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그녀가 내 옆을 떠나 있은 뒤에

 

그녀는 비염을 갖고 산다. 비염이란 명칭의 질환을 앓고 있다기보다는, 비염이란 이름의 보물을 품에 안고 있다고 하면 말이 좀 이상할까? 이상하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이상한 것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어쨌든 우리는 그녀의 비염을 상대로 무슨 전쟁을 선포하지도 않았고, 그것을 퇴치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해본 적도 없었다.
 

▲ 서울 가기 하루 전날의 그녀

그녀가 내 곁으로 온 직후부터 그녀의 훌쩍이는 소리는 아마 내 귀에 들리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소리를 의식하지 못했다. 그 소리를 의식했을 때는 그 소리가 이미 내 안으로 깊이 들어와서 나의 일부가 돼 있은 뒤였다. 들으면서도 못 듣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녀의 언니가 그녀에게 그 점을 지적하며 걱정했던 모양이었다.


“야, 너 그 훌쩍이는 소리가 너무 심하다. 옆에 사람이 짜증나겠어.”


언니로부터 그 말을 듣고 온 그녀가 내게 그 말을 전해주었다. 사뭇 걱정스런 목소리로, 이 소리가 정말로 짜증나는 소리인 거예요? 하고 묻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나는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어? 그런가? 그 소리가 짜증나는 소리였던가? 생각해 보았지만 답을 내기는 어려웠다. 생각해 보니 나도 역시 어느 때인가부터 훌쩍이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것을 아마 길이 들여졌다고 하는 것일 게다. 길들임이란 감옥에 가둬놓는 등의 폭력성을 띠지 않는 한 대개 가랑비에 옷 젖듯이 시나브로 진행되기 마련이다. 어쨌든 나는 그녀의 훌쩍이는 소리에 길이 들여졌고, 마침내는 나도 역시 훌쩍이는 소리를 내기에 이르렀다.


훌쩍임의 빈도수로 말하자면 그녀의 그것이 나보다 훨씬 높다. 내가 한 번 훌쩍일 때 그녀는 대여섯 번, 어떤 날은 열 번 이상 훌쩍이고 있었다. 특히나 천지 사방에 꽃이 피어 가루가 날리기 시작하면 그녀는 이삼 초 간격으로 훌쩍 소리를 내야만 한다. 자면서도 훌쩍 소리를 내는 그녀의 그 훌쩍이는 소리가 내게는 그녀의 존재증명으로 읽혔다. 그녀가 내 옆에 있다고 하는, 잠자리에 들기 전 내 옆에 있었던 그녀가 잠자리에 든 뒤에도 여전히 있다고 하는 증거로 작동되는 그녀의 훌쩍이는 소리에 문득 잠이 깬 나는 가끔 중얼거리곤 했다, 


“아이고 우리 훌쩍이, 훌쩍아, 슬퍼서 훌쩍이는 거 아니지?”

 

▲ 고창의 벗꽃



이런 식의 오금 저리는 소리가 내 입에서 참 잘도 나와 주고 있었다. 그러면 그녀는 입에 손가락 하나를 넣고 칫, 칫 하면서 웃음을 참는다. 이런 현상을 국어사전 식으로 풀이하자면 필경 행복이라 하겠지만, 행복이거나 말거나 우리는 그런 것 의식함이 없이 그냥 그러고 있었다. 도를 도라고 말하는 순간 도는 사라진다는 노자 도덕경의 첫 문장을 우리는 그렇게 생활 속에서 체득하고 있는 셈이었다. 


나를 그렇게 길들여놓은 그녀가, 나의 훌쩍이가 서울을 갔다. 눈 뜨면 보이던 그녀가 이제 안 보인다. 깨어 있을 때는 언제 어디서나 들리던 훌쩍 소리가 안 들린다.  첫날은 그런 대로 어떻게 넘어갔다. 이틀째 되는 날부터 허둥거림은 시작되었다. 방향을 잃었다고나 할까. 앉았다가 섰다가, 걸었다가 멈췄다가, 하늘을 보다가 땅을 보다가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날이 사흘이나 계속된 뒤에서야 나는 겨우 책갈피라도 좀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책을 펴놓고 읽는 것은 아니었다. 글자가 모두 사라져버린 책을 펴놓고 그저 들여다보는 것일 뿐이었다. 책 속에는 글자 대신 벚꽃이 활짝 피었다. 팔령치 고개 저쪽으로 만개한 벚꽃을 보러 갔던 날의 그녀가 책 속에서 아유, 아유 소리를 질러대며 펄쩍펄쩍 뛴다. 그리고 잇달아 사진을 찍는다. 서울의 친구에게 보여준다는 것이 그녀의 사진 찍는 목적이다. 그렇게 사진을 찍고 있는 그녀를 나는 또 내 카메라에 담는다. 그렇게, 사진 몇 장을 남기고 서울로 간 그녀는, 배꽃이 피고 복사꽃이 피면 돌아올까 했는데 그것들이 다 지도록 돌아올 줄을 모른다.

 

▲ 명자



아니다. 사실은 내가 이미 알고 있었다. 복사꽃이 다 지고 딸기 꽃도 피었다가 져서 열매를 한참 맺고 있을 즈음에야 그녀는 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 앎에 좀처럼 익숙해지지 못하고 툭하면 “오늘도 안 오네?” “어쩌자는 거야 진짜” 하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알면서도 안다는 사실 자체를 믿고 싶지 않아 하는 이런 내 마음이 나는 얄궂다. 이런 마음 상태를 프랑스 사람들은 멜랑콜리라고 한다던가? 멜랑콜리, 이렇게 말하면 뭔가 좀 그럴 듯해 보이나? 어쨌든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며 이불 속을 빠져나왔다. 하늘이 아침부터 인상을 북북 찡그린다. 빨래나 좀 하기로 했다. 흐린 날에 빨래를 하면 안 좋다는 생각까지는 못했다. 하필 그때 그 순간 그녀의 당부가 생각나서 빨래 통을 들고 나섰을 뿐이었다.


“아이 참 어쩌지, 빨래는 그대가 해야겠어요, 알았죠?”


빨래를 해놓고 가려 했지만, 날씨가 안 좋아서 못 하고 그냥 가야겠다고, 그러면서 헤죽헤죽 웃는 그녀를 나는 알았다거나 모르겠다거나, 그 어떤 말도 없이 그냥 물끄러미 보고만 있었다. 무슨 불만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대, 그대, 그놈의 그대 소리가 나를 잠시 말 못 하는 인형으로 만들어놓은 것일 뿐이었다.


그랬다. 나는 그녀의 입에서 그대 소리만 나오면 거의 인사불성이 돼버리곤 했다.  한두 번 들은 것도 아니고, 하루 이틀 들은 것도 아니련만, 나를 향한 그녀의 호칭 그대는 내 안의 저 깊고도 은밀한 무엇인가를 깨워서 흔들어놓곤 한다. 그 바람에 나는 그대, 소리가 들어가 있는 그녀의 말은 거의 안 잊어먹는다. 그대 소리가 없는 그녀의 말은 향기 없는 바람처럼 더러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그대 소리가 있는 그녀의 말은 말 자체가 흡사 내 영혼이라도 움켜잡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좀처럼 헤어나지를 못한다.

 

▲ 빨래를 방에 널어놓고



어쨌든 빨래를 했다. 세탁기가 알아서 해주는 빨래를 통에 담아 들고 빨래 줄에 널고자 하는데 하늘이 마구 흐려진다. 아무래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 쓸데없는 콧노래를 잠시 흥얼거리며 하늘을 보다가 결심했다. 안 되겠다. 빨래를 방에 널어야겠다. 그리하여 빨래걸이를 방으로 들여놓고 빨래를 널고 있는 나,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하나씩 둘씩 널고만 있었다. 그런데 차츰 하나씩, 둘씩,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에서 나온 것들이 내 몸에서 나온 것들보다 두 배 아니 세 배는 족히 되는 것 같다. 나는 그냥 달랑 옷하고 양말뿐이지만, 그녀의 것은 그렇게만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수도 없이 많다. 양말의 가지 수만 해도 그녀의 것은 엄청나다 싶으리만치 많다. 목이 긴 것도 있고 짧은 것도 있고, 아주 긴 것도 있고 아주 짧은 것도 있고, 신었어도 안신은 것 같은 색깔의 스타킹이 있는가 하면 신었다는 것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검정 스타킹이 있고, 심지어 덧버선 같은 것도 있는데 소재가 스타킹 같은 것으로 돼 있어서 손으로 쥐면 한줌도 채 안 되고 뭐랄까, 둘둘 말면 손톱 하나 크기도 안 되는 것 같다.


“이것을 어떻게 발에 끼워 넣고 다녔지?”


신기하다. 그녀가 신거나 입거나 몸에 붙이고 다닐 때는 몰랐던 사실이, 명색 빨래를 한답시고 펼쳐놓고 보니 “야 참 복잡하다” 소리가 절로 입에서 나온다. 팬티는 왜 또 그리 작기만 한지, 브래지어는 왜 또 그렇게도 이상하게 무슨 철사 같은 딱딱한 심을 품고 있는 것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고, 모르면서도 알겠다는 느낌이어서, 눈을 잇달아 깜빡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우두커니 서 있기를 얼마나 했던가.



빨래 앞에서 그렇게 묵상과 명상으로 한나절을 좋게 보냈다. 그 뒤로 나는 다시 심심해졌다. 정말이지 이것은 완전 새로운 현상이었다. 도대체가 심심할 틈이 없이 늘 뭔가 할 일이 있었던, 보고 또 봐도 또 봐야만 할 일이 그렇게도 많았던 내가 그만 심심해져 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명백하게도 훌쩍이의 부재가 그 원인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해서 투정을 부려야 하나?
아니다. 참아야 한다. 견뎌야 한다. 내가 만일 훌쩍이에게 전화를 해서 투정을 부리면 그녀는 난처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의 친구가 나에 대한 미안함으로 괴로워 할 수도 있다. 아이를 낳은 뒤로 우울한 시간이 엄청나게 많아졌다고 하는 그녀, 어떤 날은 아이를 품에 안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마저 느낀다는 그녀, 그런 그녀의 남편이 중국으로 장기간 출장을 갔다. 남편이 없는 시간에 무엇을 어떻게 해버릴 지 알 수가 없어서, 두려워서 그녀는 자신의 친구, 그러니까 나의 그녀 훌쩍이에게 도움을 청했다. 보름 동안만 함께 있어 달라고,

 

▲ 목사꽃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내가 나 자신의 심심함을 이유로 투정이나 부린다면, 아, 이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리하여 꾹꾹 눌러 참기는 했지만,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속상함과 불만과 심지어는 억울한 느낌조차도 있어서 나는 여전히 안절부절 못해 한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가 엄마 곁에 가 있을 때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보름 정도가 아니라 그 네 배나 되는 두 달 동안이나 그녀의 얼굴 한 번 볼 수가 없었지만 나는 거의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런데 결혼한 친구 집으로 가고 나니 내 마음에서 뭔가가 자꾸 일어난다. 왜 그래야만 하지? 왜 가야 하는 거야? 이유를 알면서도 이유를 모르겠다는 이런 의문부호가 나는 또 알 수 없어서 고달프다.


고달픈 마음에 기어이 전화를 걸고 말았다. 아이의 웃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 소리에 문득 심술이 났던가. “거기 있으니 재밌냐?” 소리가 내 입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그러자 그녀 왈 “나 보고 싶어서 전화했구나?” 한다. 그걸 말이라고 하냐, 소리가 내 입에서 나오려고 하는 순간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잠시 뒤에, 보고 싶기는 뭘, 그렇게 마음에 없는 소리를 내놓고 말았다. 그녀는 다 안다는 듯이 키득키득 웃는다. 웃다가는 불쑥 기상천외한 얘기를 한다.


“나물 좀 보내줘요, 응?”
“나물?”
“응. 마당에 있는 것들 좀 뜯어서 보내줘.”

 

▲ 배꽃



이 사람이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사람이 어찌 그런 소리를 그렇게 잘도 할 수 있을까. 나는 혼자 팽개쳐두고, 저는 친구와 더불어 룰룰라라 노래를 하면서, 나더러 나물을 뜯어서 보내 달라고? 흥. 웃기는 여자야 진짜. 어림도 없지.


뭐랄까. 나물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뭔가 주도권을 잡았다는 느낌이었다. 정말이지 그랬다. 그녀는 냉이국 하나도 다른 데서 나온 것은 맛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었다. 우리 집 마당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 이상하게 맛도 없고 혹시 오염됐을까봐 손이 안 간다는 그녀.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옳거니 하고 단호하게 거절을 해 버렸다. 싫어, 안 해. 내가 왜 그런 수고를 하냐.


“알았어요, 미안해요.”


그녀는 대번에 풀이 죽어버렸다. 딴에는 애교를 떤다고, 애써 콧소리까지 만들어서 재잘거리던 그녀의 목소리에서 풀기가 가셔버리니 뭐랄까, 내 가슴이 그만 철렁 내려앉고 말았다. 뭔가 엄청난 죄라도 지어버린 느낌에 다시 전화를 해서 달래주자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꾹 눌러 참기로 했다. 

 



아침 일찍 눈을 뜨자마자부터 나물 채취를 시작했다. 나물이라면 우리 집 마당에 얼마든지 있었다. 냉이를 필두로 벌개미취가 있는가 하면 비비추가 있고 망초나물에 머위, 미나리, 심지어는 질경이에 두릅에 죽순 그리고 각종 허브까지도 있는 곳이 우리 집 마당이었다. 물론 우연히 그냥 생겨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때가 되면 색깔 좋은 꽃이 피라고 심어 놓은 것들이 봄날의 어린 시절에는 향기도 좋고 부드러운 나물이 되어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낫이나 칼로 간편하게 싹뚝싹뚝 베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잡동사니농법이라고 이름을 붙여놓은 것만큼이나 그것들은 여기저기 조금씩 흩어져 있기 때문에, 손으로 하나씩 일일이 뜯어야만 한다. 그렇게 하나씩 뜯고 다듬어서 데치기까지 한나절, 데친 것을 찬물에 담갔다가 꺼내서 물을 꾹꾹 짜낸 다음 비닐봉지에 각각 담아 스티로폼 상자에 포장하기까지 또 몇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시간을 보내고 나서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나물을? 정말? 싫다더니?”
“나쁜 놈 소리 안 들으려고 한 거야.”
“아유 참, 아유 참. 진짜진짜 아유 참.”


그녀의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내 가슴이 쿵쿵 소리를 내며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 뒤로도 그녀는 계속 뭐라고 하는데 하나같이 닭살 뜯어먹는 소리 아니 닭살 돋는 소리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함께 있을 때는 듣기 어려운 소리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가끔 이렇게 떨어져 있어 보는 것도 괜찮구나.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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