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기획 : 장기투쟁 농성장을 찾아서>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들


한국사회에서 노동 문제는 오래된,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현안이다. 열악한 근로환경의 현장에서 일하다 부당하게 해고당한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다. 그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그리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투쟁에 나선다. 그 형태도 다양하다. 사태를 알리기 위해 공장 굴뚝 위를 오르는 등 목숨을 건 농성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여전히 남의 일이라는 듯 무심하기만 하다. <위클리서울>은 폭우가 쏟아지건 혹한의 눈보라가 몰아치건 목숨까지 내건 채 길게는 수년에 걸쳐 극한의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자들의 농성장들을 찾고 있다. 이번 호에는 SK브로드밴드 노동자들의 고민을 들어봤다.





“1주일에 60~70시간을 일했다. 점심시간도 없이 뛰었지만 한 달에 고작 2~3일밖에 쉬지 못했고, 회사는 업무비용까지 우리에게 떠넘겼다. 회사 멋대로 평가해 급여를 차감했고, 이 일자리조차 잃을까봐 매년 고용 불안에 떨어야 했다. 우리의 진짜 사장은 과연 누구인가. 더 이상 주인도 모르는 노예로 살지 않을 것이다.”

SK브로드밴드의 옷을 입고 SK브로드밴드의 지시에 따라 텔레비전과 인터넷·전화를 설치하고 수리하는 일을 하는 87개의 행복센터 기사들은 하청노동자다. 전국 91개 센터가 위로는 원청, 아래로는 중간업체와 도급계약을 체결한다. 내근직 1500여 명과 외근기사 3000여 명이 일을 하고 있다. 개통, 철거 기사들은 개인사업자 형태나 소사장제 형식으로 개별 도급계약을 맺고 있다. 이 같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 때문에 위장도급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위장도급 문제 계속 제기했건만…

SK브로드밴드의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노조 간부 구속과 고공농성 등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이들 노동자들은 SK브로드밴드에 간접 고용된 인터넷 및 IPTV 설치·수리 기사들이다. 이들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불법적인 노동실태를 바로잡고 12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SK브로드밴드 협력업체에 대한 수시감독 결과를 발표하고, 일부 개통기사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했다. 그동안 노동계는 통신기업 개통기사들의 위장도급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 임원진은 지난해 9월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소속 의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시간을 오래 끌지 않고 제기되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대승적 차원에서 빠른 결단을 내리겠다”고 약속했다. 즉각적인 노사교섭 진행 및 부당노동행위 시정, 다단계 고용 근절 등의 세부적 방안도 내놨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급기야 SK브로드밴드 서비스센터의 간접고용 노동자 1200여 명은 노숙농성에 이어 지난해 10월 6일 사상 첫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은 혹한의 날씨 속 광화문 전광탑 고공농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해결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약속했던 하성민 SK텔레콤 전 대표이사가 올해 SK그룹의 수펙스추구협의회 ‘윤리경영위원장’ 직을 맡으면서 사태는 재벌기업의 사회적 책임 논란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SK브로드밴드는 지난 2009년 9월 서비스의 신청, 개통, 장애처리 등을 담당하는 기존 ‘고객센터’의 업무에 지역 마케팅과 체계적 고객 관리 역할을 강화한 ‘행복센터’를 설립했지만 현재 전국 87개의 센터 중 직접 관리 중인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각 센터마다 원청(SK브로드밴드)과 직접 계약을 맺는 1차 협력업체(외주업체)의 센터와 중간 업체가 계약을 맺고, 그 업체가 산하에 2~3개 지역의 행복센터를 포괄 운영하는 다단계 하도급 형태를 띠고 있으며 별도의 법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행복센터에서 AS는 정규직, 개통(설치)·철거 기사들은 개인 도급계약(개인사업자 형태)이나 소사장제로 운영된다. 그리고 그 산하에 10여명 미만의 개별 도급기사들이 배치돼 운영되는 전형적인 다단계 하도급 구조다. SK브로드밴드의 옷을 입고 일을 하지만 SK브로드밴드가 고용한 직원은 아닌 셈이다.

행복센터 내 장애처리(AS)의 경우 외주업체는 정규직, 개통(설치)·철거·영업기사는 개별도급계약(건당 수수료지급) 및 소사장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또 근로계약서나 도급계약서 서류작성 없이 구두로 계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와관련 이경재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노조 위원장은 “본사 책정 단가의 60~70%를 주겠다는 등의 구두계약인데 서류가 존재하더라도 근로계약서나 도급계약서를 본인에게 전달하지 않고 사인만 하고 수거하고 있다”며 “근로계약서상의 근로시간은 무시되고 있으며 시간외수당은 일괄적으로 정액지급, 무단결근 3일 이상은 무조건 퇴사처리 등의 불합리한 조건 등이 들어 있다”고 주장했다.





지급되지 않는 시간외 수당

특히 이들 노동자들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기본출근 시간 오전 8시, 평균적인 퇴근시간 저녁 8시로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근무를 한다. 일요일에도 월 1~2회 당직 근무에, 공휴일에도 정상 근무를 한다. 하지만 시간외 수당은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현행법상 연장근로, 휴일근로 등에 대한 시간외 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에 해당된다.

“우리도 주 5일 40시간이 법으로 규정돼 있고 연장근무 시엔 수당을 지급받아야 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데 회사는 이런 상식적인 법조항조차 지키지 않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묵살한다. 남들처럼 주말에 쉬고 싶다는, 저녁식사를 가족과 함께 하고 싶다는 이런 소박하고 당연한 요구를 회사가 쉽게 수용하고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협력업체건 원청이건 노조와의 교섭을 회피하고 있을 뿐이다.”

이경재 위원장은 “회사 측은 파업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나오자마자 바로 대체 기사를 확보했고 파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대체 기사가 해당 지역에 일을 하러나가는 등 노동자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와 같은 호소와 파업을 동반한 농성에도 원청인 SK브로드밴드 사측은 협력업체 문제이니 나서기 어렵다며 뒷짐만 지고 있는 상태다. 이와 관련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처장은 “원청이 실제적 사용자인데 노조가 3자 교섭조차 못하고 있다”며 “법적으로 보호를 못해주니 문제가 되는 것이고 1단계 하도급이 아니라 다단계 식으로 계약이 되기 때문에 재하도급을 금지하고 원청과의 3자 교섭을 의무화 한다던가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법이 미비한 상태에서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교섭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고용노동부가 손을 놓고 있다는 게 문제”라며 “고용부가 할 일을 못하니 시민들이 대신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민변의 노동인권 전문 권영국 변호사도 “1년마다 업체가 재계약되는 형태인데 협력 외주업체가 1년만 하고 그만두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순전히 원청의 의지에 따라 재계약이 이뤄지는 것이고 노무인사 관리와 수리설치 등 업무배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해보면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센터의 작업결정권이나 지역, 물량에 대한 배당 등의 업무가 원청의 지시 아래 이뤄지기 때문에 실질적 결정 권한은 원청이 갖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이어 “형식적으로는 위장도급이라고 보기 어렵겠지만 이들이 노무를 제공하는 것이지, 독자적인 자본이나 기술이 없는 형태이기 때문에 원청의 업무를 종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위장도급의 가능성도 존재한다”며 “현행법상에는 파견과 도급에 대한 기준이 분명하지 않아 이를 엄격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법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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