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세월 담고 있는 농다리, 술도가에선 들큰한 누룩내와 술 익는 냄새가…
천년 세월 담고 있는 농다리, 술도가에선 들큰한 누룩내와 술 익는 냄새가…
  • 김초록 기자
  • 승인 2015.06.26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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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록의 여행스케치> 진천의 여름 풍경화

 

계절의 순환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자연 풍광에서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어느 새 휴가시즌이 시작된 7월, 자연은 짙푸름으로 저마다의 몸과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다. 이번 주말, 어지러운 세상사 잠시 잊고 수도권에서 가까운 진천으로 찾아가보자.

 

▲ 종을 본떠 지은 종박물관

◆ 종의 역사가 한자리에

중부고속도로 진천 나들목에서 진천읍내를 거쳐 성환 방면(34번 도로)으로 5분쯤 가면 종 모양으로 지어진 종박물관(www.jincheonbell.net)이 나타난다. 중요무형문화재 112호인 주철장(鑄鐵匠) 원광식 선생이 만든 박물관으로 종의 탄생과 의미, 흥미로운 설화, 종의 역사 등을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전시실로 들어가면 현존하는 범종 가운데 가장 큰 성덕대왕신종과 가장 오래된 상원사 동종을 비롯해 모양과 제작기법이 제각각인 국내외의 각종 종들을 만날 수 있고 문양 탁본과 음향 감상 코너, 타종 체험 등을 해볼 수 있다. 종박물관이 들어선 역사테마공원 바로 옆에는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 백곡저수지가 펼쳐져 있다. 초평, 덕산저수지와 함께 진천 음성 관내에 필요한 농업용수를 보급하고 있는데 산으로 둘러싸여 경치가 아주 좋다.

 

▲ 배티성지를 알리는 입석
▲ 배티성지에 있는 최양업 신부 동상

 

종박물관에서 안성 방면 백곡면 소재지로 들어서면 가톨릭 박해ㆍ순교지인 배티성지가 기다린다. 국내 최초로 신학교를 설립한 최양업(세례명 토마스ㆍ1821-1861)신부의 자취가 서린 곳이다. 천주교 박해 때 교인들이 피해 숨어들었던 곳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인 조선교구신학교가 둥지를 튼 유서 깊은 현장이다. 경내에는 최 신부를 기리는 기념관(성당)과 교우촌, 순교자 무덤 등이 남아 있어 연중 많은 순례객들이 찾아온다. 굳이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고요함과 경건함이 흐르는 순례길(오솔길)을 따라 걸어봄 직하다.

 

 

▲ 농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 견고하게 쌓은 농다리 디딤돌

◆ 지네를 닮은 독특한 다리

백곡면에서 문백면으로 간다. 구곡리(일명 굴티마을)에 들어서면 독특한 다리(사람들은 ‘농다리’라 부른다) 하나가 나온다. 진천 들판을 가로지르는 미호천(渼湖川)은 문백면 구곡리를 거치면서 아름다운 경관(이른바 상산8경(常山八景))을 만들어내는데, 그 하나가 농다리다. 온갖 자연재해를 거뜬히 이겨내고 오늘도 그 견고함을 자랑하는 농다리는 깊은 세월의 값진 흔적이 아닐 수 없다.

만든 지 1000년(14세기 고려 말)이 넘었다는 이 ‘신비의 다리’는 돌(자연석)로 만들어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돌다리다. 암돌과 숫돌을 엇갈리게 끼워 맞춘 모양이 꼭 지네 같아 ‘지네다리’란 별명도 갖고 있다. 원래는 100미터(스물여덟 칸) 정도 되는 길이였으나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깎이고 패여 지금은 93미터(스물 네 칸) 정도만 남아 있다. 돌과 돌을 서로 잡아당기도록 정교하게 쌓고, 작은 돌로 세운 교각은 토목공학적으로 매우 우수하다는 평을 얻고 있다.

 

▲ 초평호에 놓인 구름다리

 

또 이 다리에는 별난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데, 고려 고종 때 임행(林行) 장군이 그의 출생지인 이 고을 구산동(현재 구곡리) 앞 세금천(洗錦川)에서 눈보라가 치는 겨울아침에 세수를 하고 있는데 때마침 젊은 부인이 친정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차가운 개울을 건너려고 한다. 임행 장군은 그 부인의 효심에 감탄, 용마를 타고 하루아침에 이 다리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이 다리는 그 후로 나라 안에서 변고가 있을 때마다 큰소리로 울었고 특히 임진왜란과 한일합방 당시는 며칠간을 울어 마을 사람들이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

 

▲ 초평호 옆으로 난 나무데크길
▲ 초평호 수상스키

 

농다리를 건너 야트막한 산을 하나 넘어가면 푸른 물을 담은 초평저수지가 나타난다. 진천에서 가장 넓은 저수지로 나지막한 구릉성 산지에 둘러싸여 있다. 저수지 안에는 수초섬, 큰섬 등의 작은 섬들이 있어 풍광이 수려하다. 농다리에서 시작해 초평호를 따라 농암정으로 이어지는 1.7㎞의 트래킹코스(수변탐방로)도 걸어 볼만하다. 경사가 거의 없는 평지의 친환경 나무 데크길은 아치형 구름다리를 건너 청소년수련원까지 이어져 있다. 이 길을 따라가면 이따금 초평호를 누비는 수상스키도 볼 수 있고 간간이 저수지 바람이 불어와 세상사 시름을 잊게 해준다.

 

 

▲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덕산양조장 건물

◆ 세월의 변화를 꿋꿋이 견뎌낸 술도가

진천땅을 돌아다니다 보면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쌓인 건축물을 여럿 만날 수 있는데 1930년에 건립된 덕산양조장(세왕주조)도 그 중의 하나. 양조장 건물로는 유일하게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단층의 함석지붕 목조건축물이다. 오랜 세월의 굴레에도 원형을 잃지 않고 있는데 백두산에서 전나무를 가져와 지었다 한다. 자연을 최대한 활용한 건물로 내부로 바람이 잘 통할 수 있게 통풍구를 따로 마련했다. 건물 앞에는 측백나무를 심어 해충을 방지하고 건물의 나무가 썩지 않게 했다. 3대째 가업을 이어 전통주를 생산하고 있는데, 술도가에 들어가면 들큰한 누룩내와 술 익는 냄새가 진동한다. 예약하고 가면 전시 시음관을 견학하고, 막걸리와 빈대떡을 맛볼 수 있다. 문의: 043-536-3567

 

 

▲ 김유신 탄생지

◆ 역사를 바꾼 김유신의 자취

이번에는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룩한 흥무대왕 김유신(595~673) 장군을 만나러 간다. 진천읍내에서 10분 거리. 흥무대왕은 김유신이 죽어서 받은 시호이다. 장군 탄생지는 읍내 군청 앞 삼거리에서 천안 쪽으로 가다보면 장군의 영정을 모신 길상사가 나오고 이어 4km쯤 더 간 곳에 있다. 가는 길이 조금 복잡해 이정표를 잘 봐야 한다. 장군 생가로 가기 전, 길상사부터 들러보는 게 순서일 것 같다. 길상사에 들어서면 먼저 오른쪽 끝으로 김유신 장군께 올리는 제실이 보인다. 김유신은 신라 진평왕 17년(595) 진천 태수였던 김서현과 어머니 만명 부인 사이에 태어났다. 그는 이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뒤 화랑이 됐고, 낭비성 싸움에 출전하는 등 신라군의 사기를 북돋웠다.

 

▲ 김유신 장군을 모신 길상사

 

도당산 자락에 포근히 안긴 사당은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제실과 사적비를 지나면 홍살문을 통과해 외삼문과 내삼문으로 들어가게 된다. 내삼문은 흥무전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 흥무전에는 장우성이 그린 김유신 영정과 흥무왕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그냥 스치듯 감상하는 것보다 하나하나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찬찬히 둘러볼 일이다.

김유신 장군이 태어난 상계리 계양마을은 우리 농촌 서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생가 뒷산은 장군의 태(胎)가 묻혔다 해서 태령산(胎靈山)이라 한다. 김유신은 이곳에서 태어나 훗날 삼국을 통일했다. 일설에는 뒷산(태령산)에 태를 묻을 때 용이 내려와 태를 가지고 승천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이런 연유로 태령산은 태룡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생가 터에는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유허비)이 있고 김유신 장군이 소년시절 말 달리며 활쏘기 연습을 했다는 치마대(馳馬臺, 치마바위)가 있다.

산길을 따라 태령산 꼭대기에 오르면 태실을 볼 수 있다. 태실은 아기가 태어날 때 나온 태를 따로 보관한 시설을 말한다. 김유신 태실은 자연석으로 둥글게 기단을 쌓고 봉토를 마련하였으며 태령산 꼭대기를 따라 돌담을 산성처럼 쌓아 신성한 구역임을 표시하였다. 생가 터에서 태령산 정상까지는 1.1㎞ 거리로 30분쯤 걸린다.

 

 

▲ 보탑사의 명물인 목탑

◆ 산마을에 포근히 안긴 절집

김유신 탄생지에서 길을 따라 계속 가면 그 끝에 보탑사가 나온다. 보탑사를 에두른 앞산은 그 모양새가 마치 연꽃 같아 산 이름도 보련산이란다. 보탑사는 쇠못 하나 쓰지 않은 순수한 목탑으로, 목수 신영훈 선생의 혼과 열정이 녹아 있는 보기 드문 걸작이다.

탑 안으로 들어가면 1층 본당에는 4대 부처(약사여래, 아미타여래, 석가여래, 비로자나불)를 모신 불전이 있고, 2층 법보전(法寶殿)에는 석가세존의 가르침인 경전을 봉안해 놓았다. 3층은 미륵 3존불을 모신 미륵전이다. 이 목탑은 그 규모나 가치 면에서 많은 얘깃거리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고건축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점과 강원도 산 붉은 소나무 8톤 트럭 150대 분량의 목재를 전통기법대로 짜 맞추어 오렸고, 상륜부는 스테인리스스틸 관으로 심을 박아 힘을 지탱하게 했으며, 외부는 5밀리미터의 순동으로 제작했는데 여기에 들어간 구리만도 4톤이 넘었다고 한다. 또한 내부는 1층에서 3층까지 계단으로 오르내릴 수 있게 배려하였다. 이 절 한쪽에는 유래를 알 수 없는 고색창연한 백비(白碑 보물 404호)가 있다. 비문이 없어 백비로 불리는 이 비석은 원래 연곡리 논 가운데 있던 것을 보탑사 경내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 독립운동가 이상설 생가

◆ 독립운동가의 자취

진천은 독립운동가 이상설 선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읍내에서 가까운 생가(진천읍 산척리 산직마을)는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로 흙벽돌로 쌓고 진흙으로 마감했다. 이시영, 이규형 등과 함께 신학문을 공부했던 선생의 호는 ‘보재’이다.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서 조선이 독립국임을 알리고자 고종의 밀서를 가지고 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후로도 조국의 앞날을 위해 애쓰다가 1917년 연해주에서 생애를 마쳤다.

<수필가/ 여행작가>

 

 

*가는 길=중부고속도로 진천 나들목-좌회전 후 성석사거리 우회전-벽암사거리 좌회전-백곡저수지 방향 직진-장관교 지나 좌회전-종박물관. 진천읍에서 문백(통산, 평산리)방면 시내버스 1일 9회 운행. 덕산양조장은 진천 나들목에서 21번 도로를 타고 덕산면 소재지로 가면 된다. 군청 앞 삼거리에서 17번 국도와 21번 국도를 번갈아 타고 사석 삼거리에서 천안 방면 4.2km 지점에서 우회전하면 길상사, 김유신장군탄생지, 보탑사 등지로 갈 수 있다. 대중교통: 서울(동서울)~진천간 직행버스 30분 간격 운행. 진천터미널 옆 읍사무소 앞에서 연곡리행(보탑사) 군내버스가 하루 네 차례 운행.

*맛집=진천읍내에 느티나무집(민물매운탕·닭백숙, 043-532-5534), 보림숯불갈비(532-0030), 엄나무에걸린닭(누룽지닭죽·누룽지오리죽,532-8200),두부촌(깻잎두부보쌈·두부전골, 533-9946) 등이 있고 백곡저수지 인근의 곰가내(532-0767, http://cafe.naver.com/gggooommm)는 쌀밥정식이 맛있다.

*숙박=진천읍내의 숙박시설을 이용하거나 이월면 소재지에 있는 아랑훼스펜션(043-536-3366,www.aranghwese.com),별빛고운언덕펜션(536-6114,www.ipension.net) 등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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