로 몰고 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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