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친 허리 부여잡고 혹한의 추위 속 꽁꽁 언 땅위에, 저 높은 광고탑 위에 온몸 내던지지만…
다친 허리 부여잡고 혹한의 추위 속 꽁꽁 언 땅위에, 저 높은 광고탑 위에 온몸 내던지지만…
  • 오진석 기자
  • 승인 2015.02.06 16: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리즈 기획 : 장기투쟁 농성장을 찾아서> LG유플러스 비정규직 노동자들


한국사회에서 노동 문제는 오래된,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현안이다. 열악한 근로환경의 현장에서 일하다 부당하게 해고당한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다. 그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그리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투쟁에 나선다. 그 형태도 다양하다. 사태를 알리기 위해 공장 굴뚝 위를 오르는 등 목숨을 건 농성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여전히 남의 일이라는 듯 무심하기만 하다. <위클리서울>은 혹한의 날씨 속 극한의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자들의 농성장들을 찾고 있다. 이번 호에는 오체투지와 고공농성 등 온 몸 내던지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LG유플러스 노동자들을 만나봤다.




“하루 10시간씩 일했다. 쉬는 날도 없다. 일주일에 하루 쉬면 다행이다. 그런데 야근 수당에 업무비용이 없다. 회사 멋대로 평가해 급여를 차감했고, 이 일자리조차 잃을까봐 매년 고용 불안에 떨어야 했다. 처우개선을 요구하려고 해도 사장이 없다. 협상 파트너가 없다. 우리의 진짜 사장은 도대체 누구인가. 더 이상 주인도 모르는 노예로 살지 않겠다.”

LG유플러스 70개 고객센터 3000여 명의 노동자들은 하청업체 소속이다.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선 외근기사 2000여 명과 내근직 1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70개 고객센터는 위로는 원청인 LG유플러스, 아래로는 중간업체와 하도급 계약을 맺고 있다. 이 같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 때문에 위장도급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교섭 중단, 사태 장기화

LG유플러스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 노동자들은 LG유플러스에 간접 고용된 인터넷 및 IPTV 설치·수리 기사들로 3개월 넘게 총파업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불법적인 노동실태를 바로잡고 12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해달라”고 촉구하며 서울역, 광화문, 여의도 등에서 땅위에 온몸을 내던지는 오체투지에 15미터 높이의 광고탑 위 고공농성 등 극한의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인터넷과 IPTV 설치·수리 등을 담당하는 이들은 ▲ 다단계 하도급 근절 ▲ 고용안정 보장 ▲ 노동시간 단축을 포함한 복리후생 등을 요구하며 지난해 민주노총 산하 희망연대노조를 결성하고 11월부터 총파업에 들어갔다. 이들은 특히 시간 외 수당 없는 저임금과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 다단계 재하도급으로 인한 만성적인 고용 불안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조는 파업 중에도 외주업체 협력사 사장단, 원청업체가 권한을 위임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교섭을 벌였다. 그러나 협력사 사장단과 경총의 경우 원청의 승인 없이는 실질적인 결정 권한이 없어 사실상 교섭에 진전이 없는 상태였다.

지난달 초 시작한 집중 교섭도 보름 만에 중단됐다. 이후 전혀 진전이 없다. 사태는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게다가 그 동안 합의했던 것들마저 뒤엎어버리면서 교섭은 완전히 중단된 상태다.

노동자들은 업체변경 시 고용승계, 재하도급 금지, 업무 프로세스 개선, 노동시간 단축 등의 요구안을 들고 1년 여 가까이 협력사대표단 그리고 교섭위임단체인 경총과 교섭해왔다. 하지만 실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원청인 LG유플러스와의 교섭은 파행을 거듭하다 결국 결렬된 상태다. 이 모든 문제는 진짜 사장인 LG유플러스와 LG그룹이 직접 나와서 노조와 대화를 해야 해결될 수 있다는 게 노동자들의 지적이다.

지지부진한 협상 탓에 해가 바뀌었음에도 이들 노동자의 하루는 여전히 차가운 거리에서 시작되고 끝이 난다. 조합원들의 건강은 악화할 대로 악화했다. 파업 장기화로 몇몇 조합원은 허리디스크 등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가뜩이나 파업으로 생활이 버거운 가족에게 수술비라는 짐까지 안기게 된 것이다.






주인 없는 노예

“1주일에 60~70시간을 일했다. 점심시간도 없이 뛰었지만 한 달에 고작 2~3일밖에 쉬지 못했다. 회사는 업무비용까지 우리에게 떠넘겼으며 멋대로 평가해 급여를 차감했다. 매년 고용 불안에 시달려 마음 편히 쉴 수가 없었다. 우리의 진짜 사장은 과연 누구인가. 더 이상 주인도 모르는 노예로 살지 않을 것이다.”

사측은 일방적인 업무 불이익, 표적탄압, 업체변경 과정에서 조합원 대량해고 등 온갖 부당노동행위를 서슴지 않았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특히 이들 노동자들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기본출근 시간 오전 8시, 평균적인 퇴근시간 저녁 8시로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근무를 한다. 일요일에도 월 1~2회 당직 근무에, 공휴일에 정상 근무를 함에도 시간외 수당을 제대로 주는 곳이 없다는 게 노조원들의 지적이다.

“대기업에서 일한다고 자부했던 서비스 기사를 진정한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등 원청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국내 굴지의 통신사에서 일하는 우리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해부터 투쟁을 벌여오는 동안 수차례 끌려 나가고, 수많은 노동자가 구속됐지만 거대재벌 진짜 사장들은 여전히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지부 경상현 지부장은 “현행법상 연장근로, 휴일근로 등에 대한 시간외 수당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사항”이라며 “상식적인 법조항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 5일 40시간이 법으로 규정돼 있고 연장근무 시엔 수당을 지급받아야 한다. 그런데 회사는 이런 상식적인 법조항조차 지키지 않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묵살한다. 남들처럼 주말에 쉬고 싶다는, 저녁식사를 가족과 함께 하고 싶다는 이런 소박하고 당연한 요구를 회사가 쉽게 수용하고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협력업체건 원청이건 노조와의 교섭을 회피했을 뿐이다.”

원청이 사실적 사용자이지만 3자 교섭이 어려운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원청과의 3자 교섭을 의무화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경 지부장은 “법이 미비한 상태에서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교섭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노동부가 손을 놓고 있다는 게 문제”라며 “노동부가 할 일을 노동자들이 대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정부여당은 뒷짐만…

“정부 발표 내용을 들여다보면 비정규직 양산대책일 뿐이다. 비정규직 이용기간을 늘리고, 해고 요건까지 완화해 사용자들이 언제든지 정규직을 해고해 비정규직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위한답시고 이러한 수준의 대책을 내놓고 있는 박근혜 정부는 아직 비정규직의 처절한 현실을 모르고 있는 것인가. 아니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29일 박근혜 정부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발표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급증하며 심각한 사회문제가 돼가고 있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종합대책을 내놓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노동자들은 정부의 대책안이 ‘비정규직 양산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경상현 지부장은 “진짜 사장이 나올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도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외침을 외면하며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진정성 있는 대책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하루 빨리 박근혜 정부가 나서서 진짜 사장이 노조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부여당도 여전히 뒷짐을 지고 있는 상황. 경 지부장은 “비정규직 현안을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가 가진 모든 힘과 수단을 동원해 전방위적인 전면전을 벌일 것”라고 경고했다.

“지난해부터 노동조합을 만들어 진짜 사장이 나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외침이 아직도 서울시내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문제들을 그대로 내버려둔 채 ‘비정규직 종합대책’ 운운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재계 3, 4위 LG그룹의 계열사인 LG유플러스가 전국적으로 수천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양산하고, 정당한 권리요구마저 외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그 문제를 그대로 방치하고서는 그 어떤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투쟁에 임할 것이다.”


오진석 기자 ojster@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 뉴텍미디어 그룹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다 07108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 인터넷 : 서울, 아 52650 (등록일·발행일 : 2019-10-14)
  •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영필
  • 편집국장 : 선초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목로 72(신정동)
  •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전무이사 : 황석용
  • 고문변호사 : 윤서용(법무법인 이안 대표변호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 위클리서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weeklyseoul.net
저작권안심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