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싸움, 패소로 1억원씩 물어줘야 하는 KTX 여승무원들 비참한 나날


“대법 판결로 조합원들 모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상태다. 사회로부터 또 다시 외면당하고 버림받았다는 상실감과 1억여 원이라는 빚을 고스란히 떠안은 채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7년 동안 이어져왔던 KTX 여승무원들의 복직 싸움이 일단락됐다. 대법원은 지난 2월 26일 KTX 여승무원들을 한국철도공사에 소속된 근로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사측인 철도공사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에 따라 여승무원들은 월급과 소송비용 등으로 각각 1억여 원을 사측에 돌려줘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들 승무원들은 2006년 집단 해고된 이후 단식농성·천막농성·쇠사슬농성·고공농성 등을 통해 정규직이 어려우면 한국철도공사가 직접 고용이라도 해달라며 10여년을 싸워왔다. 2008년부터 이어온 법정 다툼은 지난달 26일 결국 패소로 종지부를 찍었다. 대법원은 여승무원들이 코레일을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 등 청구소송에 대해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있다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파기,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10년의 세월, 주저앉아 눈물만…

“오랜 시간 싸워오면서도 항상 KTX 승무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1, 2심에서 승소했다.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봤지만 대법원 판결에서 이렇게까지 뒤집힐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조합원들 모두 좌절감이 너무 큰 상태다.”

철도노조 KTX승무원지부 김승하 지부장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대법 판결이 있던 날 김 지부장을 비롯 조합원들은 재판정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너무 어이없고 절망스럽고 하니까 처음엔 눈물조차 안 나더라. 그런데 옆에 있던 동료가 주저앉아 울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그때서야 울컥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옆에 있는 3살짜리 아들이 ‘엄마, 왜 울어’ 그러면서 같이 울었다. 또 이런 상황 자체에 너무 화가 났다. 개인 사정 때문에 법원에 오지 못하고 집에서 (판결소식을) 전화로 들은 친구들도 있었다. 전부 울음바다가 됐다.”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오직 복직하리라는 희망만 안고 살아왔는데 대법원의 판결로 10초 만에 끝이 나고 만 것이다. 김 지부장은 아직까지도 그저 허무할 뿐이라고 했다.

“파업 돌입했을 때가 26∼28살이었다. 사회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고 커리어를 쌓아야할  때 우리는 파업해야 했다. 소송을 하면서도 생계유지를 위해 각자 다른 일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3년이라는 긴 투쟁기간 때문에 경력이 단절돼 재취업이 굉장히 어려웠다. 또 KTX 파업 승무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채용에 불이익을 당하는 일들이 많았다.”

서류전형에 합격해 면접을 볼 때도 ‘너 이 회사에 들어와서도 단체행동에 앞장서는 거 아니냐. 여기 와서도 파업을 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이력서에 KTX 승무원 경력을 적지 않은 동료들도 있었다.

“3년이라는 기간이 굉장히 길다. 그래서 그걸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고민했더니 한 친구는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지금으로선 정말 참담한 심정이다.”






‘이혼과 자살’ 극단의 생각까지

34명의 KTX 여승무원들은 2006년부터 2008년 말까지 3년간 줄기차게 투쟁했다. 처음엔 370명이 함께 했다. 1년 만에 90명으로 줄었다. 3년 지나 소송을 제기할 때는 34명이 남았다. 이들은 친구와 동료, 가족들 덕에 버틸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복직하면 승진시켜주겠다는 등 사측의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렇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20대의 황금기를 투쟁하느라 다 보내고 법정투쟁으로 돌아선 뒤 7년. 그동안 이들의 신상에도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80%는 결혼을 했고 한두 명의 아이를 둔 엄마들이 되었다.

여승무원들은 법원 판결에 따라 지난 4년간 코레일로부터 생계비 형태로 매월 180만원씩을 지급받아 오던 상태였다. 이로인해 만약 파기 환송심에서도 대법원 판결이 유지된다면, 소송에 참여했던 34명의 조합원들은 1인당 1억여 원에 가까운 돈을 코레일측에 돌려줘야 한다.  

“당장 1억원을 물어내야하는 건 아니지만, 요즘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사채업자들도 가족에게 채무를 부담시키지 않는데 왜 국가가 이런 만행을 저지르는지 모르겠다. 1억원, 어떻게 해도 당장 못 갚는다. 변호사들 말에 의하면 통상적으로 2개월 내에 법 집행이 이뤄진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2008년 12월 판결 때만 해도 법원은 해고된 승무원들의 입장을 받아들였다. “본안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매달 180만원씩 지급하라”는 판결이었다. 하지만 2012년 12월 사측이 소송을 제기하면서 임금 지급이 중단됐다. 그리고 2월 대법 판결로 4년간 받았던 임금을 모두 되돌려줘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동안 이들이 받은 임금은 1인당 총 9000여만 원에 이른다. 여기에 소송비용 등을 합쳐 1인당 약 1억 원 정도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임신 중이라는 KTX 승무원지부 박영선 선전부장. 그는 대법 판결 이후 이어지는 극심한 스트레스가 태아의 건강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

“남편과 부모님은 괜찮다며 위로한다. 혹시나 태아에게 악영향을 주면 어쩌나 다들 걱정한다. 하지만 그들도 내색을 안 할뿐이지 졸지에 1억 원을 돌려줘야하는데 얼마나 가슴이 타들어가겠는가. 그런데도 괜찮다며 위로해주는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렇게 오랜 시간 왜 투쟁을 했나 하는 생각이 문뜩문뜩 든다.”

판결 직후 이혼과 자살까지 생각했던 승무원도 있었다.

“1억원이라는 돈을 반환할 능력이 되는 승무원은 정말 한 명도 없다. 나중에 재산압류까지 들어오면 어떻게 하나 많이들 걱정하고 있다. 개인이 갚을 능력이 없으면 가족에게 부담이 돌아간다. 결혼한 친구들은 ‘남편에게라도 피해가 안 가도록 이혼해야 하나’, ‘나는 아이라도 없지, 쟤는 둘씩이나 되는데 어떻게 하나’ 서로 이런 걱정들을 하고 있다.”

박 선전부장은 그러나 “아직까지도 KTX 승무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며 “다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투쟁 대열로

KTX 승무원지부는 대법원 파기환송 관련 향후 거취를 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철도공사와의 교섭도 요구해놓은 상태다. 박영선 선전부장은 “1심 결과에 의거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공사 측의 약속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며 해결책을 찾아나가자고 결의했다”고 밝혔다.

“많은 투쟁사업장들을 보면 대부분 사측은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려보자며 회유해놓고 그 기간 동안 노동자들을 더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는 것 같다. 20대 꽃다운 청춘을 다 바쳤던 KTX승무원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다시 한 번 찾아보고자 한다. 아직도 잊지 않고 KTX 승무원들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많은 분들, 그리고 철도노조 조합원 분들과 연대해 이번에는 기필코 승리하는 투쟁이 되게 하려고 한다. 예전처럼 불꽃 튀는 투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순 없지만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모색해서 다시 한 번 KTX승무원으로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최선을 다해 찾아보자고 결의한 상태다.”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아보지만 심정은 여전히 참담하기만 하다. 대법원에서 ‘“KTX 여승무원들은 코레일의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판결을 내려졌을 당시를 생각하면 여전히 온 몸이 떨리고 힘이 빠진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는 없다. 

“결과를 뒤집을만한 증거를 찾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또 현재 저희 KTX 승무원들은 전국철도노동조합의 조합원으로서 우선 공사와의 교섭을 진행하려고 한다. 그들이 마지막 교섭에서 얘기했던 1심결과를 받아들이겠다는 약속도 상기시킬 것이다. 해고된 철도노조원들 가운데 복직에 성공한 경우도 많았다. 우리도 희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투쟁해서 KTX 승무원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한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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