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지옥’ 1억 빚더미 안은 KTX 해고 승무원들

“여전히 취직을 못하고 있는 동료들이 많다. 파업했다는 꼬리표 때문이다. 파업에 참여한 승무원 80%는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앞날이 막막하다. 1, 2심에서 승소했기에 대법이 이런 판결이 날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KTX 해고 승무원들이 1인당 1억원 가까운 `빚`을 떠안게 됐다. 최근 대법이 근로자 지위보전 및 임금지급 가처분 신청 관련 판결에서 코레일의 손을 들어주면서다. 4년간 받았던 임금을 다시 내 뱉어야 하는 상황이다.
 
해고 승무원들이 채무를 갚지 못할 경우 그 부담은 가족들에게 전가될 수도 있다. 해고 승무원 박모 씨는 <위클리서울>과의 인터뷰에서 형제부모에게까지 채권이 이양될 수 있다는 사실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당장 1억원을 내야하는 건 아니지만, 요즘은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사채업자들도 가족에게 채무를 부담시키지 않는데 왜 국가가 이런 만행을 저지르는지 모르겠다. 1억원, 당장 못 갚는다. 변호사들 말에 의하면 통상적으로 2개월 내에 법 집행이 진행된단다.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막막하다.” 


2008년 12월만 해도 법원은 해고 승무원들의 입장을 받아들였다. "본안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매달 180만원씩 지급하라"는 판결이었다. 하지만 2012년 12월 사측도 소송을 했다. 그리고 대법 판결로 소송을 거쳐 임금 지급을 중단할 때까지 받았던 돈을 환불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그동안 이들이 받은 임금은 9000만원에 달한다. 여기에 소송비용 등을 합쳐 1인 당 약 1억원 정도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박 씨는 현재 임신 중이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태아에게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우려스럽기만 하다.

“남편과 부모님은 괜찮다고 위로한다. 혹시나 태아에게 악영향을 주면 어쩌나 다들 걱정한다, 하지만 가족들이 내색을 안 할 뿐이지 1억원 채무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타들어갔겠는가. 오히려 괜찮다고 위로하는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렇게 오랜 시간 투쟁을 왜 했나 하는 생각이 문뜩문뜩 든다.”

판결 직후 자살까지 생각했던 해고 승무원도 있었다는 게 박 씨의 전언이다. 박 씨는 그러나 “그래도 항상 KTX 승무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며 “다들 마음을 다 잡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10년 가까이 끌어온 승무원들의 투쟁은 결국 지난달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1심과 2심에서 모두 ‘코레일의 노동자’로 인정받았지만, 대법원은 이 결과를 뒤집었다. 2010년 나온 1심 판결에서 법원은 승무원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코레일(옛 철도공사) 측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항소했고, 2011년 나온 2심 판결에서도 승무원들이 이겼다. 그러나 또 코레일은 항소했다. 결국 지난달 26일 대법원은 1심과 2심의 판단을 뒤집어 사건을 파기환송한 것이다.

대법원이 관련 소송을 파기환송 한것에 대해 철도노조 KTX 승무원지부 김승하 지부장은 "1심, 2심의 정당하고 상식적인 판결을 뒤집었다"고 비판했다. 김 지부장은 "1억원이라는 돈을 반환할 능력이 되는 승무원이 정말 한 명도 없다"며 "그것 때문에 재산압류라도 들어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 지부장은 "개인이 갚을 능력이 없으면 이런 것들이 다 가족에게 돌아갈 텐데 결혼한 친구들은 `남편들에게 피해가 안 가도록 이혼을 해야 하나`, `나는 애라도 없지, 쟤는 애가 둘인데 어떻게 하나` 서로 이런 걱정들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파기환송심과 관련 철도노조는 "최선을 다해서 결과를 뒤집을만한 증거를 찾는 일에 집중하고 우선 코레일 측과 교섭을 요구하려 한다"고 밝혔다. 철도노조는 "코레일이 마지막 교섭에서 약속했던 1심 결과를 받아들이겠다는 것도 상기시키고, 해고 승무원들이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한다"고 밝혔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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