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문정인 연세대 교수-2회

남북관계가 나날이 악화하고 있다. 6.15 민족공동행사가 무산됐고, 분단 70주년을 맞는 8월의 민족공동행사 역시 개최가 불투명하다. 북한은 올해 들어 지난 2월과 5월, 가장 최근에는 6월까지 3차례에 걸쳐 미사일을 발사하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의 물꼬는 점점 좁아지는 듯하다. 최근 북한은 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 불참까지 통보했다.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감시하는 유엔의 현장 거점이 될 ‘유엔 북한인권사무소’(서울 유엔인권사무소)가 지난 23일 서울에 개설됐기 때문이다. 개소식엔 유엔의 인권 분야 수장인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 유엔 인권최고대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참석했다. 사무소는 향후 북한에서 벌어지는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 침해에 대한 책임을 규명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북한의 격렬한 반발이 현실화하고 있어 남북관계에는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미군 사드(THAAD) 한반도 배치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입장은 갈팡질팡 애매모호한 상황.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에 눈치만 보는 모양새가 됐다.

이처럼 여러 이슈가 겹치며 바람 잘날 없는 외교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현재 상황은 어떻고 앞으론 어떻게 되는 걸까.

“사드 문제는 큰 틀에서 봐야 한다. 북한과 협상을 통해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사용하지 않게끔 만들어야 하는 게 우선인 것이다. 이게 바로 국가의 책무이며, 외교정책의 최우선이 돼야 한다.”

남북관계, 국제관계 전문가인 문정인 연세대 교수의 얘기다.

문 교수는 사드는 국가안보 이익에 도움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오히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병진노선을 정당화시켜 줄 뿐이라는 것이다.

문 교수는 “중국도 분명히 우리가 사드를 들여오면 우리를 적대적으로 볼 가능성이 크다”며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별로 없을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문정인 교수와의 심층인터뷰 전문 2회 분이다.

 

- 최근 우리나라의 예방 외교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는가.

▲ 북한은 몇 차례 국면전환을 위한 신호를 보내온 바 있다. 지난해 10월 인천 아시아게임을 계기로 황병서, 최용해, 김양건 실세 3인을 내려 보낸 것이 대표적이다. 대북전단 살포 문제로 어그러지고 말았지만. 올해 신년사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상투적인 전제조건을 내걸긴 했지만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일말의 의지가 엿보이는 신년사였다. 우리는 그에 화답해 상황을 전향적으로 이끌고 나갔어야 했다. 그랬다면 지금의 국면은 적잖게 달라졌을 것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북한은 미 국무부에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임시 중단하면 핵실험의 임시 중단은 물론 그 이상의 조치도 취할 수 있다’는 ‘중대 조치 메시지’를 보냈다. 이 제안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직접 지시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미 국무부는 이 제안을 10시간 만에 거부했다. 또한 미국은 북측의 조건 없는 6자회담 복귀 제안에 대해서도 “공허한 제안”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이러한 대응으로는 신뢰를 구축할 수 없다.

 

- 이후 상황은 악화된 듯하다.

▲ 예상대로다.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 희망을 접고 병진노선의 길로 돌진하고 있다. 핵무장의 정당성까지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의 6자회담을 위한 탐색적 대화 제안에도 반응은 차갑다. 또한 우리 정부에 대해 연일 원색적 표현으로 비난 수위를 높여 가고 있다. 5, 6월은 남북관계의 골든타임이라 불린다. 하지만 올해는 그 이름이 무색해졌다. 치솟는 긴장과 충돌 위기를 막으려면 그 어느 때보다도 창의적인 예방외교 노력이 중요한 시점이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한다면.

▲ 대북 제재와 압박을 위한 한·미 공조는 더 이상 대안이 되기 어렵다. 북한을 협력의 무대로 끌어내는 제2의 ‘페리 프로세스’에 대한 한·미 합의 도출이 절실하다.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도 이제는 타결돼야 한다. 북측이 사과와 재발방지, 제도화된 신변보장만 약속한다면 재개 못할 이유는 없다. 금강산 관광 재개는 이산가족 재상봉과 비무장지대(DMZ) 세계생태평화공원 같은 다음 단계의 그림도 가능하게 할 것이다.

 

-6.15공동선언 15주년도 아무 의미 없이 지나버렸다. 오히려 남북관계만 더 악화되는 상황인데.

▲ 6.15공동선언은 당시 얼어붙어 있던 남북관계에 반전의 패러다임을 가져온 획기적 선언이다. 신뢰를 갖고 교류협력하자고 양 정상이 문서로 약속한 것이다. 특히 6.15공동선언 2항은 남북정상이 통일방안에 대해 공감대를 가졌다는데서 매우 의미가 크다. 큰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순간이다. 그런데 평화와 통일에 관해 엄청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그 선언이 15년이 지나면서 퇴색되고 말았다. 일단 이명박 정부가 6.15공동선언의 기본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게 발단이다. 그리고 현 정부 역시 실질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올해가 광복 70주년이다. 남북이 갈라진 것도 그렇다.

▲내가 관여하고 있는 통일준비위원회에서 분단 70년을 맞아 오는 8월 의미 있는 남북행사들을 여럿 기획하고 있다. 그걸 계기로 남북 간에 신뢰구축의 새로운 계기를 만들려고 했다. 물론 그전에 기획해왔던 6.15 관련 행사를 잘 치러야 되는 건 물론이다. 이희호 여사 방북 문제라든가, 6.15공동위원회 협의도 정부가 전향적으로 실무접촉을 허가해줬다. 그 외의 여러 분야에서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정부가 전향적으로 나온 건 사실이다.

그런데 갑자기 현영철 처형 문제에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포정치’ 운운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어버렸다. 북쪽 입장에서는 그것이 최고존엄에 대한 모독으로 밖에 볼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또 남측의 의도와 관련 회의감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북의 과거 행태를 봤을 때 자기네 최고존엄을 훼손하고, 우리의 진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대화를 거부해 오지 않았나.

많은 전문가들이 4월 한․미연합군사훈련이 끝난 뒤인 5∼6월이 골든타임이라고 생각했고, 나도 마찬가지다. 6월에 뭔가 이루어진다면, 8월은 더욱 순순히 풀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을지훈련 같은 문제가 해결되면 남북정상회담까지 갈 수도 있겠구나, 생각까지 해봤는데 현 상황에선 그저 아쉬울 뿐이다.

 

- 박근혜 대통령 임기도 절반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남북관계 개선, 가능한 일일까.

▲박 대통령 임기가 2년밖에 안 남았다. 올해 안에 남북 간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상황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내년에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기도 힘들지만 한다고 해도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똑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없는 상황이다. 8월 한․미군사훈련이 시작된다. 그러면 북한이 경직되게 나올 것이다. 그렇게 봤을 때 8월 안에 해야 한다. 이 시기를 놓치면 상당히 어려워질 수밖에 없고, 현 정부에 기대할 게 없어지는 셈이 된다.

 

- 5·24조치에 대한 생각은.

▲ 대북관계 개선의 열쇠는 역시 5·24조치다. 우리 정부의 입장을 번복할 수는 없다. 북한의 사과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천안함 공격을 일관되게 부인해온 북한이 돌연 사과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교착 상태를 감안할 때 북한 국방위원회의 천안함 공동조사 제의를 전향적으로 검토하는 것도 현실적 해법 중 하나이다. 우리가 진행해온 조사 과정과 결과가 확실한 만큼 꺼릴 이유가 없다고 본다. 온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북한의 소행임을 입증한다면 5·24조치 문제를 해결할 다른 길도 열릴 것이다.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쟁을 예방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한다면, 또한 통일 준비와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길이라면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파격적인 예방 외교가 필요한 때이다.

 

-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외교정책 전반에 관한 비판의 목소리도 들리는데.

▲ 비판은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소용돌이치는 동북아 정세의 판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대일 견제 외교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비판은 후자에 쏠려있다. 지난 4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워싱턴을 방문했다. 이 방문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과거사를 희석시키고 ‘미·일 신밀월시대’를 열어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에 우리 정부는 무엇을 했느냐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같은 달 아베 총리는 반둥회의 60주년을 맞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시기 우리 대통령은 한가롭게 멀리 떨어진 남미를 순방하고 있다는 한탄도 나왔다.

 

- 어떻게 생각하나.

▲ 공정하지 못한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일본 총리의 방미를 훼방하거나 미국과 일본 사이를 갈라놓을 수는 없다. 현재의 분위기는 단순히 일본이 로비에 능하고 워싱턴에 친일 성향 세력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객관적으로 미국은 예전부터 한국보다 일본에 더 큰 비중을 두어왔다. 또한 우리 정부가 섣불리 두 나라 관계에 간섭한다면 큰 외교적 결례이기도 하다. 중국과 일본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선택에 우리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은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미 동맹은 대북 억지를 위한 것이고 미·일 동맹은 대중 견제를 위한 것이다. 중·일 정상의 만남도 나쁠 것은 없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개최하려는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의 틀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재의 상황을 한국의 외교적 고립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내부의 압박이 거세질수록 우리나라 외교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한국이 당면한 최대 위기는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의 악화다. 이러한 사활적 문제에서 아무런 출구가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비판하려면 정치권이 위기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쓴소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 마지막으로 향후 외교 정책에 대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다면.

▲ 통일부는 북한과 관계개선의 물꼬를 트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북핵 문제만 보아도 그렇다. ‘코리안 포뮬러’라는 북핵 대화 재개 방안을 통한 해법을 찾고 있다. 이렇듯 통일부와 외교부가 북한 문제에 공을 들이고 있을 때 국가정보원은 느닷없이 현영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의 처형에 대한 첩보를 세상에 내놓았다. 통일부와 국정원이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인 것이다. 국정원의 그러한 조치는 남북관계 개선에 악재가 될 것이 자명하다. 국익이라는 큰 틀에서 그 첩보의 정확성과 공개 시기의 적실성을 세심하게 따져야 했다. 국회 정보위 위원장과 여야 간사들도 이를 언론에 중계하는 데 급급했다. 이건 아니다. 본질을 회피하고 하기 쉬운 으름장만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정치권이 진정으로 한국의 외교안보를 고민한다면 경중을 고려해 정부에 대한 건설적 비판을 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문정인 교수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이자 영문 계간지 ‘글로벌 아시아(Global Asia)’ 편집인이다. 연세대 김대중 도서관 관장과 연세대국제화자문위원장직을 겸임하고 있으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과 통일연구원장, 그리고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과 외교통상부의 국제안보대사직을 역임한 바 있다. 1, 2차 남북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참석한 유일한 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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