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근대식 공장 건물 ‘무기고’
한국 최초의 근대식 공장 건물 ‘무기고’
  • 김승현 기자
  • 승인 2015.07.13 1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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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생생 역사 현장 탐방- 서울시 근대건축물 7(전사청,충정각)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인용하며 유명해진 문구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도 문화유적의 참맛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방화로 소실됐던 국보 1호 남대문은 두고두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이에 <위클리서울>은 서울 인근의 유적지를 직접 찾아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소개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도심 속에 자리잡은 전사청과 충정각을 찾았습니다.

 

▲ 근대식 무기 창고였던 ‘전사청’



서울 삼청동 길은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의 명소다.

한쪽엔 조선 왕조의 정궁이었던 경복궁이 위치해 있고 길 건너엔 인사동 북촌 마을이 방문객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가는 곳마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볼거리가 있고 유명한 맛집과 카페들도 가득하다.

조선시대 무기고인 번사창도 바로 삼청동 길 인근에 있다. 당시만 해도 경복궁 주위엔 관사들과 사대부 양반들의 주택들이 빽빽이 위치해 있었는데 번사창은 지금까지 남은 몇 안 되는 건물이다.

 

▲ 아치 모양의 정문은 화강암으로 강조했다.

 

볼거리 많은 ‘삼청동 길’

1982년 서울 유형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된 번사창은 조선 말기 근대식 무기를 제작하던 관청인 기기국의 무기고로 사용한 건물이다. 한국 금융연수원 안에 있는데 정문에서 문화재 관람 왔다고 하면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번사’란 흙으로 만든 거푸집에 쇳물을 주조하는 것을 말한다. 화약을 넣어 폭발시킬 때 천하가 진동하는 소리가 나고 빛은 대낮처럼 밝다는 뜻에서 나왔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지 8년 뒤인 1884년에 지어졌다. 당시는 무기의 근대화를 위해 새로운 제도를 앞다퉈 받아들였던 시기다.

 

▲ 건물 위쪽엔 환기창이 곳곳에 나 있다.



번사창에선 탄약을 제조하고 무기를 보관하기도 했다. 현재의 건물은 1984년 해체 보수한 것이다. 길이 33m, 폭 8.5m의 창고형 건물이며 짙은 회색 벽돌로 쌓았다. 붉은 벽돌로 송곳니 모양의 띠를 둘렀으며 삼각형 모양의 지붕틀을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놓아 맞배지붕을 맞들었다. 그 위엔 한식기와를 얹었다. 아치 모양의 정문은 화강암으로 만들었고 측면문은 붉은색 벽돌로 띠를 넣어 장식했다.

지붕 꼭대기엔 무기를 만들 때 발생하는 열과 오염된 공기를 배출하기 위해 환기창을 뒀다. 이 건물은 벽돌쌓기 수법을 사용했지만 처마 장식, 창문 형태 등은 중국풍이다. 지붕틀 구조 역시 전통 방식과는 다른 서양기법이 반영돼 동서양 건축양식을 절충한 건물로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번사창은 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한국 최초의 근대식 공장 건물이라는 의미도 있다.

 

▲ 중국풍의 창문
▲ 측면 문은 붉은 벽돌로 띠를 둘렀다.



이 곳은 조선 초기 군기시의 창고인 별창이 있었던 장소기도 하다. 조선 말까지 군대에서 사용하는 무기 등 병참을 취급한 군기시는 훗날 기기국에 합병됐다. 군기시의 북쪽에 있어 북창이라는 별칭이 붙었으며 화약을 제조했기 때문에 화약고 터라고도 불렀다.
 

짬뽕스타일 건축 양식

충정로역 인근에 있는 `충정각`도 근대 건물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재개발 지역이라 주위가 어수선하지만 역사의 향기를 만끽하기엔 충분하다. 원 이명래 고약집 간판이 붙은 골목길도 분위기 있다.

충정각은 1910년 경 지어졌다하니 100년이 넘는 역사를 머금고 있는 셈이다. 현재는 음식점과 각종 전시회가 열리는 대안공간으로 사용 중이다. 일제 시대 벨기에의 영사관저로 사용되다 러 명의 소유주를 거쳐 1956년 3월부터 2007년 2월까지 배금순 씨가 50년 넘게 살았다. 관계자에 따르면 처음 건축 당시의 모습이 대부분 유지돼 지금까지 이어졌다.

 

▲ 일제시대 벨기에 영사관저로 사용됐던 ‘충정각’.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 충정각의 정문과 뜰
▲ 충정각 현판
▲ 충정각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독일인 건축가에 의해 지어진 집으로 유럽과 일본, 그리고 한국적 건축 양식이 모두 혼합돼 세워진 게 특징이다. 거대한 소나무 뿐 아니라 석탑과 뒤뜰가지 보존할 가치가 있다는 게 관계자의 말이다. 리모델링 당시 100여발의 탄피와 매매 계약서가 나와 역사적 의미를 더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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