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 여긴 겨울이 아니다.


과일은 제철이라야 제 맛을 낸다는 이데올로기에 내가 그동안 갇혀 있었던 것인가 보다. 겨울 수박이 무슨 그리 신통한 맛을 낼 수 있겠는가, 했는데 아니다. 먹어본 사람만이 맛을 안다는 말이 그렇게도 실감날 수가 없다. 이게 대체 뭔 맛이냐? 아하 참, 오묘하도다. 치아가 부실한 사람을 위해서 특별히 만든 무슨 과자 같기도 하고, 사탕 같기도 하고, 크림 같기도 한 이게 정말 수박이 맞는 거야?

지나온 내 생의 흔적들을 돌아보니 한겨울에 수박을 먹었던 기억은 하나도 없다. 열여섯 살 그 찬란한 이팔청춘의 시기에 잠시 몸을 담았었던 룸살롱에서 이런저런 온갖 과일을 먹어보기는 했지만, 겨울에 수박을 입에 넣었던 기억은 없다. 어쩌다 가끔 들르는 대형마트 과일매장에서 수박을 발견하고 “겨울에도 수박이 있네?” 어쩌고 그렇게 중얼거리며 인상을 찡그렸던 기억은 있다. 겨울에 보는 수박은 맛을 떠올리기에 앞서 그냥 뭔가 오스스 한기부터 느껴지던 것이었다.

미식에 대한 내 경험의 세계는 그렇게도 짧았다. 쌀겨로 개떡을 해먹는 등 배고픈 시대를 건너온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한겨울의 수박이란 뭐랄까, 엄청난 사치로 여겨지면서 감히 먹어볼 엄두조차 못 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형편없이 완고한 보수주의자인도 모른다. 여름 더위를 식혀주는 수박을 어찌 감히 겨울에 칼을 댄단 말이냐 하는 뭐 그런 것.
어쨌든 그 모든 것들이 한 방에 날아가 버렸다. 우연히 먹어본 겨울 수박 몇 쪽이 나를 이를테면 개안시켜준 셈이다. 색깔조차도 연한 핑크빛이니 이게 참 야릇하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디서 그냥 무슨 속삭이는 소리라도 들려올 것만 같다. 이게 이른바 박수박이란다. 순수한 수박은 죽었다가 깨난다 해도 이런 야릇한 색깔을 내지는 않는단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엄동설한에 마음이라도 훈훈하게 설레라고, 주눅들지 말고 활기차게 설레는 마음으로 따뜻한 생각을 하라고 이렇듯이 연하게 사랑 색깔을 내는가보다 하는 엉뚱한 생각조차도 든다.

색깔이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해놓고 스스로 뿌듯해 하고 있는 나, 나를 이렇게도 엉뚱한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준 사람을 찾아가서 만났다. 수박으로 유명한 고창에서도 수박 농사로 유명해진 사람 김영구, 굳이 서열을 매기자면 적어도 열 손가락 안에는 들어가고도 남는다고 옆에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해주는데 그 세세한 내용까지 내가 알 수 있는 일은 아니겠고, 어쨌든 모난 데가 하나도 없이 뭔가 둥글둥글한 수박을 연상케 하는 이름을 가진 김영구는 성격도 둥글둥글하다.



# 지하수 난방으로 이렇게 자란다고...


지구는 둥글다고 누가 맨 처음 말했던가. 김영구씨와 얘기를 하다 보면 혹시 이 사람이 지구는 둥글다고 맨 처음 말했던 게 아닐까? 하는 느닷없는 생각이 홱 스치기도 한다. 누군가 실수로 자신의 발등을 찧는다면 “아이고 나도 아프지만 네 마음은 더 아프겠다” 하면서 배시시 웃어줄 것만 같은 사람, 도무지 싸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그는 수박 농사로만 유명한 게 아니다.

후배든 누구든 영농기법을 질문해 오면 한 가지도 꿍쳐두지 않고 모조리 가르쳐줘 버리는 것으로도 그는 유명하다. 심지어는 자신의 일은 뒤로 제쳐두고 찾아가서 몸소 시범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늘 불편하고 미안하단다. 공짜로 가르쳐주면서도 불편하고 미안해하는, 그럴 수밖에 없는 그 이유가 사뭇 숙연하다.

“내가 가르쳐준다고 해서 그 사람 농사가 내 농사처럼 되는 것은 아니거든. 토질이 다르고, 지형이 다르고, 위치도 다르고, 뿐이간디. 그 사람과 내가 다른데 워찌케 같은 성과를 낼 수 있겠냐고.”

절묘한 말이다. 내가 아무리 나의 비법을 전수해준다 해도 저 사람이 내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런 원리쯤은 안다.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은 잘 안 되는 것, 이것이 또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속상해 한다. 나도 저 사람과 똑같이 했는데 나는 왜 저 사람처럼 안 되지? 바로 그것, 그 지점을 김영구씨는 안타까워한다. 나의 영농기법을 저 사람한테 전수해줬는데 저 사람은 나와 같은 성과를 내지 못 한다는 것, 그래서 안타깝고 속이 상하기도 하지만, 그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안타까움은 배가 된다.



# 다 익었다는 소리가 나네~


“방법을 배웠다고 그대로만 해서는 안 되는 법이거든. 따로 연구를 해야 하는 것이거든.”

그는 이 부분에서 말꼬리를 흐린다. 사람들이 연구를 깊이 하지 않는다는 말을 직접 하지는 않는다. 연구 없이 농사를 짓기 때문에 실패한다는 말이 금방 튀어나올 것 같지만 그는 침묵한다. 생각하면 이것도 주입식 교육 탓인 것 같다. 뭔가를 배우면 배운 대로만 하고자 할 뿐 그 이상은 거의 넘어가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놓는 교육이 왜 필요한가 하는 느닷없는 불만이 홱 스치는 지점이다.

학교에서 노트필기 열심히 착실하게 다 하면 미래가 보장될까. 시험 성적은 백 점을 받을지 몰라도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아니 오히려 불안하다. 제멋대로 한다고 꿀밤 얻어맞아 가며 나름대로 고민을 한 사람은 자신감이라도 생기지만, 하라는 대로만 한 사람은 어느 부분에서 조금만 삐끗하면 이내 불안해져 버리기 마련이다. 인간사의 그런 이치를 남보다 먼저 눈치챈 그는 그래서 한 번 더 강조한다.

“매사가 그렇겠지만 농사도 역시나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여, 고민을 해야 혀, 고민을, 응?”

그렇다면 그는 언제부터 왜 무엇이 계기가 되어 고민하는 농사꾼이 되었을까. 살아온 내력을 더듬어 올라가면 그도 한때는 서울특별 시민이었던 적이 있었다. 사람은 모름지기 서울로 가야 한다는 풍설 아니 유행을 따랐다고나 할까. 결과만을 놓고 보자면 농업을 포기한 정부시책에 부화뇌동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무슨 계획도 깊은 생각도 없이 서울로 가서 공사장 막노동을 했다.



# 얘들만 보면 난 웃음이 절로 나와~


하늘에 별을 보며 출근해서 달을 보며 퇴근하는, 하루 일당으로 사흘치 양식을 구하기도 어려운 막노동판의 관행을 성실히 따른 결과 비교적 이른 나이에 하청업자 반열에 올라서기도 했지만,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그제 같은, 내일도 오늘과 거의 비슷하게 전개되리라는 예감에 갑갑증이 몰려와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게다가 공사장은 그 특징이 목적도 돈이요, 방법 또한 돈에 맞춰져 있다 보니 재미조차 없었다. 사람이 세상을 살자면 돈이 필요하긴 하지만 돈이 사람의 행동을 좌우하기 시작하면 사람의 위치는 불분명해지기 마련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인가, 하는 반복되는 의문 앞에서 그는 결국 서울특별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포기하고 말았다. 고향으로 돌아와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지만, 일하는 재미는 있는 반면 돈은 너무나도 안 되는 농사가 문득 두려워져서 다시 서울로 갔다.

그동안 서울은 변했을까? 아니었다. 전보다 더 많이 갑갑해져 있었다. 일 년여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그냥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농사를 좀 제대로 지어보겠다는 의욕과 꿈을 안고 돌아왔다. 그리하여 당시로서는 획기적이고 낯선 경운기를 나락 사십 섬 값에 매입해서 이른바 신개념 농사를 짓기 시작했지만, 이 년도 채 안 돼서 경운기 사고로 사람이 크게 다치고 영구씨 본인은 구속되는 사태에 직면하고 만다.



# 이 온화한 핑크빛 수박이 겨울에 나온다.


경운기 사고를 내서 사람이 구속될 수도 있다는 게 요즘의 시각으로 보자면 다소 어이없다 싶기도 하지만, 경운기가 처음 도입되던 시기에는 요즘의 자동차 사고만큼이나 경우기 사고가 잦았다. 어쨌든 그는 일단 망했다. 망했으니 농사를 포기하고 다시 서울로 가야 할까? 아니었다. 사십여 일만에 밖으로 나온 그는 다시 흙속으로 들어갔다.

이제부터는 고난의 길이었다. 하지만 즐거운 고난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맨주먹이었지만 꿈이 있었다. 라면 한 개로 부부가 이틀을 살아가면서도, 배가 너무 고파서 부부가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꿈을 버리지는 않았다. 재래식 농법으로는 살아가기 어렵다. 살아가기 어렵다고 도시로 나가면 부자들의 머슴 노릇밖에 못한다. 한평생 머슴 노릇이나 하자고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났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아니었다. 딱히 무슨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는 없다 해도, 사람이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된다는 것만은 일단 용납이 안 되는 일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고자 한다면 나만의 특별한 무엇이 있어야 했다. 생명을 다루는 농사에서는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았다. 문제는 생명의 원리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었다. 이러저러한 조건의 땅에 어떤 작물을 심으면 잘 자라고 또 어떤 작물은 안 된다. 작년에는 왕성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던 작물이 금년에는 폭삭 죽어버리기도 한다. 이게 대체 무슨 원리 때문인 것인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이 목마른 질문 한 가지를 그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붙잡고 매달렸다.



# 비닐하우스 외부


“어깨 너머로 배운다는 말이 있잖어. 내가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누가 무엇을 잘한다 하면 무조건 쫓아가서 구경하고 물어보고, 그리고 돌아와서는 들은 대로 본 대로 해보기도 하고, 하면서도 다른 무엇은 없을까 하고 머리통 쥐어짜며 고민하고, 뭐, 그렇게 조금씩 터득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더만.”

공부에 정석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면, 김영구씨의 이런 방식이야말로 아마 정석 중에 정석이라고 할 수 있을 게다. 노트 필기나 열심히 해서는 아무것도 안 되는 것, 뭔가 된다고 해봐야 기껏 아류밖에 안 되는 것. 그는 그렇게 고민을 하고, 또 한 결과 한 가지 분명한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꿈을 키우되 환상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확신을 갖고 미친 듯이 매달리되 일확천금을 하겠다는 허황된 망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그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터득했다
이것을 하면 잘 될 것 같고, 저것도 하면 잘 될 것 같은, 금방 떼부자가 될 것 같은 환상에서 비롯되는 터무니없는 욕심을 버린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누군가의 충고나 가르침이 아닌 스스로의 피나는 고민에서 나온 결론이라면 손바닥이라도 뒤집듯이 간단할 수도 있는 법이었다. 지구가 한정된 면적을 갖고 있듯이, 사람의 내적 에너지 또한 한정되어 있는데 그것을 여기저기 자꾸 분산해서 사용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것, 뭔가 된다고 해봐야 기껏 돈이나 좀 더 긁어모을 수 있을 뿐 인간 삶의 최대 목표라 할 수 있는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

그것이었다. 김영구씨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 돈을 필요로 하는 것일 뿐 돈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입장은 아니었다. 도시생활 그만두고 ‘촌놈’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이미 그것은 가슴에 새겨져 있었다. 그 뒤로 그 생각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작물이 자라는 과정을 보는 것이 그는 즐거웠다. 한 톨의 씨앗이 싹을 내고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익어가는 순간순간의 변화는 보고 또 보아도 경이롭기만 하단다.



# 단정한 고랑


그 결과 그는 작물의 마음을 읽는 경지에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작물의 마음을 읽는다는 말이 과장으로 들린다면 작물이 요구하는 환경을 즉각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 어쨌든 그는 이제 수박 농사의 달인이 되었다. 그것도 일 년에 세 번씩이나 출하를 한다. 남들은 일 년에 한 번 농사지은 것도 처분을 못해서 아우성이지만, 그는 일 년에 세 번 농사를 지어도 판로 문제로 노심초사한 경험이 거의 없었단다.

게다가 그는 비닐하우스 농사를 하면서도 기름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겨울 수박을 한다 해서 비닐하우스 내부에 기름을 태워 그 열로 수박을 익히는 줄 알았지만, 그는 역시 둥근 사람답게 둥근 지구의 원리를 이용 아니 활용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었다. 지구 표면으로부터 수천 아니 수만 미터 저 안쪽에서 들끓는 마그마가 지하수를 덥혀놓으면, 그 지하수를 끌어올려서 이중으로 된 비닐하우스 위에 살포하는데 그 온도가 한겨울의 한밤중에도 섭씨 십오도 안팎을 오르내린다는 것이다.

“근데 이것은 뭐, 나만 하는 것은 아니고, 요즘 비닐하우스는 대부분 이 방식으로 해. 안 그러면 폴새 다들 하우스농사 문 닫았을껄?”

어떻게 그런 영특한 방식을 생각해낸 것이냐고 물었더니 영구씨는 껄껄 웃어버린다. 듣고 보니 언제인가 그런 뉴스를 접했던 것 같기도 하다. 뉴스를 접할 당시에는 뭐 그런가 보다, 하고 흘려듣고 말았지만, 현장에서 직접 보고 나니 그 발상이, 그 아이디어가 새삼 굉장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지구의 표면에서 자라는 농작물을 지구의 저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순수한 에너지로 보호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엄청난 진보인가 말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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