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생생 역사 현장 탐방-서울 창신동 '안양암'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인용하며 유명해진 문구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도 문화유적의 참맛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방화로 소실된 국보 1호 남대문의 부재는 두고두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이에 <위클리서울>은 서울 인근의 유적지를 직접 찾아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2천여점의 유물 등을 보관해 불교문화재의 `보물창고`로 불리는 안양암을 찾아갔습니다. 안양암 바로 뒤 괴암에 있는 두 개의 동굴도 인상적입니다. 인근 동대문, 낙산성곽과 비우당을 비롯 `동망봉` 등 단종비 송씨의 유적들이 모두 10여분 거리에 있어 반나절 코스로 최적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 온화한 얼굴의 `마애관음보살상`



허름하게 느껴지지만 보면 볼수록 정감이 가는 `보물창고`.

2천여점 안팎의 불교문화재를 보관하고 있다는 안양암(安養庵)은 6호선 동묘역 2번 출구에서 창신초등학교 쪽으로 5분쯤 올라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골목 입구엔 과거 특별한 맛으로 인기가 높았던 `낙산냉면`이 산 정상에서 내려와 운영을 계속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냉면을 즐기기 위해 줄 서 있는 모습은 여전하다.



# 도로에 있는 `안양암` 안내판





# 안양암 배치도




`낙산냉면`을 지나 왼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과연 이런 곳에 정말 사찰이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골목 끝에서 기다리는 외로운 `안양암`과의 만남은 더 반갑다.

"도심의 독보적인 사찰"

`한국불교미술관`의 별관이기도 한 안양암은 그 명성(?)에 비해 그리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은 아니다. 성월대사가 1889년 창건했다고 하니 천년 안팎의 유서깊은 사찰에 비하면 그 깊이가 얕지만 120년도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다.



# `안양암` 정문


사찰 명칭인 `안양`은 보통 불교에서 `극락`과 같은 의미로 불리지만 사찰 관계자는 "정확히 말하면 극락에 가기 위해 사람들이 거쳐야 하는 곳이 바로 안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안양암이 들어서기 전에도 원래 만수사라는 절이 있었다. 조선시대 나인들이 자주 찾던 곳이었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후궁들이 과부가 된 후 머물렀다는 청룡사 옆 정업원이 5분남짓 지근거리에 있음을 감안하면 일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안양암의 최대 자랑은 조선시대 후기의 전각과 불화, 불상 등이 2천여점 넘게 남아있다는 점이다. 전국적으로 따져봐도 비교 대상이 흔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



# 길 옆 돌에 새겨진 불상


석감마애관음보살상, 대웅전 아미타후불도, 아미타괘불, 지장시왕괘불 등 서울시 지정 유형문화재만 7점이고 문화재자료 12점을 소장하고 있다. 권대성 한국불교미술박물관장은 "안양암은 조선 말기 조성된 전각과 불화, 불상, 공예품 등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는 귀중한 사찰"이라며 "쟁송 등 24년이란 긴 시간을 견디어 냈기 때문에 도심의 독보적인 사찰로 원형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안양암 관계자는 여기에 또 하나의 자랑거리를 덧붙였다. 안양암에 모신 불상은 모두 흙으로 빚어져 학술적인 연구 대상이라고 한다.

"화강암 관음보살상"

일단 현재 이 곳에서 볼 수 있는 전각들은 대웅전과 염불당, 관음전과 명부전, 금륜전, 영각, 천오백불전 모두 7곳이다. 과거엔 강당과 산신각, 독성각, 종각도 있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불에 타 소실됐다. 화마에 사라진지 모두 30년이 안 됐다고 하니 정부나 지자체에서 조금만 신경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적지 않다.

사찰의 중심인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이 곳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 내부엔 아미타삼존상이 모셔져 있으며 당대의 대표 화승들이 제작한 아미타후불도(시 유형문화재 제185호), 팔상도, 감로도(시 유형문화재 제186호), 신중도 등이 있고 아미타괘불탱(시 유형문화재 제189호) 역시 전해져 내려온다. 모두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 안양암 대웅전 외부와 내부 모습


커다란 암벽을 뒤로 하고 지어진 관음전은 정면 한 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대웅전 향좌측에 위치해 있다. 관음전 내부엔 1909년 조성된 마애관음보살상(시 유형문화재 제122호)이 새겨져 있는데 통도사 지장암 마애불과 함께 조선시대 말기의 마애불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쓰이고 있다. 전체높이는 353cm이고 무릎너비는 210cm다.

이 불상은 화강암을 약간 파낸 후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관음보살을 새긴 것으로 19세기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관음보살상은 머리에 관을 쓰고 이마엔 백호가 있으며 풍만한 얼굴에 초생달같은 눈썹, 반쯤 뜬 눈, 얼굴에 비해 큰 귀가 특징이다.


# 부엌에 있는 `조왕신 그림`



왼손은 손바닥을 편 채 가슴에 대고 엄지와 인지를 합쳐 원을 나타내는 선정인을 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펴서 배 위에 대고 있다. 결가부좌를 하고 연꽃 모양의 받침대 위에 앉아있으며 머리와 몸 뒤, 두광과 광배는 서로 연결됐다.

부엌엔 `조왕신` 그림

관음전 맞은 편으론 팔작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축물인 명부전이 있다. 내부엔 지장삼촌상과 시왕상, 2구의 판관상, 2구의 금강역사상, 4구의 동자·동녀상이 모셔져 있고 1924년에 제작된 지장시왕도와 1922년 제작된 시왕도, 사자도, 금강역사도가 있다. 지장시왕괘불탱은 서울시문화재 자료 제16호다. 이 곳과 관련된 영정도 있는데 그 중엔 가수 고 김광석씨도 있었다.


# 안양암 명부전


대웅전 건너편에 있는 건물은 염불당으로 온돌방에 마루와 부엌이 딸려 있는 구조다. 내부엔 관음보살반가상과 삼불회도가 있다. 지금은 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일을 하는 곳으로 변했지만 곳곳에서 과거의 채취를 느낄 수 있다. 부엌에 있는 조왕신 그림이 대표적이다.

대웅전 오른쪽 윗편에 있는 금륜전안엔 치성광불상을 중심으로 칠원성군, 동자상 등이 모셔져 있는데 이처럼 조각상으로 조각된 예가 드물어 그 가치가 크다. 불화로는 칠성도 2폭과 산신도, 독성도가 봉안돼 있으며 그 중 후불도로 모셔진 칠성도는 서울시 문화재 자료로 당대를 대표하는 화승들에 의해 제작됐다.



# 안양암 영각


금륜전 바로 위 건물은 영각인데, 막돌로 만든 기단 위에 정면 한 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수월각시상으로 불리는 나한상과 성월대사, 태준대사의 진영, 익성심부인초상화 등이 봉안돼 있다.

가장 위쪽으론 천오백불전이 자리하고 있다. 이름 그대로 천오백불과 본존인 아미타삼존불, 입상의 좌우협시보살로 구성됐다.



# 천오백불전에 모셔져 있는 천오백불


안양암을 전체적으로 돌다보면 과거 강당과 산신각, 독성각 등이 있던 자리도 그 터를 확인할 수 있다.

수십여년간 제대로 관리가 안 된데다 몇 년 전에야 일반인들에게 공개돼 덜 알려진 까닭에 아직도 손 봐야 할 곳이 적지 않다. 건물 외벽 바닥은 여러 군데가 균열됐고 지붕이나 단청은 세월의 흐름에 그 빛이 바랜지 오래다.



# 아직 복원되지 않은 강당터




# 외벽 하부가 심하게 훼손됐다.


불교계에선 `안양암`이 불교미술박물관 별관으로 지정되면서 상황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보호가 미흡하다며 대책 마련을 꾸준히 주장해 왔다. 한 전문가는 "안양암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박물관"이라고 높이 평가하며 "2300여점 이라는 방대한 유물이 보존돼 있는 만큼 하루 빨리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여름에도 시원한 `동굴`

안양암 발걸음의 또 다른 즐거움은 서울 중심에서 생각지도 못한 풍경을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사찰 뒤편 거대한 괴암엔 사람이 올라갈 수 있도록 길이 이어져 있는데 그 정상엔 두 개의 작은 동굴이 있다.

더운 여름날에도 들어가면 한기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시원하다. 나란히 위치한 두 개의 동굴 내부는 아치형으로 이어져 있는데 바닥에 물은 고여 있지만 들어가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다. 오른쪽 동굴 앞엔 누가 심었는지 채소들이 알뜰살뜰하게 재배되고 있었다.



# 안양암 뒤 암벽에 있는 동굴 입구





# 동굴 내부. 두 개의 동굴은 서로 이어져 있다.


오래 전엔 큰 스님들이 이 곳에서 참선을 하기도 했고 6·25 전쟁 땐 은신처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사찰 관계자는 "분명히 천연동굴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지만 낙산 인근에 이런 작은 동굴들이 더 있는 걸 보면 채석장을 운영했던 일제시대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사찰 문화재의 보고인 `안양암`과 함께 낙산 줄기에서 만나는 두 개의 동굴은 나들이를 더욱 즐겁게 해 주는 요소다. 동대문과 낙산성곽, 비우당과 동망봉도 멀지 않은 곳에 있어 반나절이면 모두 돌아볼 수 있다.



김승현 기자 okkdo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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