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우리말 달인’ 엄민용의 ‘우리말 나들이’

 

▲ 엄민용 경향신문 엔터비즈팀 부장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지만, 한마디로 천 근의 화를 불러올 수 있는 것이 ‘말’입니다. 말은 잘 다듬으면 인격이 빛나지만, 생각 없이 나오는 대로 뱉다가는 자신을 해치기 십상입니다.

그만큼 말 씀씀이는 중요합니다. 대인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한 직장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점에서 ‘식사’는 한 번 짚고 넘어갈 말입니다. ‘식사(食事)’를 한자로만 풀이하면 “먹는 일”입니다. 결국 “식사 하셨어요”라고 하면 “먹는 일 하셨어요”가 되겠지요. “끼니로 음식을 먹음”이라는 국어사전의 뜻풀이를 보더라도, ‘식사’에는 높임의 뜻이 없습니다.

더욱이 ‘식사’는 일본식 한자말입니다. 일본 군대에서 쓰던 말을 광복 후 일본군 출신들이 우리 사회에 퍼뜨린 것이죠. ‘食事’의 일본 발음은 [쇼쿠지]입니다.

우리는 예부터 어른들께는 “진지 드셨어요” 따위 말을 써 왔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말 ‘진지’가 지금은 ‘식사’한테 자리를 내줄 형편입니다.

물론 ‘진지’는 좀 고리타분한 느낌이 듭니다. 한두 살 많은 선배에게 쓰기에도 영 어색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본 군대용어를 쓰는 것이 좋을 리 없습니다. 따라서 ‘진지’를 쓰기 어색한 상황에서는 “부장님, 점심(저녁) 드셨어요?” 정도로 쓰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윗사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먼저 퇴근하면서 “부장님, 수고하세요”라고 하는 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표현입니다. ‘수고’는 “일을 하느라고 힘을 들이고 애를 씀. 또는 그런 어려움”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수고하세요’는 “남아서 더 고생을 하세요”라는 의미로, 윗사람으로서는 아주 불쾌할 수도 있습니다.

원래 ‘수고’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수고가 많구먼” “수고 좀 해 주게” 따위로 쓰던 말입니다. 하지만 택시를 탔다가 내릴 때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은 ‘수고’라는 말에 “고생한 것에 감사한다”거나 “남은 일을 무탈하게 잘하시기를 빕니다” 등의 뜻이 더해졌습니다.

이 때문에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수고하셨습니다’나 ‘수고하세요’를 써도 무방하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이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직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수고라는 말을 쓰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대세입니다.

그렇다면 상급자보다 먼저 퇴근할 때 하는 인사말로는 무엇이 좋을까요? 제 생각에는 ‘먼저 들어가겠습니다’나 ‘내일 뵙겠습니다’ 정도면 충분할 듯합니다.

또 고마움을 나타내는 “수고하셨습니다” 역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참 잘하셨네요’ 등으로 얼마든지 고쳐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향신문 엔터비즈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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