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빛 진달래가 춤을 춘다, 너울너울∼
분홍빛 진달래가 춤을 춘다, 너울너울∼
  • 김초록 기자
  • 승인 2015.04.09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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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록의 자연에세이> 진달래꽃을 위하여



온 누리에 봄기운이 가득하다. 봄이 절정에 달한 이즈음, 꽃들도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동백, 개나리, 산수유, 목련은 진작 피었고 요즘에는 마을마다 산자락마다 새하얀 벚꽃이며 연분홍빛 진달래가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다. 꽃향기에 취해 내 마음도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다.  

어제는 벚꽃이 내 심장을 겨누더니 오늘은 진달래가 내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꽃을 보면 벌렁벌렁 가슴이 뛴다. 숨이 가쁠 정도로. 이런 말을 누구에겐가 건네면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다. 감상이 지나치다고, 마음이 너무 들떠있다고. 그러나 이런 대답은 내 깊은 속마음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감상이 지나치면 어떠랴. 저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는 누구나 어린아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그 ‘지나친’ 감상벽을, 비록 서툴고 미숙하지만, 글로 풀어내고 있다.  

내 사는 아파트 옆의 야트막한 산. 요 며칠 전부터 물감을 엎질러놓은 듯 붉은 진달래가 꽃동산을 이루고 있다. 군데군데 병아리 같은 노란 개나리도 보인다. 지난겨울 이 산은 면사포를 쓴 것처럼 아름다웠다. 눈이 발목까지 쌓여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면 잘 그린 한 폭의 겨울 풍경화였다. 그 겨울을 뒤로 하고 봄을 맞은 산은 또 다른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 설봉산 진달래 

개나리, 진달래와 함께 참나무, 오동나무, 밤나무, 떡갈나무, 소나무 밑으로는 얼레지, 할미꽃, 양지꽃, 애기똥풀, 씀바귀, 복수초, 붓꽃, 제비꽃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풀꽃들이 뽀얀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즈음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산의 요정들이다. 저 다정다감한 모습을 볼 날도 멀지 않았다. 대지가 연초록에서 진초록으로 바뀌면 꽃들도 하나 둘 자취를 감춘다. 내가 사는 곳에 이런 꽃밭이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목련이 자취를 감추자 기다렸다는 듯이 얼굴을 내민 진달래. 그 모습을 멀리서 보니 분홍빛 고운 옷을 차려입은 요염한 새색시가 사뿐사뿐 걸어가는 것 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봄꽃은 목련인데 이제 그 모습을 볼 수 없으니 아쉬울 뿐이다. 그러나 꽃은 지게 마련이다. 꽃이 항상 피어 있다면 이 또한 식상하지 않겠는가. 이제 막 피어난 진달래도 어느 날 내 앞에서 홀연히 사라질 것이다.  

진달래는 높지 않으면서 양지바른 야산에 주로 자란다. 4월 중순이면 어디에서나 그 화사하고 온화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데 분홍과 자홍을 섞어놓은 듯한 색깔이다. 분홍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진하고, 보라색이라 하기에는 너무 연하다. 그 은근한 색깔의 유혹에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 한다.  

해마다 4월이 오면 나는 진달래를 찾아 나서곤 한다. 산자락 여기저기 피어 있는 진달래의 그 화사하고 온화한 모습은 오랜 시간 내 마음을 울렁거리게 한다. 마치 첫사랑의 설렘 같은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진달래꽃을 참꽃이라 불렀다. 입술이 파란 잉크 빛이 되도록 꽃을 따먹으며 허기를 달랬던 기억. 혓바닥에 착 달라붙는 그 시큼한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어떤 날은 너무 많이 먹는 바람에 배앓이가 나기도 하였다. 참꽃을 한아름 꺾어서 병에 꽂아두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며칠 못 가 시들어버리기 일쑤였지만 그 눈부신 모습을 곁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어디 진달래꽃뿐이랴. 산과 들과 마을에서 만난 숱한 꽃들. 그 모습이 생생하니 살아 있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경이이자 환희였다.

 

세월이 흘러 내 나이 어느덧 오십 줄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쯤 고향마을 산허리에는 진달래 꽃불이 장관을 이루고 있겠지. 분홍빛 꽃바다에 한 폭 그림처럼 떠 있을 옛 동산이 아련하게 그려진다.  

4월이 깊어가면서 이 나라의 산천은 가장 눈부시게 옷을 갈아입는다. 아랫녘부터 피기 시작한 진달래꽃은 마치 달리기 시합을 하듯 북쪽으로 빠르게 올라오는데, 칙칙하던 산이 비로소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한다.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사람마다 즐겨 읊조리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너무도 유명한 시다. 이 ‘진달래꽃’으로 인해 봄은 더 친숙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머무르는 것이리라. 

흰꽃이 피는 것을 흰진달래, 작은 가지와 잎에 털이 난 것을 털진달래, 잎이 넓고 타원형인 것을 왕진달래, 잎이 윤기가 나고 사마귀 같은 돌기가 있는 것을 반들진달래, 열매가 가늘고 긴 것을 한라진달래, 키가 작고 꽃도 작으며 5개의 수술이 달린 것을 제주진달래라 하였다.  

진달래는 먹거리로도 일품이었다. 꽃잎과 술밥으로 정성들여 빚은 진달래꽃술은 일미(一味)다. 충남 면천의 진달래술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이름이 나 있다. 특유의 향도 그렇지만 만드는 방법이 독특하다. 이 술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전해 내려온다. 고려의 개국 공신 복지겸이 원인 모를 병이 들어 충남 당진군 면천에서 요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17살인 그의 딸이 꿈을 꾸었는데, 신선이 나타나 아버지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신선이 시킨 대로 진달래꽃으로 술을 빚어 아버지(복지겸)께 드렸더니 병이 깨끗이 나았다고 한다.  

진달래술 외에도 찹쌀가루 반죽에 꽃잎을 놓아 참기름에 지져내면 진달래전이 되었으며, 꽃잎에 녹말을 씌워 데쳤다가 꿀물에 타면 진달래 화채가 되었다. 진달래꽃 빛깔이 어린 이런 먹을거리는 별난 맛과 함께 봄 분위기를 제대로 전해주었다. 

꽃들은 저마다 숨은 사연이 있다. 이 나라 봄 산천을 덮고 있는 것은 온통 풀과 꽃이다. 한 포기 풀, 한 떨기 꽃에서 얻는 감동은 그 어느 것보다 우위에 선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자, 이제 완연한 봄이다. 우리 곁에 피어 있는 진달래꽃과 이야기를 나눠보자. 힘겨운 나날이지만 바람 한 줌, 햇살 한 움큼에 감사하며 다시 찾아온 인생의 봄날을 즐겨 볼 일이다. 저기 저만큼 진달래가 방싯방싯 웃고 있지 않은가.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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