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확정, 24년 그 길었던 고통의 세월은 어떻게?
무죄 확정, 24년 그 길었던 고통의 세월은 어떻게?
  • 오진석 기자
  • 승인 2015.05.14 11: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서대필사건’ 강기훈 씨 무죄확정 판결 그 뒤

 

24년 만이다. 드디어 무죄가 확정됐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린 ‘유서대필 사건’ 강기훈(51) 씨가 14일 열린 대법원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4일 강씨의 자살방조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강씨의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24년 만에 밝혀진 진실. 정작 강씨는 건강이 악화돼 재판에 나오지도 못했다.

 

▲ 24년만에 무죄확정 판결을 받은 강기훈 씨, 하지만 그 세월은 과연 어떻게? <이전의 강씨 모습이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발단은 1991년으로 거슬러간다. 그해 봄, 노태우 정권의 실정과 공권력의 폭력에 항의하는 대학생·노동자들의 시위와 분신이 잇따랐다. 김기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도 그해 5월 서강대 옥상에서 분신자살했다.

그런데 검찰은 전민련 총무부장이던 강씨를 자살 배후로 지목하고 그가 유서를 대필했다는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유서와 강씨의 필적이 같다는 감정결과를 내놨다. 그해 7월 강씨는 자살 방조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형법상 자살 관여죄와 관련된 판결 가운데 실제로 죄로 인정된 유일한 판례였으며, 강 씨는 법원으로부터 목격자 등 직접적인 증거도 없이 국과수의 필적 감정결과와 정황에 따라 자살방조 및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징역 3년에 자격정지 1년 6월. 그는 1994년 8월 17일 만기 출소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16년 만인 2007년 11월 13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제58차 전원위원회 회의에서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국가의 사과와 재심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2012년 10월 재심이 개시되었고, 서울고법 형사10부(재판장 권기훈)는 지난해 2월 “1991년 국과수 감정 결과는 신빙성이 없고, 검사가 제출한 나머지 증거만으로는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필해 김씨 자살을 방조했다는 공소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이 없이 진실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할 정도로 입증됐다고 보기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강씨는 그동안 말 그대로 참혹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동안 줄곧 ‘저 빨갱이 놈이 친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식의 눈초리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두려웠다.

길에서 만난, 일면식도 없는 어떤 사람은 “유서를 왜 써준 거예요?”라고 묻기도 했다.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고, 사람들이 많이 있는 장소에 나가기도 꺼려졌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유서대필 사건의 대법원 판결문으로 자살방조 사건 판례를 공부한다”는 말을 듣었을 때는 참혹했다.

 

 

마음의 병뿐만 아니었다. 강씨는 암 투병 중이다. 2012년 간암 판정을 받고 병마와 또 다른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강씨의 어머니 역시 투병생활 끝에 세상을 떠났다.

“1991년 유죄를 선고받은 당시 부모님 충격이 굉장했다. 내 아들이 과연 그랬을까…. 사회는 다 그렇다고 하는데 전혀 그걸 수긍할 수 없었다. 더구나 말이 안 되는 증거로 재판결과가 나왔으니 충격이 컸다. 어머니는 말년에 암을 얻으셔서 돌아가셨다. 정말 힘들어하셨다.”

가정을 꾸리고 번역, 학원관리직 등 다양한 일을 하며 일상으로 돌아오려 했다. 그럼에도 세상은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악몽 같은 세월이었다. 강씨는 얘기한다.

“정치권력이 진실을 조작하면서까지 민주화운동을 억압하려 한 어두운 역사가 다시 한 번 밝혀졌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 뉴텍미디어 그룹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다 07108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 인터넷 : 서울, 아 52650 (등록일·발행일 : 2019-10-14)
  •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영필
  • 편집국장 : 선초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목로 72(신정동)
  •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전무이사 : 황석용
  • 고문변호사 : 윤서용(법무법인 이안 대표변호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 위클리서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weeklyseoul.net
저작권안심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