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병이라고요? 그런 병은 없습니다
희귀병이라고요? 그런 병은 없습니다
  • 엄민용 기자
  • 승인 2015.06.18 1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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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우리말 달인’ 엄민용의 ‘우리말 나들이’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이라면 당연히 표준어가 돼야 합니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많이 쓰고, 신문과 방송에서도 흔히 쓰는 말이지만, 현재 사전에 올라 있지 않고, 앞으로도 표준어로 인정받기 어려운 말이 꽤 있습니다.

우리말의 기본 원리를 흔들거나 품격을 떨어뜨리는 말, 또 특정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은 표준어로 대접받기 어렵습니다.

그런 말 가운데 하나가 ‘희귀병’이라는 단어입니다.

‘희귀’는 ‘드물 희(稀)’와 ‘귀할 귀(貴)’로 이뤄진 말입니다. 여기에 ‘병’이 붙으면 “보배롭고 보기 드물게 귀한 병”이 되고 맙니다. 세상에 이런 말은 없습니다. 죽음보다 끔찍한 병마와 맞서 싸우는 분들에게 ‘귀한 병’에 걸렸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요.

‘희귀병’은 대개 ‘난치병(難治病)’으로 쓰면 말이 통합니다. 또 만약 “매우 드문 병”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려면 ‘희소병(稀少病)’으로 쓰는 것이 적절합니다.

“피로회복에 좋다고 알려진 음료를 추가하는 것이다” “새콤달콤한 매실 먹으며 피로회복하세요~” 등의 예문에서 보이는 ‘피로회복’이라는 말도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말이 아주 우스운 표현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피로(疲勞)는 “과로로 정신이나 몸이 지쳐 힘듦. 또는 그런 상태”를 뜻합니다. 이런 피로는 빨리 없애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피로가 계속 몸을 괴롭히게 해서는 안 됩니다. 회복(回復 : 원래의 상태로 돌이키거나 원래의 상태를 되찾음)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죠.

‘피로회복’은 “사라져 가는 피로를 되살려 낸다”는 아주 엉뚱한 말입니다. ‘만성 피로’가 몸에 해롭듯이 피로를 회복해 놓으면 건강에 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것은 ‘원기(元氣 : 마음과 몸의 활동력)’이지, ‘피로’가 아닙니다. 피로는 ‘해소’해야 합니다.

“데니안은 ‘이종격투기를 한다면 말도 안 되는 싸움이지만 종목이 다르니 해볼 만한 것 같다’고 승부욕을 불태웠다” “박태환, 6개월 만의 첫 실전 … ‘승부욕 활활’” 따위 예문에서 보이는 ‘승부욕’도 널리 쓰이지만,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는 말입니다. 당연히 표준어로 대접받기 어렵습니다.

권력욕(權力慾 : 권력을 잡으려는 욕심)이나 명예욕(名譽慾 : 명예를 얻으려는 욕심)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욕(慾)자가 들어간 단어는 어떤 욕심을 뜻하게 됩니다. 

따라서 ‘승부욕’이라고 하면 ‘승부를 하려는 욕심’이나 ‘승부를 잡으려는 욕심’쯤의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 ‘승부(勝負)’는 이길 승(勝)자와 질 부(負)자가 더해진 말로, “이김과 짐”을 뜻합니다. “승부가 나다” “승부를 가르다” 따위처럼 쓰이죠. 

이런 승부에 ‘욕’이 붙으면 “이기거나 지려는 욕심”이라는, 아주 괴상한 표현이 되고 맙니다. 
많은 사람이 쓰는 ‘승부욕’은 ‘승리욕’으로 써야 하는 말입니다. 이 말 역시 국어사전에 올라 있지는 않지만, 써도 무방하다는 것이 국립국어원 관계자들의 견해입니다. 

<경향신문 엔터비즈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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