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리포트> 신촌에서 만난 대학생들의 청춘과 예술

 

고등학생 때는 졸업만 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처럼 꿈에 부풀어 있다가 학년이 찰수록, 한 살씩 먹는 나이가 더해갈수록 어린 시절의 바람들은 퇴색되어가고, 언젠가 머리가 허옇게 샐 부모님과, 주름과 기미 걱정을 시작한 3·40대가 될 내 모습 생각하며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청년 실업률이 높다는 수두룩한 통계자료들은 둘째 치고 당장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오늘의 나는 잘 살고 있는 건지 겁부터 먹는 게 오늘날 대한민국 모든 청년들의 현실일 것이다. 삼포 세대라는 별명에 걸맞게 연애, 결혼, 출산과 하나 더 미루게 된 아니 아예 잊혀 버린 게 있다면 예술에 대한 낭만이 아닐까. 학점만 좀 더 채우고, 어학 점수 따고 나서, 이번 공채만 붙고 나서... 고등학교 수험생 때 어른들이 그리고 스스로가 약속했던 “대학가면 다 할 수 있어”라는 말은 이미 거짓말이 돼버렸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꿈꾸던 20대는 어디가고 밝은 척 애써보다가도 무거운 어깨에 한숨을 내쉬고 통장 잔고를 걱정하며 가장 싼 학식을 고르고 숱한 과제와 시험공부에 내일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며 새벽 늦게 잠에 드는 내 모습만 남았다. 20대는 다시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카운트를 세가며 다시는 없을 젊음에게 주어진 낭만을 미룬다.

 

 

차가운 어둠이 깔린 풀밭을 반딧불이 몇몇이 빛을 밝히며 춤을 춘다. 모두가 숨죽인 한밤중을 반딧불이는 스스로 생의 의미를 표출하듯 더욱 바삐 날갯짓을 한다. 20대의 어른아이 개미들은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다. 대학생 개미들은 학업에 아르바이트에 취업 준비에 바쁘고,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들여 놓은 사회 초년생 개미들은 미숙한 업무 처리에 사회의 쓴 맛을 느끼며 지친 한숨을 뱉는다. 예술과 낭만은 내려놓은 지 오래다. 그들 앞에 청춘을 고하듯 마이크를 들고 모습을 드러낸 베짱이 떼들. 너희들은 청춘을 즐겨야 한다고 박수치며 등장한다.

신촌 거리 현대백화점 U-PLEX 앞 한 복판에 ‘블링블링’하게 차려입은 젊은 무리들이 자리를 잡고 시끄러운 음악에 맞춰 현란하게 춤추는 몸짓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관객들은 넋이 나간 듯 춤추는 그들을 감상하거나 허리를 튕기는 댄서들에게 환호를 지르고 사진을 찍고 같이 춤을 추기도 하며 다함께 공연장을 만든다. 높은 무대도 특별한 조명도 없지만 그들은 스스로의 무대를 만들며 젊음 그 자체로 끼와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이 날 공연을 연출한 이들은 모두 연세대학교 중앙동아리 HARIE의 회원들이다. 새내기팀, 걸스힙합팀, 롹킹, 얼반 등 순서대로 준비한 안무를 선보인다. 각각의 표정에서 유쾌함과 자신감이 흘러넘친다. 흥겨운 이들의 어깨에는 취업도 학점도 모두 잊고 청춘만이 지닌 힘과 활기가 느껴진다. 관객을 향한 눈빛에서 손을 잡아 이끌어 무대로 끌어올리는 듯한 착각이 든다. 핵심 멤버로 활약했던 배모 양은 “춤을 춘다는 게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 나를 표현하는 당연한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공연을 해왔는데 그 때부터 함께 활동했던 동기들이 못 본 사이에 부쩍 실력이 늘은 모습을 보고 놀라면서 반성도 들었다. 앞으로도 계속 즐거운 공연을 만들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예술은 발현자 뿐아니라 수용자에게도 더 큰 가치를 줄 수 있다. 5월 말엔 신촌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선 음악 콘서트 ‘오월의 별 헤는 밤’이 열렸다. 무대 앞을 이은 관객석을 가득 매운 대부분은 20대 대학생이 가장 많았지만 가족 관람객과 노부부 역시 적지 않게 보였다. 돌로 된 계단에 방석하나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저마다 함께 공연을 보러온 친구들, 가족들, 연인과 팔짱을 끼고 머리를 기대며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이어 전현무, 정지원 아나운서의 인사를 시작으로 출연 가수가 등장했다. ‘오월의 별 헤는 밤’ 콘서트는 연세대학교 동문 가수들의 출연으로 순전히 재능기부 형식으로 운영된다. 돈 한 푼 받지 않고 노래로써 모교를 찾아 온 ‘선배’들의 마음은 분명 당신들도 겪어왔을 고민과 갈등으로부터 후배들을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 함께 이 순간뿐일 청춘을 즐기게 하고 싶었음이 아닐까.

 

 

날이 저물고 공기가 쌀쌀해지지만 감미로운 목소리에 맞닿은 옆자리 관객의 온기에 어둠은 훈훈히 달아오른다. 마침내 ‘오월의 별 헤는 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짙어진 하늘 속으로 별 몇 개가 모습을 보인다. 연인에게 “이건 내 별~ 저건 네 별~”하며 유치한 멘트를 날렸더니 부끄러웠는지 크게 웃는다.

김광진, 스윗소로우, 에일리, 알리 등의 동문이 어엿한 어른으로 진정한 선배가 되어 후배들을 찾아왔다 어엿이 가수라는 이름을 달고. 그들이 노래를 부르기 전 반가움의 인사와 함께 노래를 간단히 소개했는데 빠지지 않는 소재로 사랑에 대한 경험담이 나왔다. 주로 20대 누구나 비슷하게 겪었을 이별 혹은 짝사랑에 대한 경험들이다.

노래가 다시 들렸다. 단지 여러 음과 박자가 섞인 결과물이 아니라 일상적인 우리의 이야기들. 전 애인과의 달콤함에 그토록 간절하던 가수라는 꿈을 잊고 노래를 부르지 않았던 날들을 헤어진 후에나 깨닫고 나서야 자신과 똑같은 상황을 담은 이별 노래들을 매일 같이 부르다보니 노래가 늘었다며 스스로에게 아픈 위로를 던지는 에일리의 ‘노래가 늘었어.’ 노래를 듣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저들의 목소리에 담겨 모두에게 번지는 것 같아 기분이 오묘해진다. 

 

 


“예술이 밥 먹여주느냐고 예술을 택하려는 젊은이들을 겁주지 말라. 세상에 밥 먹기 위해서 예술을 택하는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 이외수


스치는 일상의 작은 사건들이 사소한 감정들조차 어떤 것도 보잘 것 없는 것이 없다. 그들이 겪어왔고 우리가 지금 겪는 이 성장통이 마침내 예술로 또 다른 창조물로 분명 새롭게 승화되리라. 누가 젊은이들에게 바삐 살라 강요한 걸까. 학업과 취업에 눈이 멀어 우린 분명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있다. 곁에 있는 사람과의 사소한 수다나 다툼, 사랑과 이별, 때로는 귀차니즘과 우울증에 빠져 감정을 소모하는 슬럼프조차도 청춘에게 아깝지 않은,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일상이다. 큰 무대나 이벤트가 아닌 일상을 가장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매개체가 바로 예술이다.

혹자는 “예술이 밥 먹여 주냐, 그런 것쯤은 나이 들어 즐겨도 늦지 않다, 공부하기 싫어서 예술이라는 핑계로 그저 노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나 봄의 끝자락 신촌에서 만난 청춘들은 지금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게 있노라고 당신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로 대답한다.  <구혜리 기자는 연세대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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