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울 그때를 아십니까

세월에 따라 강산도 변한다고 해요. 그런데 요즘은 굳이 세월이라고 할 것도 없이 빨리 빨리 변하고 있는 게 서울의 모습이에요. 자고 일어나면 생겨나는 아파트, 그리고 새로운 빌딩들…. 아주 정신을 못차릴 정도지요? 여러분도 그런 경험 많이 있을 거에요. 그런데도 사방에선 고공크레인이 하늘을 찌르고, 포크레인이 땅을 파내고 있는 모습들 뿐이에요. 이러다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집도 찾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해요.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렇게 변화속도가 빨라졌을까요? 그건 근대화 이후 현대 사회에 들어오면서부터에요. 조선 왕조 이후 한반도의 중심이었던 서울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서울이 조선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로서, 시골사람들에게는 살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었다는 건 알고 계세요? 이에 ‘사람의 새끼는 서울로 보내고, 마소 새끼는 제주로 보내라’는 속담이 생겨났을 정도에요.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사진으로 보는 서울>을 중심으로 근대화 과정에서의 서울을 매주 소개해볼까 해요. 사진에서 느껴지는 서민들의 삶이 풍요로운 오늘의 기반이 됐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더욱이 강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고충은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셈이죠. 옛 서울의 모습도 감상하고 변화하는 생활상도 느껴보세요.


 

1. 화신백화점 매장

화신백화점은 세 가지로 유명했다. 첫째 조선인이 소유한 최초의 백화점이라는 점, 둘째 화신재벌로 불린 조선인 재벌의 탄생이라는 점, 셋째 국내 최초로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가설했다는 점이었다. 특히 서관에 가설한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는 장안의 화제가 됐으며, 시골사람들의 관광코스가 될 정도였다.

 

 

2. 화신상회(1931)

1931년 박흥식은 종로 네거리의 화신상회를 인수했다. 평안도 용강에서 쌀장사로 돈을 모아 지물업으로 성공하자 당시로서는 거액인 36만원을 주고 귀금속 전문가계인 화신상회를 인수한 것이다.

 

 

3. 건설 중인 화신백화점

박흥식은 낡은 목조 2층 건물인 화신상회를 헐고 3층 콘크리트 건물을 증·개축했다. 이것이 조선인이 소유한 유일의 백화점, 종로의 명물 화신백화점이었다. 그러나 1932년 화신백화점 바로 옆 빌딩에 동아백화점(동아백화주식회사, 한상억 설립)이 문을 열면서 치열한 경쟁에 들어갔다. 이후 박흥식은 6개월만에 동아백화점을 흡수했다. 1934년 화신백화점은 전국에 1000개의 연쇄점을 개설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연쇄점 모집 광고를 냈다. 그리고 이 연쇄점을 통해 `연말대매출`을 실시하고 대대적인 경품을 제공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1937년 기존의 동관에 이어 서관이 완공됐다.

 

 

4. 승합택시(1920년대 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택시영업이 시작된 것은 1912년이다. 일본인과 조선인이 합자해 포드 T형 자동차 2대를 들여와서 시간당 5원의 요금을 받고 임대영업을 시작한 것. 1930년대 택시요금은 80전이었는데, 당시 전차·버스 요금이 5전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택시를 보통 사람이 이용하기란 가히 `하늘의 별따기`였다.

 

 

5. 1930년대의 택시

일제 시대의 택시는 지금처럼 탈 사람을 찾아다니지 않고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손님이 부르면 갔다. 1930년대 종로 3가 큰 길 가에 주차장이 하나 있었는데, 10대 정도 부리고 있었다. 여기를 `차부`라 불렀다. 이곳에 전화를 두고 손님을 기다렸으니 일종의 `콜택시`였던 셈이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은 곧잘 `어디 어디로 차를 보내 주세요`라고 거짓 전화를 해 골탕을 먹였다.

 

 

6. 명치정(현 명동) 거리와 상점들

현재의 명동 일대를 일제 때는 명치정이라 불렀다. 이곳은 경성부청사·조선은행·미쓰코시백화점 경성지점을 비롯한 각종 기관들이 밀집해 있는 경성의 상업과 정치의 중심지였다. 식민지 조선에 왜식 또는 서양식 유행의 첫 바람을 일으킨 곳도 바로 이 곳이었다. 또한, 양품점과 양화점·시계포, 그리고 카페가 즐비했던 이 곳은 하이칼라 청춘들의 거리이기도 했다.

 


 

7. 본정(현 충무로) 입구(1930년대)

황금정(을지로), 본정(충무로), 명치정(명동)은 일본인이 상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일본인의 게다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서울 속의 작은 도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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