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에서 정한이가 내 손을 잡고 자꾸 묻는다 “아저씨, 왜 자꾸 울어요?”
팽목항에서 정한이가 내 손을 잡고 자꾸 묻는다 “아저씨, 왜 자꾸 울어요?”
  • 최근원 기자
  • 승인 2015.05.15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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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못난 꿈이 한데 모여’ 농부시인 서정홍-2회

<1회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 서정홍 시인

 

58년 개띠 해
오월 오일에 태어났다, 나는
양력으로는 어린이날
음력으로는 단옷날

마을 어르신들
너는 좋은 날 태어났으니
잘 살 거라고 출세할 거라고 했다.

말이 씨가 되어
나는 지금 ‘출세’하여
잘 살고 있다.

이 세상 황금을 다 준다 해도
맞바꿀 수 없는
노동자가 되어
땀 흘리며 살고 있다.

갑근세 주민세
한 푼 깎거나
날짜 하루 어긴 일 없고
공짜 술 얻어먹거나
돈 떼어먹은 일 한 번 없고

어느 누구한테서도
노동의 대가 훔친 일 없고
바가지 씌워 배부르게 살지 않았으니
나는 지금 ‘출세’하여 잘 살고 있다.                
- <58년 개띠> 中 58년 개띠

 

그가 처음 쓴 시 ‘58년 개띠’이다. 어린 시절 가난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첫 시를 썼다.

“초등학교 가정조사서에 ‘아버지 직업’을 적는 곳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농부나 노동자인 자녀들은 늘 기가 죽었습니다. 무얼 적어야 하나 고민을 했던 가슴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가난한 노동자라 하더라도 기죽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누군가의 노동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고…. 그런 마음으로 처음 쓴 시입니다.”

시의 제목처럼 그는 58년 개띠이다. 급격한 경제성장과 민주화운동 등을 겪은 치열한 삶을 대표하는 말 ‘58년 개띠’.

“58년 개띠, 참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말입니다. 6.25전쟁이 끝나고 먹고살기 위해 몸부림치던 그때 태어난 세대지요. 그러니 얼마나 사연이 많겠습니까? 저의 첫 시집 제목이 ‘58년 개띠’여서 시집이 나오자마자, 그리고 지금까지도 58년 개띠들이 많이 사서 읽는다고 합니다. 가끔 70년 개띠도 사서 읽는다고 하더군요. 20년 전에 나온 시집이 아직도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수만 권이 팔렸으니까요. ‘그때, 그 가난과 쓸쓸함을 스스로 위로하고 달래기 위해서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58년 개띠들이 올해 58세가 됐다. 그는 58년 개띠로서 경제성장에만 목매여 사회와 자연을 오염시킨데 대해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동안 ‘경제성장’이라는 괴물에 홀려 생명의 텃밭이고 아이들의 미래인 농촌을 버린 죄, 누가 어디서 어떻게 생산했는지도 모르는 독한 농약과 화학 첨가물로 범벅이 된 먹을거리로 아이들을 병들게 한 죄, 생각도 없이 마구 버린 공장 폐수와 생활 폐수 따위로 개울과 강을 오염시켜 마시는 물조차 돈을 주고 사 먹게 만든 죄, 속임수와 비리로 얼룩진 정치와 경제와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무시무시한 교육제도를 만든 죄, 가진 자들이 제멋대로 나라를 짓밟고 있는데도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나 몰라라’ 한 죄, 아이들 앞에 천 번 만 번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도 시원찮을 큰 죄를 저지르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살아왔으니……. 입이 열 개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여태 ‘경제 논리’에 얼이 빠져 잘못 살아왔음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진심으로 뉘우칩니다.”

그는 최근 출간한 시집 ‘못난 꿈이 한데 모여’에 그동안의 일들을 반성하면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이 시집은 남은 삶을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농부 나이로 겨우 열 살이라 아직 철없는 나이지만, 살아가면서 여태 보고 듣고 겪고 배우고 깨달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 편 한 편 말하듯이 썼습니다. 청소년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쓰려고 애썼습니다. 시는 세대와 시대를 뛰어넘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나이와 직업을 가리지 않고 시를 읽고 시를 쓰며,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삶의 새순’을 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 조금 더
쓸쓸해야 하느니
쓸쓸해야 사람이 그립고
사람이 그리워야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느니
- ‘못난 꿈이 한데 모여’ 中 ‘그리하여’

 

이번 시집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며 소개한 시이다. 서있는 길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쓴 시이다.

“카프카는 “한 권의 책은 우리들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부디 서툴고 못난 이 시집이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는 되지 못하더라도 쓸쓸하고 고단한 이웃들의 가슴을 잠시나마 따뜻하게 데워 드릴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조금은 힘든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위해 한마디를 부탁했다. 힘들 때면 떠올리는 말이 있다고 했다. 故이오덕 작가의 말씀들이었다.

“사람은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 가난해야 물건을 귀하게 쓰고, 가난해야 사람다운 정을 가지게 되고, 그 정을 주고받게 된다. 먹고 입고 쓰는 모든 것이 넉넉해서 흥청망청 쓰기만 하면 자가밖에 모르고, 게을러지고, 창조력이고 슬기고 생겨날 수 없다. 무엇이든지 풍족해서 편리하게 살면 사람의 몸과 마음이 병들게 되고, 무엇보다도 자연이 다 죽어버린다. 가난은 어렸을 때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은 모름지기 자연 속에서 자연을 따라 자연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다. 옛날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연보다 더 위대한 스승은 없었다. 사람이 자연을 배우고 자연을 따라 살면 모든 것을 얻고 모든 것이 제대로 된다. 사람은 자연으로 돌아가야 비로소 아름답고 참된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자연을 배반하고 거역하면 사람은 병들고 스스로 망한다. 자연이 없는 교육은 죽음의 교육이고, 자연을 떠난 삶은 그 자체가 죽음이다.”

그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의견도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 역시 시를 통해서다.

“같은 나라에, 같은 땅에, 숨 쉬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어찌 아픔과 슬픔에 눈을 감을 수 있겠습니까?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가슴 아픈 소식을 들어도 밥맛이 없고 잠을 깊이 들지 못하는 게 사람이잖아요. 세월호 참사 현장인 진도 팽목항에 산골 마을 아이들과 함께 다녀와 쓴 시도 있지요.”

벌써 1년이 훌쩍 지난 세월호 참사.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 그 시를 소개해본다.

 

산골 마을 젊은 농부들과 함께
틈을 내어 갔습니다
일곱 살 정한이도 함께 갔습니다
진도 팽목항에

―시인 아저씨, 바다를 보고 왜 울어요?
엄마도 울고 이모도 울고 왜 다 울어요?
―정한아, 울긴 누가 울어
―지금도 울고 있잖아요?
―우는 게 아니라니깐
―지금도 울고 있잖아요?
―어허, 고 녀석이……

우는 것조차 미안하고 부끄러운
진도 팽목항에서
정한이가 내 손을 잡고 자꾸 묻는다
새까만 눈동자로 날 쳐다보면서

―지금도 울고 있잖아요?
- <못난 꿈이 한데 모여> 中 산골 아이 정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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