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우량기업이 외자유치와 구조조정, 노조파괴의 표본으로 전락”
“잘나가던 우량기업이 외자유치와 구조조정, 노조파괴의 표본으로 전락”
  • 최규재 기자
  • 승인 2015.04.03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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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기획 : 장기투쟁 농성장을 찾아서> 발레오만도 해고노동자들


한국사회에서 노동 문제는 오래된,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현안이다. 열악한 근로환경의 현장에서 일하다 부당하게 해고당한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다. 그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그리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투쟁에 나선다. 그 형태도 다양하다. 사태를 알리기 위해 공장 굴뚝 위를 오르는 등 목숨을 건 농성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여전히 남의 일이라는 듯 무심하기만 하다. <위클리서울>은 길게는 수년에 걸쳐 극한의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자들의 농성장들을 찾고 있다. 이번 호에는 발레오만도 해고노동자들의 고민을 들어봤다.



 

승용차 및 상용차 발전기와 시동모터, 배전기를 생산·공급하는 발레오만도. 업체의 공식명칭은 주식회사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다. 외환위기 이후 모기업 한라그룹의 부도로 전국 7개의 공장으로 나뉘어있던 발레오만도는 우량기업이었음에도 외자유치와 구조조정·노조파괴의 표본이 됐다. 대량 정리해고,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권력 투입 등이 이뤄졌다.

2010년 사측의 비생산업무 외주화 시도와 99일간의 직장폐쇄 그리고 기업노조를 앞세운 자본의 강력한 현장 통제에 숨죽여온 발레오만도 노동자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지역의 구심으로 노동운동을 이끌었던 사업장은 자본에 잠식된 노조파괴 사업장의 대명사가 돼버렸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8명의 현장조합원과 29명의 해고자들이 아직 있다. 금속노조 경주지부 발레오만도지회 소속 노동자들이다.


 

“외환위기 그리고 노조 무력화”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는 외자유치의 걸림돌이 되는 노조를 무력화시킨 후 외국인투자촉진법을 통한 외자유치를 관철시켰다. 각종 세금 감면과 토지 무상지원 등의 특혜가 주어졌다. 만도기계 역시 1999년 분할 매각됐다.

승용차 및 상용차의 발전기와 시동모터, 배전기를 생산·공급하는 경주 공장을 인수한 자본은 국내와 동남아시아 시장을 목표로 전략적으로 진출한 프랑스 자동차 부품사 발레오였다. 정연재 전 발레오만도지회 지회장(발레오만도 대책위원)에 따르면 고용과 노조, 단협이 승계되었지만 인수 이후 자본은 본사 경영전략에 따른 생산시스템 조정과 함께 식당노동자들의 외주화를 시도했다.

“노조의 현장투쟁으로 외주화를 막아낸 이후 줄곧 비교적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해왔지만, 국세감면 종료 등 혜택이 축소되는 인수 10년차를 지나며 노조가 우려했던 자본의 공격이 서서히 시작된 것이다. 2009년 3월 한국인 최초로 현 사장이 부임했고 노무인사담당 이사가 바뀌었다. 그들은 부임하자마자 며칠간의 임금체불 이후 복지 축소와 경비·식당·청소 등 비생산업무 외주화를 포함한 31가지의 축소안을 노조에 제안했다.”



그해 여름 사무직 구사대가 동원되면서 충돌사태가 벌어졌다. 노사가 공동 관리하는 사내근로복지기금을 사측에 무상 지원하고 정상화되면 갚는다는 내용의 합의를 하고 나머지 안은 철회됐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는 다른 마음을 먹은 자본의 탐색전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는 게 지회의 주장이다.

“비생산업무 외주화가 좌절된 이후 2010년 1월 사측은 또다시 단체협약을 무시한 채 경비노동자들을 생산직으로 전환 배치했다. 2월 4일 사측이 일방적으로 투입한 경비용역을 몰아낸 노조는 파업을 결의하고 4일간 품질향상운동으로 태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2월 16일 새벽 설 연휴 기간 200명 가까이 되는 사무직 노동자들을 집합시켜 합동차례까지 지내게 하며 일을 시켰던 공장에 기습적으로 직장폐쇄 공고문이 나붙었다.”


 

“어용조직이 현장 장악” 

이 같은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 발레오만도지회는 경비·식당·청소노동자는 물론 통근버스 운전노동자까지 모두 조합원인 비정규직 없는 공장이었다. 직장폐쇄 이후 사측은 작심하고 노조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일체의 노사교섭을 거부한 채, 업무복귀를 요구하며 출근투쟁을 벌이는 노동자들에게 물대포와 소화기까지 동원한 폭력을 휘둘렀다. 매일 전투와 같은 싸움이 이어졌다.

“사측이 불법적으로 동원한 용역의 폭력은 경찰의 방조 하에 묵인됐다. 그렇게 당하고 깨지는 노동자들을 지켜보던 경찰은 상황에 개입해 수십 명씩을 연행해갔다. 검찰은 투쟁의 기세를 꺾고 연대파업을 차단하기 위해 발레오만도지회와 금속노조 경주지부 핵심간부들을 줄줄이 구속했다. 노동부는 아무런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직장폐쇄를 비호하며 사측의 편에 섰다. 그 사이 사측은 ‘조합원을 위한 조합원 모임’이라는 어용조직을 만들어 현장을 장악했다.”

자본과 정부가 합작, 민주노조 무력화 작업이 일단락되자 현장에선 이른바 노-노 갈등이 불거졌다. 두 달 이상 직장폐쇄가 이어지는 가운데 ‘조합원을 위한 조합원 모임’(조합원모임)은 업무에 복귀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민주노총 탈퇴를 종용했다. 23년간 민주노조 조합원이었던 노동자들이 갈라지고 찢겨졌다.



직장폐쇄가 끝나자 대량해고와 대량징계 그리고 손해배상소송이 뒤따랐다. 621명이었던 조합원은 불과 두 달 만에 십분의 일로 줄어들었다. 자본이 겨냥한 노조파괴는 치밀한 준비와 전방위적인 공세로 폭발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2011년 8월, ‘조합원 모임’의 조직형태 변경 총회는 무효라는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이 있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러다 2012년 국회 용역폭력 청문회와 국정감사에서 창조컨설팅이 총대를 메고 자본·정부·검경이 합작한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폭로됐다.

“발레오만도 직장폐쇄와 관련 대구지방고용노동청 포항지청이 작성한 문건이 그대로 창조컨설팅에 제공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포항지청이 이를 시인했지만, 커넥션 의혹의 당사자인 근로개선지도과장은 이후 경남 마산고용센터장으로 임명됐다. 2013년 12월말 검찰은 발레오만도를 비롯 창조컨설팅에 노조파괴를 사주한 사업주의 부당노동행위 등과 관련된 금속노조의 고소건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2014년 4월 금속노조는 2010년 1월부터 2012년 8월까지 노조파괴 사업주가 창조컨설팅으로 입금한 금융거래내역을 공개했다. 공개된 바에 따르면 창조컨설팅은 11개 계좌를 통해 십여 개 사업주들로부터 80억이 넘는 돈을 벌어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 역시 4억원 이상을 노조파괴 대가로 지불했다는 노조의 주장이다.

“수많은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삶을 유린하고 파괴한 명백한 불법에 현재까지 내려진 처벌은, 정부와 관계당국의 비호 아래 자본의 사주를 받아 노조파괴를 ‘컨설팅’한 두 노무사의 자격 취소가 전부다.”

 

“노조 파괴 공작 인정해야” 

해고 생활이 길어진 탓에 29명 가운데 해고자 신분으로 정년퇴임을 맞은 이들도 생겨났다.

“‘뭔 힘이 있다고 큰 기업이랑 싸워 이기겠느냐. 지금이라도 가서 사장한테 잘못했다고 빌어봐라. 그게 빠른 거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 사회가 정당하다고 해서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올해는 정말 끝장을 봤으면 좋겠다.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지만 여태까지 왔으니까 끝까지 가보고 싶다.”

이들 노동자들은 ‘노조 파괴 사건’의 재정 신청 수용을 법원에 촉구하며 지난달 단식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앞서 금속노조는 노조파괴 혐의로 강기봉 사장을 고발했으나 검찰은 불기소처분을 내리고, 항고도 기각한 바 있다. 이후 금속노조는 지난해 6월 법원에 재정신청 했고, 지난달 26일 법원이 강기봉 사장의 노조파괴 행위에 대한 재판을 결정하며 검찰에 공소를 제기토록 했다.

정진홍 금속노조 경주지부장 직무대행은 “창조컨설팅과 손잡고 회사가 노동조합을 탄압한 이후 우리는 어마어마한 벌금을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검찰은 지금껏 단 한 번도 기소하지 않았”다며 “재정신청 결과 창조컨설팅과의 공모를 법원이 인정함으로써 무혐의 판결이 잘못되었음이 명명백백히 드러났다. 재정신청 수용에 따라 지체 없이 기소돼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피눈물을 멈추게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해술 민주노총 경북본부 경주지부장은 “이번 판결로 확고해진 것은 투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9개월간 재정신청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단식농성과 1인 시위를 해가며 이런 판결을 얻어냈다”고 독려했다.

정연재 발레오만도지회 비대위원은 “국정감사에서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 행태가 밝혀졌었지만, 발레오전장은 무혐의 처분되었다. 노조파괴 성공 계약서에 사인이 버젓이 있는데도 잘못을 저지른 사용주가 처벌되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노조파괴 성공으로 (창조컨설팅에) 보너스가 지급된 것도 인정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법원이 제대로 된 판결을 내리는 것 같아 조금이나마 고맙다”고 말했다.

오는 16일 예정된 노동조합 형태변경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과 관련 정 비대위원은 “대법원에서 노사양측의 공개변론이 있을 예정이다. 양측이 모두 공개변론 준비서면을 제출했는데 우리나라 최고 로펌을 고용한 발레오전장이 제시한 서류에는 있지도 않은 사실이 많아 기가 막혔다. 사죄해도 마땅치 않은데 여전히 이런 식으로 노조파괴를 해나가는 행태에 어처구니가 없다"고 덧붙였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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