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빼빼가족…’ ‘악당은 아니지만…’

 

블로그나 페이스북 같은 SNS 활용이 활발해지면서 나타난 새로운 현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비전문가가 쓰는 여행에세이 출판 붐이다. 예전에는 관광지 정보 중심의 여행서적이 대부분이었다면 요즘은 건축이나 미술 등 하나의 테마를 중심으로 쓴 인문학적 에세이, 개인의 사색을 담은 감성 에세이, 도전정신으로 가득 찬 어드벤처형 에세이 등 다양한 형태로 기행문이 변화하고 있다. 유명 방송작가나 피디, 파워 블로거, 여행전문 기자에서부터 일반 대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평범한 부부에 이르기까지 그 작가층도 상당하다. 

여행에세이는 장르적 특성상 개인의 소소하고 다채로운 경험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비전문가의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다. 그래서 간혹 개인 블로그나 일기장에서나 볼법한 수준의 글을 용감하게 출판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SNS 상에 차고 넘치는 맛집 소개 블로그마냥 여행담을 먹방 사진 찍듯이 큰 고민 없이 담아내거나 아이와 방학숙제로 낼법한 체험학습 수준의 내용을 버젓이 여행에세이로 둔갑시키는 경우도 있다. 혹은 본인만의 지나친 감상에 허우적대며 독자의 공감을 전혀 얻지 못하는 자아도취형 글들도 부지기수다. 일종의 여행 허세 글들이다. 

 

▲ 서점 내 여행에세이 코너


특히 요즘엔 회사를 관두거나 학교를 그만두는 등 많은 것을 포기하고 세계여행가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다. 하지만 1~2년 사이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가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그런지, 단지 그 정도 모험을 했다고 해서 베스트셀러에 오르긴 쉽지 않다. 이미 독자들도 그 정도 이슈에는 무뎌졌다. 여기서부터는 그야말로 콘텐츠의 차별화가 여행기의 질을 승부한다. 여행에 얼마나 과감하게 내던져졌는가, 그 속에서 사람냄새 나는 진솔한 에피소드가 있는가가 중요하다. 아무리 이국적인 여행지에 대한 소개라 해도 블로그 일기 같은 피상적인 에피소드의 나열이나 여행지에서의 망중한에 빠진 싸구려 감상문은 글로서의 매력이 없다. 더군다나 돈 주고 사봐야 하는 책이라면 적어도 그 값어치는 해야 할 터이다. 

서점에 범람하는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여행에세이를 뒤적이다 유독 날것의 이야기가 담긴 2권의 책을 발견했다. 하나는 ‘빼빼가족, 버스몰고 세계여행’(빼빼가족 저, 북로그컴퍼니) 다른 하나는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안시내 저, 처음북스)이다. 북로그컴퍼니는 2년전 이미 30세 아들과 60세 엄마가 세계일주를 떠나는 이야기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를 출판해 화제를 모았던 출판사다. 역시나 빼빼가족 여행기도 그 콘셉트만으로도 화제성을 몰고 오기 충분하다. 

▲ 빼빼가족, 버스 몰고 세계여행 책 표지

내용인즉슨 이렇다. 디자이너 아빠와 서양화를 전공한 전업주부 엄마, 그리고 고3, 중3, 중1자녀가 25인승 버스를 타고 1년간 유럽과 아시아 총 30여 개국을 여행한다. 한 편의 영화같은 이야기는 지난 2014년 6월 3일 경북 울산 간절곶에서 시작됐다.

속초에서 배를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간 후 버스로 시베리아 고원을 횡단한다. 북유럽을 거쳐 독일, 파리, 크로아티아, 터키, 이란 등 총 30여 개국을 여행하며 빼빼가족은 자연의 위대함과 사람살이의 기본을 배워나간다. 

‘아이들을 위해 내가 그동안 쌓아온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떠나기로 했다.’

아버지 최동익씨는 중고생인 아이들이 세상에 나아갈 중요한 시기에 가족이 함께여야 한다는 생각에 무모한 여행을 기획했다고 한다. 여행 이후 어떤 좋은 결과가 있었는지 범인들의 질문에 그는 단호히 얘기한다. 무엇을 얻기 위해 떠난 여행이 아니라고. 그는 1년간 유유자적 시간을 보낸 대가가 혹독하리라는 것도 안다. 그는 직장에 복귀하지 못했고 아이들의 성적은 뒤쳐졌다. 하지만 영혼의 소리가 들리는 천상의 길 시베리아, 태고의 이야기를 간직한 바이칼 호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한 스웨덴 웁살라의 우드랜드, 숭고한 순례자의 모습을 만나게 되는 산티아고 순례길 등 자연 그 자체가 여행의 선물이었고 시베리아 어부에서 시를 사랑하는 러시아 소녀 까지 길에서 만난 모든 이가 인생의 선생님이었다. 

 

▲ 빼빼가족 사진

 

빼빼가족의 이야기는 여행지에 대한 감흥을 불러일으키기 보다는 독자들 스스로 자신의 인생에 질문을 던지게 한다는 의미에서 힐링 에세이에 가깝다. 조금이라도 기득권을 버릴 수 없어 쉽게 어디든 떠날 수 없는 사람들, 아이들을 혹독한 교육환경에 내몰면서 아이들에게 진정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어른들, 서로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고 살지 못하는 보통의 가족들. 이 모두에게 빼빼가족의 무모한 용기는 작은 울림을 준다. 

여행을 마치고 아이들이 아빠에게 한 짧은 말로 책은 마무리된다.

‘아버지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직함에 아버지라고 적으세요.’ 

그는 여행을 다녀온 최종 이유가 바로 이 아이들의 짧은 말이었다고 기억했다. 

▲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 표지

두 번째로 눈에 띈 책은 22세 대학생이 가지고 있는 총 재산 350만원으로 141일간 말레이시아, 인도,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이집트, 태국 등을 여행하고 쓴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이다. 사실 아이스크림 먹는 저자의 귀여운 얼굴을 표지그림으로 한 탓에 글로서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근데 의외로 여행의 날것, 속살 그대로의 모습이 매력적인 진짜 여행기였다. 그 어떤 미사여구나 세련된 문체보다도 가장 와 닿는 건 역시 사람냄새 나는 진솔한 경험이다. 이 책의 가장 장점은 저자가 현지 삶에 완벽하게 빠져 들어가 그 곳 사람들과 사람 대 사람으로 소통하며 진짜 사람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데 있다. 보통 혼자 떠나는 자기 고백형 여행기에는 자기애 중심적인 허세글로 도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막상 혼자 여행을 갔는데 딱히 쓸 만한 에피소드가 안생기기 때문이다.

본인을 완전히 버리는 마음으로 여행을 즐길 준비가 되지 않은 여행가는 여행의 참 모습을 알려줄 현지인과의 교류가 깊이 생길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저자 안시내씨가 만난 현지인들은 독자마저도 한 명 한명이 친근하게 느껴질 만큼 그 속내를 낱낱이 드러내준다. 본인을 무장해제한 저자 앞에서 현지인들 역시 무장해제된 것이다. 인도의 가방 가게에서 재봉틀 하던 점원 바부, 가난을 동정했던 것이 미안할 만큼 속 깊은 바라나시의 열 살 아이, 낯선 나라 모로코에서 막내딸처럼 돌봐준 카페주인 등 등장인물이 하나같이 여행의 주인공이 되어준다. 

 

▲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 중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 

사람들은 이들처럼 많은 것을 버리고 떠나는 여행을 동경하고 실행해보려는 꿈을 꾼다. 독자가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것은 바로 이 무모한 용기의 결말이다. 여행을 마친 저자는 여행 후 ‘세상에 홀로 서기에 충분히 단단해졌다’고 이야기한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완벽하게 달라진 나가 아니라 조금 당당하진 자신이다. 빼빼가족에게 무모한 용기의 결말은 조금 가까워진 가족이었다. 하지만 여행의 진면목은 경험한 당사자들의 몫일 터이니 그들이 삶의 진짜 모습을 일일이 설명하긴 쉽지 않다. 그렇기에 독자의 고요한 일상에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무모한 용기’의 작은 파문 하나만 일게 하는 것만으로도 두 책을 읽는 목적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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