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활터 ‘초파정’에서 (2)

 


# 사두님의 고천문 낭독과 재배

활터에서는 시위에 살을 걸어서 당겼다가 놓는 행위를 일러 살을 낸다고 한다. 화살을 쏜다고 하지 않고 낸다고 하는 이 표현이 사뭇 엄숙해서 나는 매번, 문득, 깜짝 놀란 마음으로 심호흡을 하고는 한다. 살을 낸다고 하는 그 표현이 한 편의 어떤 시를 연상케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음악적 리듬이 느껴지기 때문만도 아니고, 생각하면 할수록 철학에 가깝구나 하는 생각 때문만도 아니다.

정확한 이유는 나 자신도 딱히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쩌면 경우에 따라 무기로 전환될 수도 있는 활과 살을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된다는 다짐 내지는 경고의 메시지가 놓는다는 표현 속에 들어 있어서, 그래서 내가 이토록 그 표현을 주목해서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되는 것, 세상에 이보다 중요한 기본이 또 있을까. 권력을 잡아서는 안 되는 자들이 권력을 잡으면 온갖 망나니짓으로 사회 전체를 혼란 속으로 빠트려놓고 말듯이, 무기를 잡아서는 안 되는 아이가 무기를 손에 쥐면 앞뒤좌우 분간을 못하고 휘두르다가 끝내는 자기 자신마저 살해하는 참극을 빚어내기 십상이다.

물론 그들도 그렇게 하고자 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손에 쥐어진 것의 속성을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알만큼의 기초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거나 혹은 생략해 버린 데서 오는 자업자득의 비극일 뿐이다.


# 선서를 끝낸 직후

활터에서는 초심자가 기본적인 준비과정을 마치고 정식으로 살을 내도 된다는, 사대에 서도 된다는 사두님의 승인을 얻기에 앞서 제를 드리게 된다. 무기를 무기가 아닌 한 편의 시로, 음악으로, 철학으로 승화시키는 다짐 의식이라고 하면 말이 좀 되려는지 모르겠다.

흔히 하는 말로 고사라고 하는 이 제례 의식은 표면상 백발백중하게 해 주십사 하는 것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경거망동하지 않게 해 주십사 하는 기원이 담겨 있다. 바라건대 나로 하여금 생각 없는 생각에 빠져 함부로 날뛰지 않게 하여 주시옵고, 하는 뭐 그런 기도인 셈이다.

정식 명칭으로 집궁식이라고 하는 이 제의에 주인공으로 참석하기 위해서는 사두님과 사법님, 그리고 여러 수많은 선배 사우님들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전국 어느 활터를 가더라도 도난이나 폭행 같은 불미스런 사고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최고의 자부심으로 갖고 있는 사우님들이 이구동성으로 하시는 충고가 있는데 예의와 겸손이다. 궁도인이 엄수해야 할 아홉 가지 가르침 즉 궁도인 9계훈 중에서도 예의와 겸손은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할 수 없는 최고의 덕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알림판

인애덕행(仁愛德行) : 사랑과 덕행으로 본을 보인다.
성실겸손(誠實謙遜) : 겸손하고 성실하게 행한다.
자중절조(自重節操) : 행실을 신중히 하고 절조를 굳게 지킨다.
예의엄수(禮儀嚴守) : 예의범절을 엄격히 지킨다.
염직과감(廉直果敢) : 청렴겸직하고 용감하게 행한다. 
습사무언(習射無言) : 활을 낼 때는 침묵을 지킨다. 
정심정기(正心正己) : 몸과 마음을 항상 바르게 한다.
불원승자(不怨勝者) : 이긴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막만타궁(莫彎他弓) : 타인의 활을 당기지 않는다.

궁도인 9계훈은 이처럼 형식상 아홉 가지 내용을 담고 있지만, 상세히 뜯어보면 예의와 겸손 두 가지로 압축된다. 그리고 예의와 겸손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란 뜻으로 요약이 가능하다. 인간 세상의 모든 항목이 그렇듯이, 활터에서도 역시 부끄러운 줄을 알 수 있느냐의 여부가 최고 최대의 자격기준이 되는 셈이다. 이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타인을 속이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기 자신마저도 속이지 않을 정도의 내공을 쌓는다는 게 어찌 쉬운 일일 수 있으랴.

활터에 얼굴을 내민 지 겨우 한 달 남짓밖에 안 되는 그녀와 나, 우리에게 예의와 겸손이라는 기본 덕목에 관한 자세가 제대로 갖춰져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의 여지가 많았지만, 사두님께서는 결정을 내렸고, 사법님께서는 공지를 띄웠다. 때가 농사철로 접어드는 까닭에 서둘기로 한 것이었다.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여러 사람이 같은 시간에 모이는 게 거의 불가능하고, 그러다 보면 농사가 다 끝나는 겨울까지 집궁식 자체를 미뤄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나로서는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고사, 이 의식을 위해서 나는 흰 운동화를 한 켤레 샀고, 흰 운동복을 한 벌 빌렸다. 또한 돼지머리를 준비했고, 떡시루를 주문했으며, 북어포와 삼실과를 준비하기도 했다. 과거 한때 서울에서 이런저런 사업을 한답시고 일을 벌일 때도 해보지 않았던 고사 지내기를 나도 결국은 하게 되었구나 생각하니 살짝 면구스럽기도 했지만, 고사라고 다 같은 고사는 아니라는 데 이르러서는 사뭇 감개가 무량하기도 했다.


# 살을 내도 된다는 자격을 매주는 사두님

무슨 권력을 잡게 해 달라는 고사도 아니고, 돈을 잘 벌게 해주십사 하는 고사도 아닌, 부끄러움을 제대로 알게 해주십사 하는 고사이고 보니 이게 아무리 낮춰 잡는다 해도 특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부끄러움, 아, 이 부끄러움이라는 것만큼 묘하고 또 묘해서 묘하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이 안 된다고 여겨질 정도로 묘한 것이 인간사에 또 있을까.

그것은 사람이 스스로 마음 갈피를 열어서 보여주는 것이긴 하지만 누가 누구에게 권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요구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며, 자기 자신이 인위적으로 마음을 쥐어짜서 급조해낼 수도 없다. 지난 2007년이던가, 대통령 선거 직전에 벌어진 이명박씨와 박영선씨 간의 부끄러움에 관한 지상논쟁을 생각하면 지금도 그 남자와 같은 종류의 동물이라는 게 부끄러울 지경이긴 하지만, 그렇지만 어쩔 것인가. 적어도 그런 지경으로까지 철면피하게 망가지지는 말자고 스스로를 경계하며 채찍질하는 동물이 또한 인간인 것을.

어쨌든 사두님의 고천문 낭독을 시작으로 제의는 시작되었다. 바람이 매우 거센 날이었다. 과녁판 앞에 깔아놓은 돗자리가 자꾸 하늘로 날고 싶다고 뒤채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돌을 주어다가 눌러야만 했다. 그래도 돗자리는 미친 듯이 펄럭였고, 나중에는 사람들이 발로 밟고 있어야만 했다. 

제례의식이 있는 곳에는 참석한 사람이 많건 적건 말들이 많기 마련이었다. 과일은 홀수로 올려야 하는데 짝수로 준비를 했다는 둥, 준비가 짝수로 됐으면 하나를 빼면 되지 웬 말이 많으냐는 둥, 사과는 맨 위에 것의 뚜껑을 열어야 한다, 아니다 안 열어도 된다, 등등 입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예외가 없이 몇 마디씩 아낌없는 부조를 내놓는 와중에서 의식은 어떻게 끝난 줄도 모르게 끝났다.  


# 처음 궁시를 받아들고

아니다. 뭘 잘 모르는 우리는 의식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과녁 앞을 물러 나와서 치러야 하는 진짜(?) 의식이 남아 있었다. 건물의 중심이면서 단체의 중추로 이해되는 정간(正間) 앞에 절을 올리고, 궁도인이 갖춰야 할 예에 관한 사두님의 짤막한 훈시를 듣고, 사두님이 내주시는 궁시를 받고, 신출내기 궁도인으로서의 선서를 마치고 나면, 그러면 이제 바야흐로 사대에 서서 첫 살을 내게 되는 것이었다.

선서는 통상 오른손을 단정하게 쫙 펴서 들어 올리고 팔꿈치는 구부린 상태에서 한다. 그 정도는 나도 상식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엉뚱하게도 오른손을 쫙 펴서 왼쪽 가슴에 얹은 상태에서 선서, 하고 있었다. 태어난 이후 선서라는 것을 처음 해본 까닭이었다. 처음 해본 까닭에 일순간 혼란이 왔다. 그래서 옛날옛적에 그리도 자주 했던 국기에 대한 맹세 포즈 상태로 선서를 하려고 한 것이었다.

이것을 보신 사두님이 당신의 오른손을 들어 보이는 방식으로 주의를 주셨고, 내 옆에서 같이 선서 자세를 취하고 있던 내여자 그녀가 이 장면을 보고는 그만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그녀는 일단 웃기 시작했다 하면 십여 분 정도는 연속적으로 웃어야만 그 웃음의 기운을 다 쓰는 다소 특이한 체질의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선서를 하는 내내 웃어대고 있었고, 자신의 웃음을 감추고자 손으로 입을 가리는 등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우리의 맞은편에 서 계신 사두님의 예리한 시선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 선배님들 속에서 당당하게 한 수

“아니 김윤희씨는 뭐가 그렇게도 우스워요?”

선서 의식이 끝나고, 다른 절차도 모두 끝난 뒤에 사두님이 한 말씀 하셨다. 당연히 나올 수 있는 힐문 투의 이런 질문에는 웃은 죄에 관한 해명을 듣자기보다는 ‘  넌 이 의식이 우스워 보이느냐’ 내지는 ‘그렇게 경거망동해서 활을 잡을 수 있겠느냐’는 요지의 추궁이 들어 있는 것이어서,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그저 고개를 수그리고 사죄를 드리는 게 마땅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뭔가 변명을 하려는 듯이 입술을 오물거리는 했지만 말은 한 마디도 안 나와버리는, 온 몸이 홍당무가 돼서 쩔쩔매다가 자포자기식으로 다시 또 키득거리고 웃어버리는 무례의 극치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그녀가 그렇게 수습불능의 상태에 처했으면 나라도 나서서 어떻게든 봉합을 하고자 했어야 하건만, 그런데 엉뚱하고 한심하게도 나는,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하는 뭐 그런 어이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남자는 부끄러워하면 뭔가 소심하고 허약해 보이지만, 여자는 부끄러워하면 아름다워 보인다, 그 이유가 뭘까, 심지어는 그런 연구까지 그 와중에 하고 있었던 나, 지금 생각하면 엄청나게 부끄러워해야 마땅한 일이지만, 어쨌든 그 순간에는 뭐랄까, 행복의 도가니 같은 것 속에 나는 빠져 있었던 셈이다.

날짜가 며칠이나 지나버린 지금에 와서 그날의 일을 다시 생각해보면, 그 순간의 실수가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서 봉합되었던 것인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추론을 해볼 수 있을 뿐이다.


# 식이 끝난 뒤의 조촐한 잔치

그녀의 웃은 죄가 크기는 하지만, 어쩔 것인가.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는 속담도 있듯이, 사두님도 그 이상은 그녀를 추궁하거나 힐문하지 않고, 혹은 못 하고, 다함께 그냥 웃어대며, 어쩌면 뒤통수에 꿀밤이라도 한 대 먹이고 싶은 심사인 채로 술잔을 돌렸던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이 기억법이 확실하게 맞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 시간 이후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술잔이 오갔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고 보면, 아마 거의 정확하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었다.

만약에 그녀가 그때 정색한 표정으로 웃음이 나오는 걸 어떻게 하느냐고 따지는 식으로 대들었다면, 사두님도 아마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정색한 표정 대신 부끄러워서 그만 죽을 지경의 표정으로 웃었다기보다는 웃어버리고 있었으니, 그 오묘한 표정 앞에서 화를 내거나 얼굴을 찡그릴 사람이 이 세상 그 어디에 있으랴. 한 마디로 정리를 하자면, 그때 그 순간 그녀의 그 모습은 엄청나게 귀엽기도 했던 것이다.

아, 그 참 묘한 일이었다. 부끄러움이 극한에까지 이르면 아름다워 보인다. 왜지? 게다가 이때의 아름다움은 완숙이나 성숙과는 차원이 다른 귀여움과 직결된다. 왜지? 이것을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아마도 부끄러움을 알게 되면 젊어진다, 하는 표현도 가능하지 않을까?

어쨌든 우리의 집궁식은 그렇게 저렇게 엉뚱한 실수와 웃음의 반복 속에서 끝났다.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몸살이 났다. 부끄러움을 아직은 제대로 모른 탓이었을까. 아니면 부끄러움의 무게가 너무 커서 버거웠던 것일까.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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