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농성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을 찾아서> 동양시멘트 하청 노동자들

 

한국사회에서 노동 문제는 오래된,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현안이다. 열악한 근로환경의 현장에서 일하다 부당하게 해고당한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다. 그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그리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투쟁에 나선다. 그 형태도 다양하다. 사태를 알리기 위해 공장 굴뚝 위를 오르는 등 목숨을 건 농성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여전히 남의 일이라는 듯 무심하기만 하다. <위클리서울>은 길게는 수년에 걸쳐 극한의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자들의 농성장들을 찾고 있다. 이번에는 동양시멘트 하청 노동자들의 고민을 들어봤다. 

 


국내 시멘트 생산량 2위인 동양 시멘트의 하청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한 것은 지난해 5월. 노조는 원청인 동양시멘트가 불법파견을 했다고 주장했다. 노동부는 이들의 주장을 인정해 동양시멘트에 직접고용을 권고했다. 하지만 원청인 동양시멘트는 태백지청의 통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진정을 제기한 노동자들이 소속된 사내 하청업체와 계약을 해지해버렸다. 해당 하청업체 직원들은 지난 설 연휴 하루 전 해고를 통보 받았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지난 설 연휴부터 지금까지 “동양시멘트가 고용노동부 판정 결과를 수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두 사람이 함께 일을 한다. 같은 현장에서 같은 일을 하지만 임금·복지 등에서 차별이 존재한다. ‘그런 불합리한 일이 벌어질 수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보다는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노동현장 곳곳에서 벌어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원청 업체는 이들을 협력업체 직원이라고 부른다. 원청 직원과 하청 직원 사이의 차별이 생기는 이유는 ‘사용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하청 노동자들이 고용된 협력업체란 것이 실제로는 단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동양시멘트의 하청 노동자들은 “평소 원청 노동자들보다 노동 강도가 더 센 일을 해왔다. 그런데도 임금은 잔업 수당을 제외하면 원청 노동자가 받는 임금과 비교해 40% 수준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근속연수가 13년 차에 해당하는 한 하청 노동자의 연봉은 채 3000만 원을 넘지 않는다.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장시간에 걸친 잔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이들은 석회석 광산에서 채석을 운송하는 업무 등을 맡아 왔다. 10톤 트럭을 몰고 노천광산의 낭떠러지 길을 지나는 위험한 일이다. 하청 노동자들은 하루에 16시간씩 이런 위험을 무릅쓰며 일하기도 했다. 장시간 노동으로 안전상 위험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원청 직원들보다 더 열심히 일을 했지만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동양시멘트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는 이 불합리한 노동 구조에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이 처음 노동조합을 결성한 것은 지난해 5월. 동양시멘트 협력업체 중 하나인 (주)동일의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했다. 그 뒤를 이어 지난해 6월 (유)두성기업 노동자들도 노조를 결성했다. 이들은 “하청 노동자들은 동양시멘트 원청 직원들과 같은 현장에서 같은 업무를 하면서도 임금은 2배 이상이나 차이가 난다. 조합원 중 15%는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해 왔다. 복지나 인격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천대받는다. 이런 하청노동자들이 300여명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또한 “동일과 두성기업 등 협력업체들은 전문성과 기술성이 미미하며, 오로지 동양시멘트로부터 지급되는 도급비로만 운영되어 독립적인 사업주체로 볼 수 없다. 또한 50만원 이상의 고정자산 비품 구입 및 시설 투자는 모두 원청의 결재를 받도록 되어 있으며, 인사에 있어서도 임금인상·승진·채용과 관련해서 하청업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며 “동양시멘트 원청과 사내하청 업체 간 관계는 도급이 아니라 불법적인 근로자파견”이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해 ▲동양시멘트 원청 직원들이 직접 일체의 작업 지시 ▲동양시멘트 원청 직원들의 관리감독 하에 원청 직원들과 동일한 업무수행 ▲실질적으로 동양시멘트가 임금 지급 ▲하청업체 사무실 역시 동양시멘트에서 마련, 하청업체의 어떠한 기술·장비 등도 투입된 바 없다”며 파견근로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시멘트 제조를 위해 토석, 암석, 광물을 채굴하는 작업, 이를 절단·가공하는 작업, 이를 쓰러뜨리거나 가려내는 작업, 이를 차에 싣거나 내리는 작업, 이를 갱내에서 실어 나르는 작업, 그 밖에 광물성 분진이 날리는 장소에서 토석, 암석 또는 광물을 취급하는 작업과 산업안전보건법상 건강관리수첩의 교부대상이 되는 업무는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 절대적인 파견금지 업종으로 정하고 있다”며 동양시멘트의 불법파견이라고 주장했다. 
 


노조를 결성한 직후, 이들은 고용노동부에 ‘동양시멘트 위장도급 및 불법파견 진정’을 접수했다. 노동부는 금방 답변을 주지 않았다. 민주노총 강원지부 김동환 사무차장은 “고용노동부의 조사 기간은 25일 이내로 2번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최대 75일인데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6월 26일에 접수한 진정에 대한 발표를 하기까지 거의 8개월을 끌었다”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의 문제 해결 의지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노조는 지난해 10월, 고용노동부 강원지청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지난 2월에는 태백지청을 방문해 진정사건 판정을 요구하며 지청장실을 점거하는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월 13일에야 답변을 내놓았다. 고용노동부 태백지청은 동양시멘트 사내하청 노동자 240여명이 입사 때부터 동양시멘트 정규직이라고 판단했다. 태백지청은 “동양시멘트의 노무대행기관과 동일시 할 수 있을 만큼 그 존재가 형식적, 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동양시멘트와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에 있다”고 판정했다. 태백지청은 동양시멘트에 “직접 고용”을 통고했다.

동일과 두성기업은 각각 17년, 22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판정에 따르면 동양시멘트가 20년 가까이 불법적인 고용형태를 유지해왔다는 것이었다. 노조는 “동양시멘트가 우리들을 20년 넘게 노예처럼 부린 것이 불법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졌다”며 “노예처럼 당하기만 했던 지난 20년에 대해 분노가 치밀었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고용노동부의 판정을 환영했다. 이 판정에 따라 노동자들은 원청인 동양시멘트에 정규직 채용과 함께 그간 차별받았던 임금을 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동양시멘트는 고용노동부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현행법상 고용노동부 판정은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이를 강제하기 위해서는 법원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해야만 한다. 노조는 지난달 9일 법원에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했다. 판결이 나기까지 1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노조는 또한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5월 중에 나올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판정이 있었던 지난 2월 13일, 동양시멘트는 사내하청업체인 동일에 도급계약 해지를 통고했다. 동일은 이에 따라 101명의 노동자들을 집단 해고했다. 노동자들은 설 연휴 하루 전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 김동환 사무차장은 “고용노동부의 판정이 나고 30분 만에 도급계약이 해지됐다. 확실한 근거는 없지만 판정의 결과를 이미 동양이 알고 있었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현재 동일은 회사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동양시멘트는 도급 계약을 해지한 사내하청업체 대신에 새로운 위장도급 업체를 설립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해고노동자들은 지난달 4일부터 동양시멘트 정문 앞에서 ‘무기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농성에 참여하는 인원은 60여명이다. 이들은 순번을 정해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동양시멘트와 해고 노동자들의 관계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동양시멘트는 지난달 30일 해고 노동자들의 시위와 점거가 자신들의 사업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법원에 ‘업무 방해금지 가처분신청서’를 제출했다.

최창동 동양시멘트 사내하청노조 위원장은 “30여명의 조합원들이 업무방해, 폭행 등으로 고소·고발 당한 상태”라며 “집회 신고도 하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항의하고 있다. 폭행을 행사한 적도 없다. 오히려 동양시멘트가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 동양은 동일이라는 실체 없는 기업을 내세워 노동자를 착취했다. 고용노동부 조사결과 불법파견이 드러났음에도 판정을 수용하지 않고, 도급계약을 해지해 노동자들을 해고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현재 농성중인 조합원들은 힘들다. 기업과 노동자의 싸움은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흐르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게다가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가장으로서의 부담감이 크다. 현재 이들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지급하는 실업급여로 생활을 하고 있다. 실업급여는 한 달에 100여만원 남짓으로, 생계를 이어가기가 힘들 정도다. 투쟁이 장기화 되면 될수록 더 버티기 힘들어질 터.

최 위원장은 “생계가 가장 큰 문제다. 투쟁이 장기화되며 건강이 나빠진 조합원들도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다. 가족들의 생존권을 지켜내기 위해 끝까지 투쟁해야한다.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판결을 받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안다. 1년이 걸리든 2년이 걸리든 혹은 대법원까지 3년이 넘게 걸리더라도 고용노동부도 인정한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김동환 사무차장은 “동양시멘트는 향토기업으로 지역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끼쳐왔다. 그래선지 정치권에서도 동양시멘트 문제 해결을 위해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60여일 가까이 노숙농성을 하고 있지만 시장, 시의원 등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다. 우리가 찾아가야 겨우 만나준다”며 “이제는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인들이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