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봅시다> ‘광복 70주년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


“광복 70주년이라고 하지만 할머니들에게 진정한 광복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국가 정책에 따른 범죄임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하라.”
올해로 광복 70주년과 한일수교·한일협정 50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위안부 할머니들의 광복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는 23년째를 맞았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2차 세계대전 종식 70주년이다. 독일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많은 국가에서 전쟁 피해에 대한 규탄 목소리가 터져나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수요집회를 주관하고 있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극우 성향의 아베 정권 역시 위안부 문제에 있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대협 설립 초기부터 활동을 시작, 23년째 수요집회에 함께 하고 있는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위안부 문제의 현실을 진단해봤다. 윤 대표는 2006년부터 정대협 수장을 맡아 국내외적으로 위안부 문제 해결에 주력해왔다.







진정한 한일 수교 되려면…

“올해는 광복 70주년이자 한일협정·한일수교 50주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할머니들에게 진정한 광복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일본은 여전히 할머니들이 추위 속에 외치는 절규를 묵살하고 있다. 한일 양국이 수교한 지 50년이 지났지만 양국은 진정한 수교를 한 것이 아니다.”

최장기 집회로 자리매김한 수요집회는 지난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전 일본 총리 방한을 계기로 시작돼 지난 4일 1164회가 열렸다. 윤미향 대표를 비롯 할머니들은 23년째 일본에 공식사죄와 법적배상 등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상처와 외부 시선을 의식해 쉽사리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1992년 2월 26일 7차 집회부터 지금까지 줄곧 함께 하며 직접 목소리를 내왔다. 정대협과 위안부 할머니들은 2013년부터 매년 프랑스 파리에서 수요집회를 열어오기도 했다. 직접 국제사회에 피해상황을 증언하고 문제 해결의 당위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나이가 들면서 세상을 떠나는 할머니들이 늘어나고 있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9명 중 54명만이 생존해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수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신다고 해도 우리는 이 문제를 외면해선 안 된다. 피해자들이 언제까지고 직접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 자체가 폭력이다. 이제 피해자들이 직접 소리를 내지 않아도 그 소리가 작아지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고 우리사회, 우리 정부의 역할이다.”

할머니들에겐 일본정부를 향한 7개의 요구안이 있다. 하지만 우리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외교적인 활동을 해야 가능한 사항들이다.

“일본정부에는 7개 요구사항이 있다. 범죄임을 인정하는 것, 진실규명, 공식사죄, 법적배상, 책임자처벌, 교과서에 기록해 교육할 것,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 등이다. 우리가 말하는 법적배상은 단순히 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법적인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우리 여론이 일본 정부를 굴복시킬 때까지 수요집회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윤 대표는 한일 수교 50주년과 관련해선 “올바른 과거 청산이 진정한 우호 협력의 첫걸음”이라고 했다.

“일본이 평화헌법 개악이나 위안부 범죄 부정 등 갈등조장과 평화위협을 중단하지 않는 한 한일 간에 진정한 평화는 없다. 집회를 시작하고 23년이 흘렀지만 일본은 사죄와 배상을 위한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아베, 전향적 자세 취할 수도

광복 이후 70년 동안 수많은 정권이 들어섰지만, 만족할만한 성과를 낸 정부는 없었다는 게 윤 대표의 평가다. 다만 할머니들이 경제적으로 안정을 취할 수 있었던 시기는 김대중 정부 들어서다.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외교적인 정책은 역대 정권 모두 전혀 칭찬할 수 없었다. 오죽했으면 피해자들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청구를 냈겠는가. 그 결과 2011년 8월 30일, 헌재로부터 한국정부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받아낸 것이다. 단, 피해자 지원사업은 1993년 김영삼 정부 때부터 피해자지원법을 만들어 해왔다. 아주 적은 금액이어서 우리가 시정을 요구했었는데, 김대중 대통령 시절 할머니들에 대한 한국정부의 지원이 늘어나서 피해자들이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안정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피해자 지원은 이후에도 매년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외교적으로 위안부 문제가 진전된 시기는 노무현 정부 때다. 2005년 우리정부는 한일협정문서 일체를 공개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일협정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일본정부는 법적책임이 여전히 남아있다. 한국정부는 추궁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헌법재판소 헌법소원심판청구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까지 일본의 우경화 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극우로까지 분류되는 아베 정권은 위안부 문제 왜곡을 비롯 전방위적으로 역사 왜곡을 일삼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우경화 바람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때에 일본에 대해 어떠한 자세를 취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기다리는 외교가 돼서는 안 된다. 올해는 우리에게 있어 광복 70주년이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2차 세계대전 종식 70주년이다. 독일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세계 여러 국가에서 전쟁 피해에 대한 규탄 목소리가 터져 나올 것이다. 중국도 일본을 향해 비판하기 시작했다. 아베 정권이 기존의 입장을 번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최장기 집회’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23년째 수요집회를 이끌어온 정대협. 지치고 힘들 때도 많았지만, 무명의 많은 시민들의 지지로 극복할 수 있었다. 수요집회가 역대 최장기 집회가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는 윤 대표.   

“함께 하는 사람들로 인해 극복해나가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는 5년 안에 끝날 줄 알았다. 길어야 10년이면 해결할 수 있을 걸로 생각했다. 20년이란 시간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 낭만적이고 순진한 생각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삼척동자도 이해할 수 있는 엄연한 범죄임이 틀림없고, 역사적 사실이라서 문제 해결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국제 정치 질서에서는 힘 있는 자가 이길 수밖에 없고 일본의 정치 시스템이 지독하게 공고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년이 지난 이제야 보인다. 천황은 신성불가침의 존재이기에 그 도덕성이나 명예는 털끝만큼도 건드려서는 안 되는데,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는 건 그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다. 일본에서 이런 이분법은 보수든 진보든 차이가 없다.”





광복 70주년. 올해는 남다른 각오로 싸워가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20여 년간의 긴 싸움은 한 편으로는 이긴 싸움이었다. 일본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피해 여성들이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운동을 끌어왔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그곳에서 만난 사람을 감동시키고, 일본을 단순히 경제 대국으로만 알고 있던 이들에게 과거 어떤 수치스러운 잘못을 했는지 인식시킨 것만 해도 적지 않은 성과였다.”

정대협은 1992년 유엔인권위원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상정한 이래 전시 중 여성인권 유린의 문제로 국제사회의 지지와 연대를 확산시켜 왔다. 다만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뛰어들 수 없는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큰 벽이다.
“너무나 안타깝다. 그동안 해왔던 활동들을 중심으로 해서 국제여론의 힘을 더 모으는 일을 집중적으로 할 계획이다. 세계대전 종식 70주년이니 올해는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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