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떠나다> 무턱대고 떠난 일주일 동안의 ‘내일로 여행’

 

정말로 무턱대고 시작한 일주일 동안의 여정이 끝났다. 누군가 20대는 사랑이 전부였던 시절이라 말하지만 사실 우리 또래는 사랑 외에도 너무 많은 고민들과 해야 할 일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러면서도 “너희들은 겪어봐야 해”라며 고생을 강요받는 게 우리들 20대가 아닐까 싶다. 허겁지겁 한 학기를 마치고 순식간에 다가온 방학의 공백기에 공허함도 있었지만 동시에 하고 있던 일들,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요 근래 머릿속이 복잡했다. 진로와 스펙, 가족과 사랑은 물론 자잘한 낭만과 현실 사이에서 머릿속과 어깨엔 바위 같은 짐 덩어리가 가득 쌓인 것 같았다. 새벽 3시에 가까운 때에, 떠나야겠다고 결정했다. 다음날 아침 즉흥적으로 5일 권짜리 ‘내일로 여행(만 25세 이하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국철도공사에서 판매하는 패스형 철도 여행 상품)’ 티켓을 끊고 배낭을 멨다.

 

 

핸드폰을 포함한 디지털 제품을 멀리하고자 했기 때문에, 그 때 그 때 적지 않으면 수증기처럼 증발해 사라져버릴 기억들을 적어두기 위한 노트와 펜, 그리고 몇 가지 옷과 필수품만 챙겨 나왔다. 종착지도 정해지지 않은 채 집을 나서는 자체가 무척 신이 났던 것 같다. 기상 예보도 보지 않고 나왔는데 여정의 첫 출발은 맑은 하늘이 반겨주었다. 페퍼톤스의 노래 ‘행운을 빌어요’를 들으며 일단 영등포역으로 향했다.

 

 

휴식을 위해 떠난 여행은 아니었다. 조금 많이 걷고, 덥고 굶주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었지만 전혀 장애 요인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여행은 잊었던 나의 모습과 새로운 나의 모습이 만나는 장이다. 조금 더 어렸을 적의 나는 굉장히 당차고 부끄럼 없는 아이였다. 낯선 공간과 사람을 좋아하고 먼저 다가설 줄 알던 나였는데, 최근 들어 낯선 곳에서 움츠러들고 사회적인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모습 때문에 정체성을 부정하고 있는 답답함(?)이 들었다. 잃었던 모습을 되찾길 간절히 바랬지만 한편으론 평범한 어른으로 변화해 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일까 이해하는 것은 이 여행의 많은 미션 중 하나였다. 그래서 이번 여행의 이름은 이렇게 정했다. ‘네 멋대로 해라!’

 

 

지난 여행들을 돌이킬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사람이다. 일주일동안 천 여 장이나 찍고 찍힌 사진들을 보며 ‘그 때 그 곳에 누가 함께 있었나’를 생각하게 된다. 설렘으로 부푼 마음을 안고 당분간 멀리할 SNS에 여행의 시작을 알렸다. 남부지방으로 내려갈 것을 알게 된 지인들이 친히 방문을 요청했다. 반가운 옛 친구는 자신도 ‘내일로 여행’을 계획 중이라며 “네가 먼저 경험해 보고 나에게도 알려줘”라며 미리 조언을 구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만나는 빈도가 줄어 서먹했던 같은 과 동기 중 한 명과 우연히 연락이 닿아 첫 번째 경유지로 대전을 택했다. 기차 창밖으로 서서히 도심 풍경이 사라지고 산과 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누나!” 대전역에서 유명한 ‘성심당’ 빵집에 줄까지 서가며 빵을 사먹고 기다리니 한 살 어린 동기가 해맑게 웃으며 내 쪽으로 뛰어왔다. 재수 후에 들어간 대학교라 같은 학번 동기들은 대부분 나보다 어리지만 그깟 한 살 차이 나이로 ‘친구’의 경계를 세우는 것도 싫고 유난히 재수생 비율이 높은 우리 기수는 나이에 상관없이 허물없이 곧잘 지내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년이 올라가니 서로의 길을 찾아 바삐 찢어지는 바람에 대학 동기들에게 소홀해지던 터였다. 그러나 학교 밖에서 만난 동기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학교에서보다 반갑게 느껴져 색다른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

 

 

대전은 “과학!”하는 느낌이었다. 고향에서 만난 서울 동기, 낯선 지역에서 구세주처럼 만난 학교 친구로 우린 학교에서 못 다한 얘기를 나누며 버스를 타고 포털 사이트에서 추천해준 관광소로 향하다가 원래 목적지였던 수목원을 지나치는 바람에 다음 정거장인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 도착했다. 자전거 타기 좋은 공원으로 도시를 두르고 있구나 라고 생각할 때 버스정류장 바로 옆에 설치된 공공자전거를 보았다. 대전을 포함한 이번 여행지에서는 공공자전거 시설을 많이 이용할 수 있었다. 생태체험전시관에서 아담한 수목원을 관람하며 특이한 식물을 보고 하나하나 이름표를 확인했다.

 

 

“중고등학생 때 견학 오면 귀찮아서 대충 단체사진이나 찍어 끝내고 나가고 싶었는데, 이렇게 오니 신기한 것도 많고 재밌네.”

닥터피쉬 체험장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며 이상하게 기분 좋다고 얘기하던 동기 녀석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5살 정도 아이를 안고 아이와 함께 체험하던 아저씨도 비슷한 표정과 웃음소리를 냈다. 커피콩 나무, 모피를 두른 선인장들을 지나 전시관을 나오는데 어린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이 뛰어나오며 정수기 위에 놓고 잊은 핸드폰을 찾아다 전해주셨다. “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욕심이 없어”라며 동기가 고마운 그들을 칭찬했다.

 

 

바로 옆에 위치한 국립중앙과학관은 훨씬 크고 화려했다. 상설전시관을 몇 분 둘러보니 어렸을 때 분명 방문했던 적이 있던 것이 생각났다. 내가 성장해가면서 과학도 함께 발전을 했을 터, 어렸을 때 보지 못했을 3D 프린터 원리나 좀 더 향상된 로봇기능이 새롭게 전시되었다. 아마 향후 5년만 지나도 이 과학관은 또 한 번 갈아엎어야 될 지도 모른다. 미래도시 모형은 구식이 되어 다른 전시물에게 자리를 내줘야 할 테지.

 

 

열차를 타고 올 때도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방학 요맘때가 한창 ‘내일로’ 시즌일 때라 ‘내일로’ 승객은 필히 입석으로 다니게 된다고 들었는데, 열차 좌석의 2/3 정도가 비어 있었다. 덕분에 편히 앉아서 다녔지. 대전 중앙국립과학관 역시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나 가족 단위로 견학을 올 법도 한데 관람객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메르스의 영향이 확실히 크긴 큰가보다 싶었다. 사람도 많지 않았고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저것 모든 전시물을 체험해보았다. 꼬맹이 시절에는 선생님이 가지 말란 곳은 가지 못했고, 단체로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줄 서기가 귀찮아서 체험 자체를 포기하기도 했는데 그 때와는 다른 자율성을 갖고 기억을 더듬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대전에서 동기와의 첫 여정을 마치고 다시 홀로 기차에 올랐다. 역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 정읍으로 올라가는 기차에서 달을 보았다. 차창으로는 끝을 알 수 없는 산맥이 이어져 있었고 그 위로 떠오른 달은 서울에서 보는 달의 2배는 되는 것 같았다. “즐거웠어”라고 간단히 끝내기는 아쉬운 첫 날이었다. 학업도 진로도 연애도 지난 학기에 크게 덩어리졌던 고민과 복잡한 스트레스들을 내려놓고 스스로 어떤 존재인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찾길 바라는 방학의 시작이 된 여행의 첫 날, 달빛이 비추는 기차가 달리는 소리로 응원해주는 듯 했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구혜리 기자는 연세대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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