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자다가 눈을 떴다. 예전 같으면 눈을 뜬 채로 천장의 야광별이나 잠시 보다가 도로 잠들었겠지만, 이번에는 뭔가가 온다는 느낌에 벌떡 일어나서 앉았다. 하얗다. 불을 켜지 않았는데도 사방이 하얗고, 희미하게나마 사물이 눈에 비친다. 습관적으로 전화기를 들어 시계를 본다. 날이 새려면 아직 멀었다. 그런데도 뭐가 이렇게 환하냐.

아 이런, 이런, 눈이구나, 눈이 오나보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눈이 온다면, 그렇다면 이건 뭐냐. 반딧불이처럼, 별똥별처럼 뭔가가 휙 지나간다. 문을 연다. 역시 그렇구나. 함박눈이다. 하얀 것이 벌써 마당에 가득 쌓였다. 하늘에서는 계속 쏟아진다. 나무들이 죄다 하얀 옷을 입었고, 옷은 점점 두꺼워져 간다.

마을의 개들조차 모두 잠들어있는지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는, 그야말로 세상이 온통 잠들어있는 마당에서 함박눈을 온 몸으로 맞으며 한참을 서성거렸다. 얼마나 지난 뒤에 방으로 들어오니 문득, 미친 듯이, 살얼음이 둥둥 뜬 동치미가 먹고 싶어진다.

집에 동치미가 있었던가? 없다. 누구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이 당장 먹을 만한 동치미는 집에 없다는 것을 내가 잘 안다. 마당에 무씨를 너무 늦게 뿌린 탓이다. 늦게 뿌린 무씨가 싹을 내고 자라다가 서릿발을 만나 성장을 멈춰 버렸다. 애기들 주먹 크기 정도밖에 안 되는 무 몇 개를 뽑아다가 씻어서 항아리에 넣고 생강이며 마늘 그리고 소금을 뿌려둔 게 겨우 이틀 전이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동치미로 숙성되기까지는 적어도 열흘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생각날 때 먹을 수 있는 동치미도 없이 겨울을 내가 맞이하고 말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번에는 팥죽이 먹고 싶어진다. 찹쌀로 빚은 새알심이 살짝 쫄깃하게 씹히는 그 진하디 진한, 그러나 뜨겁지는 않고, 미지근하지도 않고, 항아리에 담아두면 살얼음이 살짝 뒤덮고 있어서 보면 그냥 으, 소리가 절로 나오는, 맛있다기보다는 뭐랄까, 오싹하게 한기가 도는 감칠맛이라고나 해야 할 그 신통방통한 팥죽을 나는 어린 시절에 한겨울이면 참 많이도 먹었더랬다. 아니 어쩌면 많이 먹었던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엄동설한 깊은 밤에 먹는 그 차디찬 팥죽의 맛이 하도 충격적이어서 많이 먹었다고 착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런 팥죽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에 있었던가? 당연히 없다.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게 먹고 싶어지는 이 마음은 대체 뭐냐. 어리둥절하고 씁쓸해서 그저 쓴입맛이나 쩝쩝 다시고 있는데 이번에는 얼음 속에서 막 꺼낸 생두부가 생각난다. 두부의 표면에 얼음이 아직 엉켜 붙어 있는 생두부에 배추김치를 얹어서 씹을 때의 그 오슬오슬한 맛을 떠올리고 나니 이제는 정말로 내가 그만 미쳐버리겠다.



# 산수유


그나저나 이게 대체 뭐냐. 내가 왜 이러는 것이냐. 왜 이렇게 허기가 지는 것이냔 말이다. 아, 그렇구나. 내여자 그녀가 내 곁에 없어서, 그래서 이렇게도 엉망으로 자유분방해진 것인가 보다. 자유. 히히, 생각해놓고 나니 우습다. 그녀가 김장한다고 오라는 엄마의 호출을 받고 떠나던 날 내게 말했다.

“어디 숨겨놓은 사람 있으면 불러다가 밤새 술도 좀 마시고, 한 일주일간 자유를 만끽하셔요.”

텃밭에 배추를 무려 이백 포기나 심으셨단다. 그 많은 배추를 내여자 그녀가 엄마와 함께 뽑아서 다듬고 집으로 옮겨서 뽀개고 저린 뒤에 씻어놓으면 언니들 넷이 와서 왁자시끌 요란하게 버무리고, 그리고 각자 집으로들 가져간다. 그래서 김장 한 번 하는데 일주일 가까이나 걸린다. 이 거창한 행사는 연례적이고, 시월이면 벌써 날짜까지도 잡힌다.

금년 시월 중순쯤이던가. 김장 날짜가 잡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내심 생각했었다. 이번에는 내가 가서 배추를 뽑고 나르는 일을 해야겠다. 아 그것 참 재미도 있겠다. 생각은 그렇게 몇날며칠이나 열심히 했지만, 함께 가자는 말은 입도 뻥긋  못해본 채 그녀만 보내고 말았다. 언제인가 그녀의 입에서 무심히 나왔던 말 한 마디가 내 입을 참으로 오래도록 꽉 틀어막고 있었던 탓이었다.

“엄마가 그대를 보시고 난 뒤에 어디서 이런, 내 친구나 해야 할 것 같은, 이런 남자를 네가 신랑감이라고 데려온 거니? 하시면 어떻게 해요?”

그 말이 그녀의 진심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진심이 아니라는 근거 또한 내게 있지 않고 보니 내 가슴은 그냥 팍 무너지기나 할 뿐 아무런 대응도 해볼 수 없었다. 그저 입을 꾹 다물고, 먼 하늘이나 한 번 쳐다보고,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마당으로 나가 삽질을 했던가, 책을 뒤적거리며 의미 없는 중얼거림으로 시간을 죽였던가, 하여튼 그렇게 겨우 넘기고 말았다.

엄마 곁으로 간 그녀가 엄마 친구들의 권유로 맞선을 보고, 그리고 한눈에 반해서 당장 결혼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차라리 내가 편하겠다, 하는 생각도 아마 최소한 두 번은 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래 가지는 않았다. 십 분도 채 안 돼서 내가 이게 지금 뭔 미친 생각을 하는 거야, 하면서 머리를 회회 내둘렀다고 기억된다.



# 공용터미널에서


그러고 보면 나는 참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도 한다. 쓸데없는 생각 때문에 그녀의 어쩌면 진심이 아니었을지도 모르는 말 한 마디를 이내 털어버리지 못하고 어쩌면 진심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치여 허둥거린다. 생각을 안 하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쓸데없는 생각이고 보니 가슴만 점점 무거워져 간다.

그냥 달려갈까? 그냥 달려가서 “어머니의 막내딸은 이미 내여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저를 아들이라고 불러주십시오.” 그렇게 최진사의 사윗감 칠복이처럼 넙죽 무릎 꿇고 앉아 머리 조아리며 말해버릴까?

가볍게 펄펄 내리는 눈을 세 시간도 넘게 쳐다보고 있었던 덕분이었을까. 홀연 그런 대담한 생각이 나를 즐겁게 한다. 즐거워서 같은 생각을 또 하고, 또 하다 보니 내 몸은 벌써 전라도 고창을 떠나 경상도 영덕에 가 있어버린다. 그래, 그러자. 안 될 게 뭐란 말이냐. 마침내 결심을 굳히고, 길 떠날 채비를 차리는 중인데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김장 다 끝내고 내일 온다는 것이다. 언니랑 엄마는 왜 벌써 가느냐고, 며칠 더 있다 가라고 하지만 그냥 오고 싶어서 내일 온다는 것이다.

“뭐? 벌써? 아니야. 내가 갈게. 내가 데리러 갈게.”
“응? 정말?”
“나선 김에 경상도 일대 여행도 좀 하고, 한 사박 오일쯤 돌다가 오자.”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주제가 여행이고 보니 그녀는 그저 좋아라만 할 뿐 아무런 의문도 갖지를 않는다. 그러고 보니 나도 참 거짓말을 잘하는 편이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의 겨울여행은 결정되었다. 그런데 날씨가 심상치 않다. 눈은 이미 무릎까지 차올랐건만 계속 내린다. 게다가 기온마저 뚝 떨어졌다. 강원도 쪽은 영하 십오 도를 오르내린다 하고, 전라도 또한  영하권에 접어들었다. 실제로도 연못은 얼어붙었다. 이게 뭐냐.



# 우리동네 터미널 앞의 우체통


쇠뿔은 단김에 빼라는 속담을 내가 따르지 않았던 탓이었을까. 내 머릿속은 다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보일러가 걱정이었다. 기름보일러라면 걱정도 팔자가 되겠지만, 연탄보일러는 사정이 달랐다. 연탄이 꺼지면 그 안의 물은 얼어붙을 것이고, 그 뒤에는, 아이고 이런, 이런, 이걸 어떻게 하지?

쓸데없는 생각이 많은 나는 그렇게 해서 또 한 번 쓸데없는 생각에 발목이 잡힌 채로 허둥거리다가 기어이 그녀에게 전화를 하고 말았다. 안 되겠다고, 연탄보일러는 기름보일러와 달라서 일단 얼었다 하면 통째로 갈아야 하는데 뒷감당이 무섭다고, 그렇게도 소심하게 쓸데없는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는데 그녀는 뜻밖에도 짜증의 소리 한 마디 없이 “그렇네, 정말?” 해버린다.

다음날 그녀가 고창행 버스를 탄다는 전화가 왔다. 물론 한 번에 타는 것은 아니다. 영덕에서 가까운 포항에서는 광주행 버스가 하루 세 번밖에 없는 까닭에 시간을 놓치면 대구로 나가서 타야 한다. 그녀는 시간을 놓쳤다. 대구에서 광주로, 다시 광주에서 고창으로, 그렇게 저렇게 기다리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총 아홉 시간이 걸리는 꽤나 길게 피곤한 여행이었다.
자, 이제 나는 그녀를 마중하러 나가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눈 속에 운전을 하는 것도 겁이 나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마음이 어수선해서 일찌감치 길을 나섰다. 눈 속을 온종일 걷고 싶었다고나 할까. 그녀가 대구에서 광주행 버스를 타고 있을 시간에 맞춰 길을 나섰으니 각오도 제법 단단하게 한 셈이다.     

고창 공용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 대합실로 들어서는데 터미널슈퍼에서 주인과 손님이 옥신각신 말다툼이 한창이었다. 호기심에 잠깐 기웃거려 본즉 그놈의 담배가 싸움의 원인이었다. 손님의 얘기인즉 요즘 시골에는 담뱃가게가 없다. 그래서 버스까지 타고 나와서 담배를 한 보루나 혹은 두 보루씩 사곤 했는데 한 갑밖에 안 판다니 이게 뭔 ‘개수작’이냐 하는 것이었다.

“아 정부 시책이 그렇다고 반드시 지키라는데 나더러 어쩌라고.”



# 집으로 가는 길


담뱃가게 주인의 목소리에도 짜증이 가득 실렸다. 손님은 더욱 화가 났다. 금방 주인의 싸대기라도 한 대 올려붙일 기세로 눈을 부릅뜨고 씩씩거리는 손님을 밀치고 또 한 명의 손님이 들어섰다.

“라일락 한 갑 주시오.”
“라일락은 한 갑도 없는디요.”
“뭐요?”
“아, 싼 담배는 다 떨어졌다고요.”
“이런 니이미.”

쓸데없는 생각이 많은 나는 그 뒤로도 계속 구경을 했다. 그리고 알았다. 담배 중에서도 가격이 가장 싼 담배는 공급이 절반으로 줄었다는 것을. 그리하여 나는 또 한 번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왜지? 왜 서민 중에서도 서민이 즐겨 피는 담배는 공급조차 줄였지? 그토록 서민경제를 외치는 정부에서 서민의 주머니를 아예 찢어버리는 정책을 펴는 까닭이 대체 뭐야, 응? 답을 내기 어려운 의문에 빠져 있는데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버스는 아직도 경상도 주변을 달리고 있단다.

“여긴 눈이 엄청 쏟아지는데 어쩐다냐.”
“여긴 눈 하나도 없어요. 바람만 불어요.”
“어 그래? 다행이네. 하지만 전라도 쪽으로 넘어오면 눈이 많을 거야.”

그리고 한 시간쯤 뒤에 다시 그녀의 전화가 왔다. 남원 근처인데 눈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시간쯤 뒤에 통화가 이루어졌다. 광주에 다 왔는데 버스가 움직이는 시간보다 그냥 서 있는 시간이 훨씬 많단다. 그리고 또 한 시간쯤 뒤에 통화를 했는데 이제 겨우 광주 터미널에 도착해서 고창행 버스표를 샀단다. 그렇게 늘어지고 또 늘어진 끝에 그녀는 무려 열한 시간 만에 고창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그녀와 마주 앉아서 저녁을 먹었다. 컴퓨터를 켜서 손석희씨가 진행하는 뉴스를 보며 저녁을 먹는 게 언제부터인지 우리의 습관이 되어 있었다. 뉴스를 보는 틈틈이 그녀는 포항 인근의 민심을 쫑알쫑알 하는 투로 내게 말해준다.

“옛날 포항이 아니에요. 변했어요, 많이, 엄마 친구들도 변했는데 뭐.”

“그래? 참 불쌍한 여자다. 내 생각에는, 제 명에 못 죽을 것 같아. 죽음의 방식이 자신의 부모님과 같아서는 우리 모두의 비극으로 기록될 텐데, 응?”

다음 날은 저녁도 아니건만 우리는 컴퓨터를 켜놓고 나란히 앉았다. 방송이란 방송은 모조리 나서서 보여주는 이른바 실시간 뉴스를 보기 위해서였다. 붉은색 계통의 법복을 입은 헌법재판관 아홉 명이 일자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웃었다. 유치원생도 아니면서 왜 저런 모양으로 앉아야만 하는 거지? 하는 쓸데없는 의문 한 자락을 허공으로 날리면서 웃고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민생을 구호로 외치는 정권이 급하지도 않고 민생과는 아무 연관도 없는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을 왜 지금 하겠는가. 판결은 오래 전에 이미 나와 있었을 것이다. 그녀와 나는 그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국화차를 마셨다. 국어책을 읽듯이 또박또박 읽어나가는 헌법재판소 대장의 용모가 망치를 연상케 한다는 얘기를 그녀가 했던가, 내가 했던가, 어쨌든 아무 쓸데도 없는 소리를 주고받는 동안 판결은 우리의 예상을 하나도 비켜가지 않고 그대로 나왔다. 그리하여 우리는 판결에 대한 판결이랄까 촌평 같은 것을 저마다 한두 마씩 중얼거리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내가 쓸데없는 생각에 치여 있는 동안 저 사람들은 저렇게도 비열하고 치졸한 복수의 방식을 연구하고 있었던 것이로구나.”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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