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 살아난 ‘병맛’, 주목하라 이 웹툰!
스크린에 살아난 ‘병맛’, 주목하라 이 웹툰!
  • 김범진 기자
  • 승인 2014.11.24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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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진의 영화 리뷰> '패션왕'


‘웹툰’이란 방식의 창작물이 등장하면서 영화계도 제작 및 기획에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소재 고갈, 아이템 고갈, 기획 고갈이란 3대 악재에 부딪친 영화계의 시선에서 웹툰은 상당히 매력적인 장르다. 우선 기존 소설과 비교해 판권 계약 예상되는 리스크가 적다. 소설의 경우 타깃 독자층이 있기에 포괄적인 개념의 흥행 리스크가 큰 편이다. 반면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웹툰은 열린 공간 속에서 제공되는 콘텐츠란 점이 그 리스크를 줄여준다. 한마디로 타깃 자체가 폭이 넓어지게 된다. 접근성이 용이해서 남녀노소 불문하고 다양한 팬층을 확보할 수 있다. 이미 흥행력 자체도 검증된 요소가 많다. 쉽게 말해 단위수가 다르다. 소설의 경우 현재의 도서시장에서 밀리언셀러는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이다. 반면 웹툰은 인기 작품의 경우 수백만 클릭이 가능하다. 심할 경우 수억 개의 클릭수도 나온다. 한마디로 ‘장난이 아닌’ 아이템이란 소리다.

하지만 분명 리스크도 존재한다. 웹툰은 온라인이 기반이기에 창작의 제한 자체가 없다. 황당함을 넘어 실현 불가능한 화면 구성이 넘친다. 웹툰 원작으로 최근 영화화가 확정되고 시나리오 각색 작업에 들어간 ‘신과 함께’는 저승이 배경이다. 다양한 배경의 저승을 어떻게 구현해 내는가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가 결정될 것이다. 때문에 제작비도 상당한 수준으로 뛰어오른다. ‘투자한 만큼 나온다’는 영화계의 불문율이 당연히 웹툰 원작 영화에도 해당되지만 한 편에선 ‘그러면 차라리 창작 시나리오 개발에 투자하라’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웹툰은 검증된 아이템이란 점에서 영화계의 시선으론 당연히 매력적인 소재다.





최근 개봉한 영화 ‘패션왕’도 이런 점에서 출발했다. 주간 조회수 440만 개, 누적 조회수 5억뷰, 26주간 네이버 웹툰 베스트 1위의 기록을 세우며 각종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패러디’와 ‘신조어’ 양산의 ‘역대급 웹툰’이란 타이틀을 갖춘 것만 봐도 상당한 파워를 예감케 한다.

사실 웹툰 영화가 그동안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던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김수현 주연의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700만에 가까운 대박을 터트렸지만, 영화적 완성도와 재미라기 보단 당대 최고의 스타 파워를 지닌 김수현의 힘이 이뤄낸 결과물이다. 웹툰의 원조 작가로 통하는 강풀의 여러 작품이 스크린으로 옮겨지고 신흥 작가들의 인기 작품이 연달아 스크린으로 진출했지만 흥행 면에선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제외하고는 처참한 수준이었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웹툰을 통해 눈에 익은 익숙함이 스크린으로 옮겨지면서 일종의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호흡이 긴 웹툰의 연재물과 러닝타임 120분 내외의 영화 사이엔 한계가 있다. 한정된 시간으로 옮겨지려면 당연히 지워지고 덜어지고 잘라져야 한다. 이른바 각색을 통해 탄생한 웹툰 원작의 영화에 실망하고 고개를 돌리게 된 상황이 발생한다. 각자가 좋아하는 부분이 있고, 또 기억에 남는 대사와 장면이 있다. 이 모든 것이 각색 과정에서 잘려나가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부분이 스크린으로 살아나면서 충성도 높은 원작 팬들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결국 기대치가 반감되고 흥행면에서 웹툰 원작 영화는 ‘복불복’의 개념으로 변질됐다. 그럼에도 인기를 끄는 것은 보장된 검증이 있기 때문이다. 악마의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우선 ‘패션왕’은 그런 면에서 보자면 잘려지고 덜어내져도 다른 웹툰 원작의 영화와는 다른 구석이 많다. 원작 자체가 스토리의 연결성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이른바 상황 속 ‘병맛’(말도 안 되는 상황인데 웃음을 유발하는 것을 지칭하는 속어) 코드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스크린에 살아난 ‘병맛’은 웃음을 넘어 간혹 황당함을 유발하기도 한다. 장면을 보면 이렇다. 원작에도 나오는데, 눈을 가린 앞머리에 기다린 망토를 늘어트리고 걷기조차 어려운 좁은 스키니 바지를 입은 주인공 우기명(주원)을 향해 ‘기안고등학교’ 학생들이 ‘패션의 완성’이라며 탄성을 자아낸다. 우기명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기안고 원조 패션짱 김원호(안재현)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그를 견제하기 시작한다. 운동회날의 장면은 더욱 황당함을 넘어 실소마저 자극한다.

운동회의 꽃은 누가 뭐래도 계주다. 저마다 멋들어진 리폼 체육복을 입고 등장한 학생들은 달리기보단 자신의 자태를 뽐내는 데 집중한다. 계주 트랙이 순식간에 패션쇼장의 런어웨이로 변신한다. 마지막 주자는 우기명과 김원호. 두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 바톤을 넘겨받고 멋들어진 워킹을 한다. 우기명과 김원호는 “대체 왜 저런 옷을”이란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의 만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체육복을 입고 결승선 테이프를 끈기 위해 워킹을 시작한다.

정말 신기한 것은 이 장면을 보면서 실소를 터트리는 관객들이 어느 순간부턴 두 사람의 런어웨이에 빠져들어 누군가는 우기명을 또 누군가는 김원호를 응원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게 ‘병맛’ 코드의 완성판을 만들어 가는 ‘패션왕’의 실상은 웹툰의 무한 상상력도, 실소 위주의 ‘병맛’ 코미디도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마지막으로 달려간다. 사실 이 영화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루저’의 인생 도전사다. 자신의 상황을 자책하고 포기하고 주저앉는 누군가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그저 즐기면서 살자고. 즐기면서 자신을 사랑하다보면 우는 날도 있지만 웃는 날도 있다고. 어떻게 인생이 매일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겠냐고.

영화 ‘패션왕’은 패션이란 코드가 전면에 들어가 있기에 ‘병맛’ 그리고 황당함을 넘어선 재미만 있지는 않다. 또한 의미 있는 주제의식으로 마무리를 하는 것도 아니다. 보는 맛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총천연색 영화다.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등장하는, 패션 프로그램 ‘패션왕’ 미션 수행 과정에서 드러나는 총천연색 색감 배치는 ‘패션’을 통해 살릴 수 있는 화려함의 정점을 찍는 시퀀스다. 실사와 웹툰의 연결성을 의도한 카툰의 적절한 배치도 이를 보조하는 좋은 수단이다.

더불어 ‘패션왕’의 또 하나 재미라면 아무래도 막강 카메오 군단의 출연일 것이다. 세계적인 톱모델 한혜진부터 방송인 홍석천, 김나영, 걸그룹 애프터스쿨 나나, 가수 호란, 개그우먼 안선영, 연기파 배우 이경영 등이 적재적소에 배치돼 ‘패션왕’의 보는 맛을 제대로 살리고 있다.

웹툰은 분명 영화적 관점에선 리스크가 큰 아이템이다.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최소한 ‘패션왕’의 선택은 그 리스크적 관점에서 크게 벗어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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