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활터 ‘초파정’에서 (1)

사람의 몸에는 일상생활에서 안 쓰는 근육이 얼마나 많이 잠복해 있는 것일까. 얼마나 많은 근육을 적시 적소에 활용해야만 사람은 사람답게 당당해지는 것일까. 농부는 엄청나게 많은 근육을 사용하지만, 안 쓰는 근육 또한 엄청나게 많이 있었다는 것을 활터에 가서 보면 이내 알게 된다. 그래서 활을 아는 농부는 트랙터를 몰고 바쁘게 논갈이를 하다가도 잠깐씩 짬을 내어 활을 잡는다.

“며칠에 한 번씩이라도 해줘야지, 안 그러면 가슴이 막 오그라들어요.”

담박골에서 트랙터를 몰고 달려온 중년 농부의 눈빛은 이십대 청년보다도 맑았다.  그가 말하는 며칠이 실제의 며칠인가는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오그라드는 느낌의 가슴을 펼 수 있다는 언술 하나만으로도 나는 굉장한 보물을 얻었다는 기분이었다. 그는 한 시간여 동안에 십중 팔시, 열 발을 쏘아서 여덟 발을 과녁에 맞춰놓고 돌아갔다.

시위를 떠난 살은 바람을 뚫고 물결을 뛰어넘어서 달린다. 아니 날아간다. 그리하여 거기에 도달한다. 거기는 어디인가. 현상적으로는 과녁이 되겠지만, 과녁은 말 그대로 현상일 뿐 본질은 아니다. 과녁 너머의 어떤 것이 없다면, 그 어떤 것에 대한 기대와 믿음 그리고 선망이 없다면 활쏘기는 문자 그대로 활량들의 놀이에 불과할 것이다. 

넘을 초(超)에 물결 파(波), 초파정에서 활시위를 당기기 시작한 지도 어느새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초보 중에서도 왕초보인 셈이다. 왕초보인 내 귀에 들리는 활쏘기에 관한 정의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스포츠의 일종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도(道)에 이르는 닦음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두 가지 다 맞는 것 같지만, 어느 쪽이 진짜 정의에 부합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왕초보가 고민해야 할 일은 아니라 싶어서 일단 뒤로 미뤄놓았다.

# 트랙터를 몰고 와서


활쏘기에 뭔가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그러나 믿음은 있다. 여기에 뭔가 있다고 하는, 이러한 믿음의 바탕 위에서 깊이 심호흡을 하고 정신을 집중한다. 그렇게 활시위를 당기고 있노라면 뒷덜미에서 등뼈를 따라 굵은 땀방울 하나가 흘러내린다. 어떤 때는 등허리가 훅 달아오르기도 한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서 있어야 마땅한 자리에 지금 비로소 와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된다.

활 잡은 한쪽 팔을 앞으로 쭉 밀어내며, 시위를 잡은 다른 한쪽 팔을 뒤로 있는 힘껏 당겨내면 가슴에서 쩍 소리가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것을 만작이라고 한다. 가슴이 완전히 쩍 벌어지는 만작의 순간에 이르면 그토록 혼란스럽던 세상이 질서정연해지면서 하나로 모아진다. 우리는 그것을 편의상 과녁이라고 부른다. 세상의 모든 에너지가 집약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과녁을 뚫어질 듯이 응시하며 뒤로 당겨낸 손에 힘을 싹 빼버리면, 그러면 살을 붙잡고 있던 현에서 거문고 소리가 마치 천상의 음악처럼 들리고, 살은 쏜살이 되어 날아간다.

시위를 떠난 살에는 내 마음이 담겨 있다. 살이 내 마음을 싣고 어디로 가는가는 내가 아직 모른다. 살은 과녁에 맞기도 하고 안 맞기도 한다. 맞느냐 안 맞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너무 엉뚱한 곳으로 멀리 비켜 가버리지만 않는다면 된다. 됐다고 생각한다. 살에 실어 보낸 내 마음의 진정성이 어느 정도의 무게를 지녔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아직 그런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 경지에 이르고 나면 내 마음을 실은 살이 어디로 가는 것인가 하는 문제도 풀리리라는 믿음을 붙잡고 있을 뿐이다.  

돌아보면 참으로 어렵게 여기까지 왔다. 내 가슴 저 깊은 곳에 뭔가 있었다.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있다. 가늠할 수 없는 뭔가가 있어서 계속 꿈틀거린다는 것을, 외치고 있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 뭔가의 구체적인 형태나 소리 혹은 색깔 같은 것을 알 수는 없었다.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게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삶을 붙잡고 줄다리기를 해온 세월이 얼마인지는 굳이 헤아려볼 필요도 없다.

이게 대체 뭐란 말인가. 답답해서 미칠 지경에 이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끔은 인상불성에 이르도록 술을 마시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보기도 했다. 또 가끔은 말똥말똥 초롱하게 맑은 정신으로 미친 듯이 막춤을 춰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 순간뿐이었다. 나의 그런 미친 짓은 옆집이나 혹은 옆에 있는 사람을 괴롭히는 이를테면 민폐나 끼치는 것으로 끝날 뿐 내 가슴의 답답함은 해소될 줄을 몰랐다. 민폐를 끼치는 게 미안해서 또 가끔은 깊은 산속이나 외딴 섬 혹은 갯벌로 가서 색다른 미친 짓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 결과도 역시 별 다름이 없었다.

# 초파정 과녁


어떤 사람은 말한다. 사람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고통의 바다 즉 고해라고. 그 말은 결국 고통의 바다를 헤엄치며 자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내는 게 사람이라는 얘기가 된다. 존재형태 자체가 비극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하긴 죽는 줄을 알면서도 사는 게 사람이다. 생각을 하면서 산다는 것도 문제이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살면 될 것을, 어쩌자고 사람은 생각하는 능력을 갖고 태어나서 고통의 바다를 헤엄치고만 있어야 하는가 말이다. 그렇다고 아무 짓도 안 할 수는 없다.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한 뭔가를 해야만 한다.

“인생, 답이 없다.”

지난 설날 카카오톡에 이 한 마디를 남기고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죽음의 세계로 떠나버린 남자에 관한 뉴스가 나로 하여금 활터 초파정을 찾게 했다면 말이 좀 되려는지 모르겠다. 그 남자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는 솔직히 말해서 그때도 진지한 관심이 없었고, 지금도 진지하게는 관심이 없다. 인생은 탄탄대로 고속도로 위의 자동차 같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내 눈으로 볼 때 그의 행동은 완전 철부지 아이의 심술을 연상케 할 뿐이어서, 파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인간에 대한 실망만 가중된다는 것을 내가 이미 선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애써 피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르긴 하다.

친일이나 친미 등으로 기득권을 축적한 가문의 자식으로 태어나지 못했다면 다른 사람을 등쳐먹는 재주라도 스스로 길러야 하고, 최소한 거짓말의 달인이라도 돼야지만 그나마 큰소리 탕탕 치며 살아갈 수 있는 구조가 고착화돼버린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현실을 감안하고 보자면 그의 그런 행동은 사실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나를 떨리게 하는 것은 아내와 자식들의 생사여탈권마저 남편이요 아버지인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파악한 그의 절망적인 자본제일주의 사상이었다.

그는 아마 문제의식은 강하게 갖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문제는 문제를 풀어보고자 하는 의지가 너무 박약했다는 것이다. 의지박약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절망의 끝자락에서 시든 꽃처럼 피어나는 것이 아마도 의지박약이라는 이름의 그것이 아닐까. 그리고 절망은 분노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마련이다. 억울해서, 슬퍼서, 혹은 기가 막혀서 분노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행정당국이 그것을 해소하거나 터뜨릴 기회를 주기는커녕 감옥을 지어놓고 총칼로 위협을 한다. 어쩔 것인가. 

# 들어오고 나갈 때 여기에 인사를 한다.


대한민국에서 국민으로 살자면 분노조절장애는 아무래도 피해갈 수 없는 장벽이라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람을,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주위 사방 도처에 널려 있다. 대부분 한숨을 깊이 들이마시면서 꾹꾹 눌러 참지만, 도무지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서 뻥, 터뜨려버리는 사람이 하루에도 몇 명씩이나 뉴스에 잠깐 등장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한다.

자기 자신이나 가족 혹은 가까운 이웃을 파괴의 대상으로 삼는 이런 소극적인 폭력을 두고 어떤 사람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권력에 대한 절대복종의 문화가 낳은 서글픈 자폭 현상이라고 탄식하기도 한다.

내가 가난한 이유는 오직 내 자신과 내 부모의 무능함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소시민이 절대 다수인 대한민국의 권력층은 소시민들의 이런 심리를 아주 적절히 활용 내지는 이용하는 기술만 계속 축적해 왔다고 해도 아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대형 사고만 터졌다 하면 행정당국의 책임소재를 따지기에 앞서 “우리 모두 스스로를 돌아볼 때다”라는 식의 ‘내 책임이요’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주입해서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하여 책임이 있는 자들을 뒤로 슬쩍 빼돌려 버리는, 이런 절묘한 기술자들이 판을 치는 나라에서 분노조절에 실패한 사람이 적게 나오기를 바란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십여 년 전이었다. 대통령선거에 관한 이야기가 유례없이 요란하던 때였다. 이명박씨를 반드시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고, 그래야 우리의 살림이 피어날 수 있다고 후배 한 녀석이 강력한 목소리로 나를 윽박지르고 있었다. 충고라든가 호소라든가 뭐 그런 설득의 차원이 아니었다. 자신의 그런 주장을 내가 만일 동의하지 않는다면 나는 나쁜 사람이라는 투의 말을 후배 녀석은 감히 지껄이고 있었다.

나는 후배 녀석을 죽이고 싶었다. 내가 만일 후배 녀석의 주장에 반론을 펴기 시작한다면, 반론 자체가 나로서는 모욕이라서 견뎌내기 어려울 것 같았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건설현장 아르바이트를 했던 나는 개인적으로도 이명박씨의 성품을 조금은 알고 있었다. 사람의 정강이를 함부로 걷어차기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대통령 반열에 올라서려 한다는 사실 자체가 나로서는 뺨이라도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던 후배 녀석이 그런 사람을 반드시 대통령 자리에 앉혀야 한다고 나를 윽박지른다.

# 첫날 사범님의 강의

 

 

후배 녀석이 아니었어도 나는 그 즈음 거의 폭발 직전에 와 있었다. 너무도 이상한 마술이, 너무도 이상한 방식으로 나를 포위하고 압박해 온다는 느낌이었다. 이 사람을 만나도 이명박이요, 저 사람을 만나도 이명박이었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논리는 오직 하나 돈이었다. 돈이 없어서 굶어죽을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소형차를 타는 사람은 중형 이상 대형세단을 타고 싶어서 돈이 필요하고, 중형 이상 차를 타는 사람은 외제차를 타고 싶어서 돈이 필요한 것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면 돈이 그냥 막 굴러 들어온다는 무슨 가당찮은 근거를 제시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어쩐지, 그가 대통령이 되면 돈이 막 굴러 들어올 것 같은 느낌이 있다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논리가 유령처럼 거리를 떠돌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종교였다. 종교 중에서도 질이 낮은 미신이었다. 그런 질 나쁜 미신을 내게 들고 와서 강권하는 후배 녀석을 어찌해야 하는가. 이런 녀석을 살려둬야 하는가.

살인자가 되기 싫었던 나는 눈을 감고 말았다. 입도 꾹 다물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입도 다물고 코와 가슴과 그리고 어깨로 심호흡을 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다시 길게 뿜어낼 때, 그때 양 어깨가 위로 아래로 오르락내리락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을 나는 역력히 느꼈다. 그때 만일 내가 ‘인생, 답이 없다’하는 생각을 했다면 후배 녀석의 숨통을 끊어놓겠다고 덤볐을 것이다. 

겨우 어떻게 눌러 참기는 했지만 내 가슴은 이미 난도질이 돼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하루 종일 아무 곳으로나 달렸지만 수습이 안 돼서 다음 날도 자전거를 타고 하루 종일을 달렸다. 달리던 중에 그만 지쳐서 쓰러졌던 것인지, 의식적으로 쉬고 있었던 것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중에 보니 나는 어느 바닷가에 와 있었고, 거대한 해송이 숲을 이루고 있는 언덕에 앉아 있었다. 언덕에서 좌측은 바다였고, 우측은  과녁이 세워진 활터였다.

# 초파정 사두님


활터 초파정과 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인연이라고 했지만 크게 무슨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은 아니었다. 여기에 활터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그 뒤로도 가끔 초파정 근처를 지나갈 일이 있기는 했지만, 그때마다 나도 훗날 활쏘기 취미나 좀 들여볼까, 하는 생각이나 가끔 해보았을 뿐, 지금 당장 나도 좀 해보자 하는 생각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채 세월호 참사에 관한 뉴스를 접하고 말았다.

세월호, 그놈의 세월호 문제는 나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한 분노가 내 안에 잠복해 있었다는 것을 내게 알려주었다. 진즉에 고성능 폭탄 제조 기술이라도 익혀두지 못한 나 자신을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자책해야만 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엄벙덤벙 소리나 질러대고 있는 관료들의 총책임자인 박근혜씨는 대통령이 아니라 그저 한 사람의 예비주부일 뿐이었다. 이런 대통령이 관리하는 국가는 결코 나를 보호해주지도 않을 것이었다. 아니 못할 것이었다. 이용할 수 있는 한 이용하다가 이용 가치가 없어지면 방치하거나 잡아서 가둬놓고 죽어지는 날이나 기다리고 말 것이다. 이런 시각은 내 자신이 생각해도 물론 바람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지 마요. 그러지 마.”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바라보는 내 옆의 그녀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나를 걱정하는 그녀를 바라보는 내 눈에 홀연 탈출구가 보였다고나 할까. 활터 초파정은 그렇게 바싹 내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날로 결정을 했다. 내일 초파정으로 가자고. 활쏘기를 통해 스스로를 관리해 나가자고.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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