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좌충우돌 인도 여행기-16회

 

인도를 다녀온 사람들의 반응은 보통 두 가지다. 애정 혹은 진저리. 애정은, 드넓은 대지 위에 우뚝 솟은 수많은 문화유산, 그 속에서 맥을 잇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경의다. 반면 가난, 더러움, 무질서와 끊임없는 골탕, 치근거림은 인도를 몸서리치게 만드는 이유다. 필자는 두 가지를 모두 경험했다. 인도에 두 번이나 가면서 때마다 다시는 안 오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도 순간순간 용솟음치는 감동과 환희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인도는 그래서 애증의 또 다른 이름이다. 멀리 떠나 있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기억을 곱씹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그때 그 시절의 인도 유랑기를 펼쳐본다.

 

▲ 고아의 중심가



버스 타는 일은 늘 힘들었지만 더러는 즐거웠던 적도 있었다. 첫 번째 여행 때 카주라호를 향하던 버스 안에서의 기억은 떠올리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난다. 

무려 7시간을 내리 달리는 버스였다. 우리나라 마을버스 보다 아주 약간 컸다. 길은 험난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울퉁불퉁 정리 안 된 자갈밭(?)이었다.

버스 의자에는 정원이 있다. 그러나 그 정원이 무시되는 곳이 인도다. 겹겹이 층층이 쌓아올리는 탑 마냥, 2인석에 4인이 앉는 것은 기본이다. 맨 뒷자리는 딱 보니 4명이 앉으면 될 것 같았다. 공간 없이 꽉 껴서 말이다.

그런데 맙소사.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들더니 맨 뒷좌석 손 한 뼘만 한 작은 공간에 사정없이 엉덩이를 끼워 넣었다. 뒷자리에 앉은 사람 수를 세어보니 허걱, 자그마치 7명이다. 누군가가 늦게 온 사람은 빠지라는 신호를 줬지만, 당사자는 일단 무시. 덕분에 모두가 안락한 등받이를 포기해야만 했다. 진짜 재밌는 것은 그 다음이었다. 

버스가 돌밭 같은 도로를 질주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종종 허공을 가르고는 했다. 순식간에 돌에 걸려 점프하는 때가 많았던 것이다. 그 순간, 버스는 상공을 가르는 비행기가 됐다. 높게 올랐다가 바닥으로 착륙하는 순간, 뒷자리의 7명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재빠르게 움직였다. 되도록 먼저 착지해야 조금이라도 의자의 면적을 넓게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불꽃 튀는 기 싸움이 팽팽했다.

 

▲ 첸나이 에그모어역. 역주변에 숙소가 운집해 있어 많은 여행자가 몰린다.


필자 바로 옆에는 덩치 큰 아저씨가 끼어 앉아 있었다. 공중부양 할 때마다 아저씨와 신경전을 펼쳤다. ‘찌릿’ 곁눈질을 하며 서로가 먼저 의자 바닥에 닿기 위해 체조선수마냥 잽싸게 착지를 해댔다.

홈그라운드의 이점 탓이었을까. 한동안은 아저씨의 승리였다. 필자와 동시에 붕 떠올랐다가도 영락없이 아저씨의 엉덩이가 먼저 의자를 차지하곤 했다. 그러나 한결같은 승리는 없는 법. ‘쾅.’ “아아아…. 헤이, 플리즈.” 아저씨의 커다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아저씨가 자신의 다리를 가리켰다. 아저씨 양 옆에 앉은 필자와 가녀린 한 남자가 다리를 나란히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 아임 쏘리.”

자꾸 허벅지를 밟혀 아팠던 것인지 혹은 체력이 딸려 뒷심이 부족해진 것인지 아저씨의 행동이 처음보다 몹시 굼떠지기 시작했다. 버스가 한 번씩 덜컹 할 때마다 필자는 재빠르게 의자를 차지하고 앉은 반면 아저씨의 엉덩이는 그제야 저쪽에서 밀려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무거운 엉덩이가 필자의 허벅지에 푹 하고 내리 꽂혔다.

“아∼아 내 다리. 저리 좀 비켜요, 아저씨. 아이고”
아저씨의 오른쪽에 앉은 남자도 괴로움을 호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필자와 함께 나란히 깔린 것이었다.

뒷줄에 앉은 승객들의 모습은 누구하나 예외가 없었다. 행동이 굼뜬 사람이 결국 남의 허벅지 신세를 지는 상황이 여기저기서 속출했다. 버스가 한 번 뛰어 올랐다가 착지할 때마다 뒷자리에서는 작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고통을 호소했다가, 사과하는 모습들이 반복됐다. 버스에 오른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뒷줄 승객들의 얼굴에 피곤함이 더욱 깊어보였다.

 

▲ 고아에서 자주 이용하던 버스의 내부


그렇다고 서서 갈 수도 없었다. 버스 안은 한 발짝도 디딜 틈 없이 승객들로 빼곡했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기묘한 요가 자세를 하며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현장에 또 한 명의 요가인으로 투입될 자신이 없었다, 도저히.

그 많은 인원을 버스에 구겨 태우는 것은 정말이지 놀라웠다. 거의 기네스북 수준이다. 수많은 승객들이 버스 안에서 구겨져 있는 것은 물론 천장에는 수 명이 올라타고 옆면과 뒷면에는 여러 명이 와이퍼마냥 아슬아슬하게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버스가 돌부리에 걸려 휘청거릴 때마다 사람들이 떨어지고 다칠까봐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여러 가지 상황에 걱정이 앞섰고 버스에서 내릴 때는 계속되는 신경전에 지쳐 눈 밑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카주라호 버스 여행기는 언제 떠올려도 항상 웃음부터 나는 즐거운 기억이다.

인도에서의 기차 여행 또한 대체로 순탄하지 않았다. 표를 구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다. 일정에 맞춰 살 수 있는 가장 빠른 기차를 찾다보니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열악한 기차뿐이었다. 고아에서 호스펫으로 가는 기차는 그나마 좌석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등급 낮은 기차의 2등 칸이다 보니 환경이 썩 좋지 않았다.

20∼30분에 한 번씩, 어디선가 ‘박시시(구걸)’ 하는 걸인들이 나타났다. 대개가 위협적이었다. 무서운 표정으로 돌진, 으름장을 놓으며 반강요로 돈을 뜯는 이가 있었고 바닥을 기다가 필자의 얼굴을 향해 불쑥 손을 내밀어 깜짝 놀라게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 오르차행 기차. 에어컨이 설치돼 있는 시설 좋은 내부. 인도에서 이용했던 여러 기차 중 가장 시원하다.



기차가 두 시간쯤 달렸을까. 콩나물시루처럼 얽혀 있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한 남자가 나타났다. 반라의 차림이었다. 얼굴을 향해 느닷없이 손을 내민 그를 보는데 민망함이 밀려왔다.

그로부터 잠시 뒤, 입구 쪽에서 트랜스젠더 2인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두 사람은 힘찬 구령과 함께 요란스럽게 박수를 치며 시선을 끌었다. 인도 말이어서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정황상 이런 말이었으리. “자자! 돈들 내놔.”

그들이 필자 앞에 멈춰 섰다. “너! 머니(돈) 있어?” 그들의 질문은 협박에 가까웠다. 일순간 긴장. “노”라고 짧게 외쳤다. 다행히도 그들은 두 말 않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기골이 장대한 두 사람이 차량 밖으로 빠져나갈 때까지 실내에는 공포 분위기가 슬쩍 감돌았다. 하지만 다행히 별 탈은 없었다.

얼마 뒤 기차가 어느 역에 잠시 정차했을 때는 더 황당했다. 조양이 창문 밖에서 구걸하던 소녀에게 난데없이 따귀를 한 대 얻어맞았다. “돈이 없다”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창밖의 소녀가 손을 쭉 뻗어, 앉아 있는 조양의 얼굴을 내리친 것이다.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딱 한 번 편안한 기차 여행을 했던 적이 있다. 아그라에서 오르차를 갈 때다. 델리에서 아그라에 갈 때와 비교하면 진정 럭셔리, 호화 여행이었다.

 

▲ 고아 바닷가의 행상. 음료 수레를 끄는 소년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세상에나, 드디어 안락한 의자에 앉아서 가다니. 오 마이 갓, 게다가 에어컨까지 빵빵하네. 룰루~.’
조금 과장하면 감동에 사로잡혀 기쁨의 눈물이 와르르, 쏟아질 것만 같았다. 흐흐~.

타고 가는 기차의 사정은 객실마다 달랐다. 1, 2등 칸의 차이가 극명했다. 객실은 에어컨이 있는 곳과 없는 곳으로 나뉘어 있다. 에어컨 객실은 물론 없는 곳에 비해 비싸다.

인도만큼 생활 곳곳에서 빈부 차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또 있을까. 서민이 주 이용객인 짧은 구간을 운행하는 버스에는 에어컨은커녕 팬 하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게스트하우스 객실도 마찬가지다. 방을 구할 때는 직원이 으레 에어컨을 원하는지 원치 않는지를 확인하는데, 가격이 곱절 이상 차이나는 곳이 많다. 필자 일행은 스펙터클 폭염 때문에 웃돈을 주고 어쩔 수 없이 에어컨 방을 잡았다. 그러나 있으나마나 했던 적이 더 많았다. 오래된 삼성전자 마크 혹은 골드스타(금성) 글자를 매단 옛날 에어컨에서 미지근한 바람만이 힘없이 나풀거렸던 것이다. 웬만큼 쓸 만한 에어컨을 만나도 쓸데없기는 매한가지. 과부하로 툭하면 동네 전기가 차단되는 바람에 에어컨은 눈으로만 즐기는 전시품으로 전락하곤 했다. 웃돈 주고 에어컨 방을 고집했던 아그라에서는 투숙 기간 내내 하루 한 시간이나 에어컨 바람을 쐤던가?? 그 바람 역시 뜨뜻미지근했다.

식당에서도 에어컨 사용료를 따로 내고는 했다. 계산했던 밥값보다 지불해야할 돈이 더 많아 이상하다 생각하면 어김없이 에어컨 사용요금이 딸려 나온 것이었다. 여행 중 묵었던 여러 숙소에 비하면 그나마 식당의 에어컨은 훌륭했다.

오르차 갈 때 이용했던 기차 같은 시설을 자주 이용했더라면 그나마 여행이 덜 힘들었을 텐데, 그런데 참 희한하다. 그 상황에 처해 있던 순간에는 진저리가 처졌던 모든 일들이 기억을 곱씹을 때만큼은 더욱 커다란 웃음을 안기고는 한다. ‘고통을 즐겨라’라는 말이 그래서 생긴 것일까. 시간이 지나면 어떤 고통은 삶의 즐거움과 나아가 큰 교훈이 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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