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설날 새벽 우리 마을에는 잔설이 뿌려졌다. 아직 해도 뜨기 전의 아침 일찍 밖으로 나갔다가 발견한 것이니 아침에 온 것은 아니었다. 간밤에 열두 시도 넘어 잠자리에 들었으니 밤에 온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두 말이 필요 없이 새벽에 내린 것이었다.

손을 내밀어 만지려고 하면 이내 녹아버릴 정도로 엷게 깔린 그것은 눈이라기보다 떡가루 같았다. 누군가 저 멀리 높은 곳에서 고운 떡가루라도 밤새 골고루 뿌려준 듯이 어느 곳 하나도 예외 없이 공평하게 하얀 것이 보기에 겁나게도 좋았다. 보기에도 부드러운 그것은 마치 세상이란 원래 이런 거야, 이래야 하는 거야, 하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걷기에 불편은 전혀 없었다.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면 눈은 이내 녹아버렸다. 사람이 지나가면 신발 바닥으로 눈은 찰싹 달라붙어서 역시 사라져갔다. 상록수 이파리와 나뭇가지들 사이에 내려앉은 것들만 오늘 새벽에 눈이 왔어요, 하고 남아 있을 뿐이었다. 마을 한복판에 선 느티나무는 완전히 한 폭의 그림이었다. 아니 그림보다 몇 천 배는 더 아름다웠다.

어떤 사람은 백 년이 넘었다 하고, 다른 사람은 삼백 년은 족히 됐다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오백 살은 됐을 거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아직 우리 마을 한복판에 서 있는 느티나무의 연령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 지금 거기에 그런 자세로 서 있다는 게 중요하지, 하는 뭐 그런 심사라고 하면 말이 좀 되는지 모르겠다. 

느티나무 아래 거대한 평상이 있었다. 조금 과장을 하자면 오십여 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규모의 평상이었다. 지금도 그 잔해가 남아 있어서 규모를 짐작케 한다. 그렇다. 지금은 다만 짐작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지금은 일 년이 다가도록 느티나무 그늘을 찾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여름이면 무성해지는 잡풀이 그것을 증명한다. 느티나무에게 만일 사람과 같은 외로운 감정이 있다면, 지금 느티나무의 고독은 어느 수위까지 가 있을까. 혹시 고독에 사무쳐서 쓰러지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느티나무에 대한 나의 관심사이다.





우리 집에서 읍내든 어디든 나가고자 해서 집을 나서면 느티나무를 지나게 된다. 집으로 들어갈 때도 마찬가지다. 그때마다 나는 느티나무를 올려다본다.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슬픈 일 기쁜 일 분노가 치미는 일 등등 엄청나게 많은 사연들을 느티나무는 품고 있을 것이다. 궁금하다. 그리고 듣고 싶다. 느티나무야, 내게 그 이야기를 좀 들려주렴. 가끔은 이런 감상에 빠지기도 한다.

어쨌든 기분이 매우 상쾌한 설날 아침이었다. 마침내 시간이 돼서 동생들이 왔다. 조카들도 왔다. 오랜만에 우리 집 토방에 신발들이 멋대로 색색이 늘어섰다 내가 명색이 장남이라서 차례상 차리기를 내 집에서 하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제수씨들의 고생이 자심하다. 그 고생을 언제나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셋째 동생은 이번에도 빠지는 모양이다. 벌써 이 년째 그 모양이다. 길이 멀어서 못 오는 것은 아니다. 몸이 아파서 못 오는 것도 아니다.

셋째 동생은 시설 하우스를 하다가 빚만 지고 물러난 이후 노가다를 뛰던 중에 농협 주유소에 들어갔다. 비정규직이다. 그날 이후 한 번도 명절을 쇤 적이 없다. 시골 주유소는 대부분 밤 열 시면 문을 닫는다. 그리고 새벽 여섯 시 즈음 문을 여는데 그놈의 문 여는 일을 동생이 맡아서 처리한다. 그 조건으로 취직을 했고, 그 조건으로 주유소 사무실 이층에 살림집도 차렸다.

여섯 시부터 열두 시까지 근무를 하고, 열두 시에 점심 겸 휴식 시간을 두 시간 정도 갖고, 그리고 다시 근무에 들어가서 저녁 열시까지 있다가 문 닫고 퇴근한다. 휴식 시간에도 아르바이트생들이 뭔가 실수를 하거나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자다가도 뛰쳐나가야 한다. 공휴일은 한 달에 딱 한 차례, 아무 날이나 본인이 선택해서 한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다. 나는 동생의 그런 일이 매우 불만이어서 날도둑놈들이라고 욕에 욕을 해대지만, 동생은 묵묵히 해낸다.

농업협동조합이 농업과 관련된 일에 열심을 팔지 않고 수익사업에 자꾸 뛰어드는 일을 어떻게 봐야 할지도 나로서는 고민이다. 하나로 마트가 생기면서 면단위 잡화점들은 태반이 문을 닫았거나 고스톱 판으로 전락했다. 주유소도 고창 관내에만 벌써 넷인가 다섯 개가 농협간판을 달고 들어선 이후 다른 주유소들은 벌써 몇 곳이 문을 닫았고, 몇 곳은 종업원 없이 주인 혼자 운영한다. 





이런 현상은 금융업을 하는 농협 자신에게도 이로울 것이 없을 것 같은데 농협 측의 계산은 다른 모양이다. 그 다른 게 뭘까? 추리를 하다 보니 결국 돈과 닿았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정규직들은 매년 스톡옵션이라나 특별보너스라나 하여튼 그 비슷한 명목의 가외수입을 올린다는 얘기 정도는 나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가 보다. 오늘날의 농협은 미래에는 관심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할 뿐이다.          

“너희 부대는 안녕하시냐?”

조카들과 함께 제기를 열심히 닦고 있는 현역 직업군인 막내 동생에게 물어보았다. 지나가는 소리로 그냥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정말로 궁금했다. 장교든 사병이든 군인 개개인이 나쁜 뉴스의 중심으로 떠오른다는 건 좋은 조짐이 아니었다. 일찍이 이렇게도 사흘이 멀다고 군인들의 못된 짓이 국민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적은 없었다. 문제는 그런 일이 예전에도 지금과 똑같이 많았는데 은폐되고 있었던 것이냐, 아니면 요즘 들어 부쩍 빈도수가 늘어나고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저희는 아직, 아무 일도 없어요.”

막내는 제기를 닦다 말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의미심장했다. 그냥 아무 일도 없는 게 아니고 아직은 없다고 하면서 웃고 있는 그 웃음을 어찌 해석해야 하나? 하긴 저도 그런 문제는 민감해서 함부로 입을 열 수는 없을 터이었다.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조직의 구성원은 조직의 논리를 따라야 하니까. 그래서 웃어야만 할 것이다. 남녀상열지사에서는 웃음도 죄라고 말하는 시인도 있기는 하지만, 엄격한 군율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세계에 몸담고 있는 까닭으로 입을 다물어야만 하는 동생의 웃음은 분명 죄가 아니었다. 다만 그 웃음을 접한 내가 의미심장하다고 추론을 해볼 뿐이다.  

제수씨들은 떡국을 끓이고 잡채를 데우고 등등 손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 일을 척척 처리해내는 한편 보육교사 문제로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 또한 너무나 민감한 사건인데다 곳곳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상황이라 우리 모두가 금방 합류해 들어갔다. 바늘로 아이를 찌르는 보육교사를 어떻게 볼 것이냐. 주먹으로 아이의 싸대기를 줘패서 쓰러트리는 보육교사는 또 뭐냐, 등등 보도된 사건 하나하나를 불러내놓고 열을 올리다가 결론으로 치달아갔다.





열을 올리는 것까지는 만장일치로 의기투합이 되었지만, 결론 부분에서는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처럼 엇갈렸다. 보육교사 개인의 자질문제라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일이 너무 많아서 스트레스가 엄청 쌓이는데 그런 식으로 푼다는 의견도 있고, 사람들이 보육교사를 선생으로 보는 게 아니라 유모 내지는 하녀로 보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엉뚱하게도 대통령이 옷을 너무 자주 그리고 화려하게 바꿔 입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그리하여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대통령의 이른바 패션외교로 비화되어 갔다. 대통령이 카메라에 찍힐 때마다 옷이 바뀌는데 같은 옷을 두 번 입는 경우를 본 적이 거의 없다는 얘기가 나왔고,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의 옷을 단순한 의상으로 보는 게 의전개념으로 보기 때문에 사비로 사는 게 아니라 세금으로 산다는데 이러다가 필리핀의 아키노 대통령 부인 이멜다 꼴 나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는 매우 걱정스런 얘기도 나왔다.

그러는 동안 차례상이 다 차려졌다. 향을 피우고, 술잔을 술로 씻어내고, 절을 하고, 술을 따르고, 수저와 젓가락을 놓고, 절을 하고, 오 분간 묵념 형식의 침묵을 하고, 떡국 그릇을 물그릇으로 바꾼 다음 또 절을 하고, 음복을 하고, 그리고 자 먹자, 하고 둘러앉아서 떡국을 먹고 술을 한 잔씩을 돌리는 사이에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와, 진짜 뭐 그런 사람이 다 있어요? 배꼽 빠져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막내가 군인답게 호탕한 웃음을 웃다 말고 입안의 것들을 뿌리고 말았다. 그 모습이 너무 우스워서 우리는 박장대소를 했다. 그리고 막내가 말한 그 사람의 표정과 발언이 떠올라서 또 한 번 웃었다. 그러나 이번의 웃음은 웃음이라기보다 실소였다. 실소도 허무한 실소였다.





그 사람은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말하고 있었다. 전라도 의원들이 왜 충청도 출신 국무총리 후보자를 심문하듯이 하느냐고.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장에 증인으로 나온 이완구씨의 친구가 했던 이 말은 아마도 명언으로 기록되어 후세에 길이 전해질 것이다. 이런 명언은 국가 공권력을 개인의 재산이거나 특정 집단의 소유물로 파악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발언임이 분명하다. 

결국은 국무총리로 임명된 이완구씨의 발언도 우리를 허무한 실소의 세계로 끌어내기는 매한가지였다. 아니 그는 그의 친구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자신의 말 한 마디면 기자가 죽는데 죽는 기자 본인은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는다는 그의 발언은 일견 허장성세 같기도 하지만 진실성을 아주 배제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결국 그에게도 국가 권력이란 개인의 재산이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소유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그토록 수모(?)를 당하면서도 국무총리가 되고자 했다. 아니 국무총리 자리를 탈환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일단 웃어야 한다. 화를 내자면 목구멍에서 피가 올라올 테니까, 그러면 자칫 죽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웃어야 한다. 웃은 뒤에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왜 세금을 내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왜 세금을 내는가. 아이들이 먹는 과자 한 봉지에까지 붙어 있는 세금을 우리는 왜 아무 말 없이 내 왔던가. 우리가 국가라는 조직을 믿고 세금을 낼 때는 우리 스스로 처리해내기 어려운 일들을 대신 해달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미래의 문제로 불안할 때 그 불안을 해소하는 문제를 놓고 조직적이고 전문적으로 고민해 달라는 뜻이었다.





지금 국가는 그런 일들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가? 제대로는커녕 흉내조차도 못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까닭도 이유도 없이 침몰한 세월호 문제 하나만으로도 지금 우리의 국가는 국가 본연의 의무에 충실하기보다는 뭔가 속임수를 쓰느라 정신이 없는 게 분명하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들이라면 까닭도 원인도 없이 침몰한 세월호의 인양 문제를 놓고 한다, 안 한다, 감히 그런 저열한 말장난에 몰두하고 있는지 못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국가 운영자들은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는 문제를 놓고 조직적이고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고민하기는커녕 완전히 반대의 길을 걷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끊임없이 뭔가 사건을 만들어서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는, 그렇게 해서 국가 조직 자신의 위엄을 드러내는 데만 신경을 쓰고 있다는 의심마저 든다. 우리 아이들이 온갖 종류의 학원을 다녀야만 하는 불행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것도 어쩌면 우연이 아닐 수 있다. 

이런 국가를 우리는 어디까지, 언제까지 믿어야 하나. 오직 주둥이 하나만 팔팔하게 살아서 틈만 나면 국민행복이 어쩌고 창조가 어쩌고 살살 설탕 빨아먹는 소리나 열심히 해대는 이 사람들이 중국으로 튄 다단계 사업자 조희팔씨와 다른 점이 과연 있기나 한가? 원래 사기꾼들은 말이 화려한 법이다. 사탕발림이라는 말은 그래서 생겼다. 

두 눈 벌겋게 뜨고 당한다는 말이 그렇게도 실감나게 와 닿을 수 없는 요즘이다. 계속 이렇게 당해야만 하는가? 아니지 않나? 등등 이런 피멍 든 소리를 중구난방으로 해대고 있느라 우리는 아이들을 깜빡 잊고 있었다. 구조가 복잡한 한복을 예쁘게 차려입은 다섯 살짜리 여자 조카녀석이 화장실에서 잉잉, 울고 있었다. 쉬가 마려워서 엄마를 불렀지만 엄마가 딴 데 정신이 팔려 있으니까 혼자 처리한다고 어떻게 해보다가 그만 치맛자락을 온통 적시고 만 모양이었다.

그제야 우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이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토론을 한답시고 아이들의 오늘을 망쳐놓고 있었구나.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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