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우리말 달인’ 엄민용의 ‘우리말 나들이’

 

▲ 독도

우리말에는 한자말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본래의 뜻과 달리 엉뚱하게 쓰는 말도 참 많습니다. 하나 예를 들어보죠.

“독도 문제를 타산지석으로 본다면, 이어도 문제에서 장기적 준비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어떤 행사를 개최하거나 행동에 나서는 것은 오히려 문제 해결에서 혼란과 불이익을 초래하기가 쉽다.”

모 대학의 교수님이 어느 신문에 기고한 글의 일부분입니다. 얼핏 보면 별 문제가 없는 문장인 듯합니다. 하지만 이 글은 일본인들의 ‘독도 망언’만큼이나 큰 잘못을 담고 있습니다. 바로 ‘타산지석’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타산지석’을 어떤 뜻의 말로 알고 있나요? 위 예문의 ‘타산지석’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가요? 그렇다면 여러분도 ‘타산지석’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타산지석’은 <시경> 소아편(小雅篇)에 나오는 구절로, 원래는 他山之石 可以攻玉(타산지석 가이공옥)이 한 문구입니다. “다른 산에서 나는 보잘것없는 돌이라도 자기의 옥(玉)을 가는 데에 쓸모가 있다”는 뜻이지요. 즉 ‘타산지석’은 보잘것없고 하찮은 것에서도 교훈을 얻는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따라서 저 앞의 교수님 말처럼 독도 문제를 타산지석으로 본다면, 독도 문제는 하찮은 일이 되고 맙니다. 이 정도면 거의 망발 수준이지요.

위의 예문에서 사용한 ‘타산지석’은 ‘본보기’ 정도로 썼어야 하는 말입니다. 또 “거울로 삼아 본받을 만한 모범”을 뜻할 때는 ‘귀감(龜鑑)’을 써야 하고요.

‘인구에 회자되다’ 따위로 많이 쓰이는 ‘회자(膾炙)’도 잘못 쓰는 경우가 많은 한자말입니다.

“로봇 물고기는 그다지 명예롭지만은 않은 스타덤에 올라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다”라거나 “대형 스트라이커 황선홍과 지브릴 시세(프랑스)가 중국의 거친 플레이로 다치면서 월드컵 본선 출전이 좌절된 사실도 인구에 회자하고 있다” 따위의 예문에서 보듯이, 신문과 방송에서 ‘회자’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글 좀 쓴다는 사람들에게는 ‘단골 메뉴’ 중 하나죠.

그러나 앞의 예문에 나오는 ‘회자’는 ‘회자’의 참뜻을 모르고 쓴 것입니다. ‘회자’의 회(膾)는 “고기나 생선의 회”를 뜻하고, 자(炙)는 “구운 생선”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인구에 회자되다’는 “사람들이 회와 구운 생선을 맛있게 먹듯이, 행동·행실·작품 등이 좋은 쪽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다”를 뜻하게 됩니다. 나쁜 일에는 쓸 수 없는 표현인 거지요.

‘옥석구분’도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대개 ‘옥석구분’의 한자표기를 ‘玉石區分’으로 아는 분들이 많은데요. 실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玉石俱焚’이 원래의 사자성어입니다. 어느 국어사전에도 ‘玉石區分’은 없고, ‘玉石俱焚’만 올라 있습니다.

<서경(書經)> ‘하서(夏書)’에 나오는 ‘玉石俱焚’은 “옥이나 돌이 모두 다 불에 탄다”는 뜻으로, 옳은 사람이나 그른 사람이 구별 없이 모두 재앙을 받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이 쓰는 ‘옥석구분’과는 정반대의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따라서 “좋고 나쁨을 잘 구분해야 한다”는 의미의 표현을 하려면 ‘옥석을 잘 구분해야 한다’라고 풀어 써야지, ‘옥석구분을 잘해야 한다’라고 쓰면 안 됩니다. <경향신문 엔터비즈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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