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시골살림은 천국

 

나는 결정주의를 믿지 않는다.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우 수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종교도 생각의 차원에서나 가끔 들여다볼 뿐 마음에 담아본 적이 없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분석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때 행복은 완성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욕심이 많은 셈이다. 골프장 출근을 결정한 것도 결국은 그런 맥락에서였다.

서울에 살던 시절 나는 가능한 한 운전은 하지 않고 살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골 살림을 시작하고 보니 자동차가 없으면 교통비가 두세 배 이상으로 들었다. 그래서 굳이 시험을 세 번씩이나 떨어져 가면서 운전면허를 얻었고, 지금은 자동차를 제법 익숙하게 몰고 다닌다. 같은 맥락에서, 예전의 나는 골프장을 매우 한심하다는 투로 바라보곤 했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골프장으로 출근을 한다.

 

▲ 저 푸른 초원 위에서

 

그렇다고 갯벌 공부를 그만둔 것은 아니다. 갯벌은 갯벌대로 나간다. 활쏘기도 물론 계속 할 것이다. 새벽에 골프장으로 출근해서 아침에 퇴근하고, 잠깐 쉬었다가 갯벌을 나가고, 갯벌에서 돌아오면 또 잠깐 쉬었다가 활터를 나가고, 활터에서 저녁 무렵이면 또 골프장으로 출근, 저녁 여덟 시쯤 돌아오면 하루 일과 끝이 되어 책을 뒤적거리거나 영화를 보거나 뉴스 따위를 훑어본다. 얼핏 정신이 하나도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아니다.

학생이 학교에서 한 가지 과목만 공부를 하는 게 아니듯이, 산다는 것 자체를 공부로 파악하고 있는 내게 있어 세상은 그 어떤 것이라도 그 자체로써 고귀하고, 그래서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내 정신을 긴장시키고 머리를 맑게 해준다고 나는 믿는다. 육체가 제아무리 피곤해도 새로운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만 있다면 진부한 일상에서도 가슴 설레는 무엇인가는 발견되기 마련이라는 믿음, 이러한 믿음을 나는 종교 이상으로 신봉한다.

아무튼 골프장 출근을 사흘째 하던 날 갯벌에서 진귀한 사람을 만났다. 이른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라고 하는 데서 과장 직급으로 출퇴근을 했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엊그제 돌연 사표를 내고 갯마을로 돌아왔다. 대기업 취직을 위해 노심초사 밤잠을 못 자고 낮잠이나 그것도 쪽잠으로 잠깐씩 해결했던 사람이, 그야말로 간난신고 끝에 그토록 원하던 대기업 로고가 박힌 명함을 지갑에 꽂고 다니게 되었던 사람이, 대리를 지나 과장에 이르고 보니 그 끝이 어느 순간 확연하게 보이더라는 것이었다.

 

▲ 경기가 있을 때의 대기시간

 

“뭐 여러 말 할 것도 없이 저라는 인간은 그냥 기능이 떨어지면 다른 것으로 교체가 얼마든지 가능한 소모품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어느 순간 갑자기 알게 되었을 뿐이에요.”

소모품, 자기는 명문대를 나와서 고시보다 어렵다는 대기업에 취직을 했으니 절대불변의 완성품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는 것, 절대불변의 완성품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런 완벽한 인간이 되고자 청춘을 불살랐는데 다 태워놓고 보니 완성품은커녕 그냥 소모품으로 끝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 어느 순간 보이더라는 얘기. 무슨 전설이거나 풍문으로 들은 소문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생생한 육성이었다. 이런 진귀한 이야기를 생생한 육성으로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니까 나는 행운아인 셈이었다.

그는 나이가 나보다 한참이나 어렸지만, 나는 그를 만나자마자 이내 존경심을 품고 말았다. 존경할 만한 사람을 발견하기가 하늘의 별을 따기보다 어려워진 세상에서 이런 사람과 대화까지 할 수 있다는 거, 이것은 정말이지 아무나 얻을 수 있는 행운이 아니었다. 물론 이 행운은 공짜로 내게 온 것이 아니었다. 언제 어디서나 눈을 크게 뜨고 귀를 기울이며 가슴 설렐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기에 가능한 행운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것이 내 욕심이었다. 세상 살아 있는 동안 마음껏 설렘을 당해보고 싶은 욕심 말이다. 이 욕심은 굳이 해명을 하자면 내가 서울 살림을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온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누군가 가령 마음껏 설렘을 당해보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질문을 내게 던진 사람을 나는 아직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다.

 

▲ 새벽 작업의 흔적인 발자국들

 

내게 작은 관심이나마 갖고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시골 살림이 어떠냐는 정도의 것이었다. 물론 내게서 뭔가를 배우겠다고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아니다. 도시에서 큰 불만 없이 오래 살아온 사람 특유의 시골에 대한 우월감 플러스 동정심 그리고 불가사의하다는 느낌의,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충 그런 건성질문을 슬쩍 던져보는 것일 뿐이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주저도 없이 말한다. 사람이 시골생활을 한다는 것은 천국을 사는 것이라고, 나는 감히 그렇게 생각한다고 매우 진지하게 말하곤 한다. 이때의 천국은 물론 종교에서 말하는 그런 천국은 아니다. 말하기 좋고 알아듣기도 좋게 그냥 천국이라고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라든가 극락 같은 세상은 나는 사실 좋아하지도 않고 선망해본 적도 없다. 모자람도 없고 넘침도 없는, 불편함이란 전혀 없다고 알려져 있는 그런 천국이란 곳에서 인간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예전에도 수없이 가져보았고, 지금도 여전하다.

모자란 것이 있다면 채우고, 넘치는 것이 있다면 덜어내며, 불편한 것이 있다면 좀 더 편한 쪽으로 일을 만들어내는 것, 그런 방법을 탐구하고 모색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홀연 찾아드는 뿌듯함, 이게 바로 인간의 행복이라고 믿고 있는 나는 어쩌면 커다란 착각의 늪에 빠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또 어떤가.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손해를 끼치지 않는 착각이라면 그 착각은 머잖아 착각이란 이름표를 떼버리고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유행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 오후 작업

 

시골 살림이 천국인 이유는 생명을 지닌 거의 모든 것들과의 만남이 가능하다는 점을 첫손에 꼽아야 할 것이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볼 수 있다는 것이 그 두 번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무엇이든 해볼 수 있다는 것은 유행가 ‘서울의 찬가’에서 주장하는 그런 허접한 것이 아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가질 수 있고, 뜻하는 바는 무엇이나 이룰 수 있다”고 말하는 ‘서울의 찬가’는 사실 어마어마하게 폭력적이고 착취에 대한 선동이며 무책임한 거짓말의 나열에 불과하다.

어느 하루 어떤 사람이 내게 물었다. 갯벌 일 그거 엄청나게 힘들지 않아? 그 질문에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또 말했다. 골프장에 일자리가 나왔는데 어때? 그 말을 듣고도 처음에는 그냥 피식 웃어버렸다. 갯벌 일을 어찌 감히 골프장 따위와 맞바꾼단 말인가 하는 심중의 생각은 물론 발설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얘기를 듣고 나니 부쩍 흥미가 당겼다. 골프장의 잔디는 골프공으로 한 대 얻어맞으면 다음 날 곧바로 죽어버린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약한 식물이 있다면 그건 아마 골프장의 잔디일 것이다. 세상에, 한 대 얻어맞았다고 생명이 끝나버리다니. 뿐만이 아니다. 골프채가 잔디를 직접 가격하면 잔디와 함께 그 아래 깔린 모래가 허공으로 산산이 흩어져 날아가 버린다.

골프공에 얻어맞고 죽은 잔디를 뽑아내서 구멍을 채우지 않으면 골프장은 골프장으로서의 위상이 흔들린다. 골프채에 직격탄을 맞은 자리 또한 채워줘야 한다. 구멍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골프공이 굴러가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구멍 채우는 그 일을 누가 할 것인가. 비싼 임금을 주는 정규직 사원을 시킬까? 아니다. 경기보조원으로 번역되는 캐디에게 시킬까? 역시 아니다.

가장 낮은 임금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부려먹을 수 있는 용역이란 제도가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언제 어떤 계기로 정착됐는지 그 기원까지 여기서 톺아볼 필요는 아마 없을 것이다. 어쨌든 용역이 있다. 상해를 입어도 회사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임금이 낮다고 투정을 부리면 언제라도 잘라버릴 수 있는, 복지는커녕 탈의실 하나도 없지만 불평 한 마디 안 하는 그야말로 하루살이 인생 같은 용역, 그것이 내가 제안 받은 골프장 일자리였다.

 

▲ 골프공에 얻어맞고 뚫린 구멍
▲ 금방 맞은 자리

 

모르겠다. 갯벌 일이 왜 골프장 용역보다 못 하다는 인식을 그 사람이 갖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대충 알겠다는 느낌은 있었다. 그러나 그런 건 뭐 중요하지 않았다. 아하, 골프장이 그런 거였어? 하는 새로운 앎에 대한 설렘이 내 가슴을 채우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마침내 그 새로운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하루에 두 번 출근하고 두 번 퇴근하는 그 구조가 내 마음에 들었다. 경기가 없는 시간에 작업을 해야 하니까 새벽 다섯 시에 작업을 시작하고, 손님이 들기 시작하는 일곱 시 삼십분에 아침 작업을 끝낸다. 그리고 다시 경기가 뜸해지는 오후 다섯 시 삼십 분에 저녁 작업을 시작해서 여덟 시에 끝낸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까 싶지만, 있다.

만약에 골프장 일이 가령 정규직이었다면 나는 아마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거절했을 것이다.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이라도 이런저런 보험이 적용되는 등의 신분보장이 어느 정도 되는 것이었다면 그 또한 거절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안전한 일자리는 내게 아무런 설렘도 주지 못하니까. 아무런 설렘도 없는 그런 일자리나 얻자고 시골 살림을 시작한 것은 아니니까.

시골 살림이 천국이라고 했지만 그 천국은 누가 만들어서 내게 주는 것이 아니다. 마치 한 벌의 옷을 만들어 나가듯이, 집을 지어 가듯이 내가 내 손으로 내 몸에 맞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문득 행복의 실체를 잡았다는 느낌이 든다. 돈을 써야 할 일이 너무 많은 도시에서는 그게 거의 불가능하지만, 시골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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