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탄신은 기념하지 마세요
세종대왕 탄신은 기념하지 마세요
  • 엄민용 기자
  • 승인 2015.07.27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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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우리말 달인’ 엄민용의 ‘우리말 나들이’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제목을 보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렸을 듯합니다.

하지만 진짜로 세종대왕의 ‘탄신’을 기념하는 것은 좀 우스운 일입니다. ‘탄신(誕辰)’은 “임금이나 성인이 태어난 날”을 가리키는 말이거든요. ‘辰’은 “때, 날짜, 하루” 등의 뜻을 지닌 ‘신’자입니다.

우리가 기념해야 하는 것은 세종대왕의 ‘탄생’이지, 세종대왕의 ‘생일’이 아닙니다. 물론 그 기념식은 생일에 열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3·1절을 기리는 것은 3·1운동에 담긴 나라사랑의 정신이지 1919년 3월 1일 그 자체가 아니듯이, 누가 태어난 일을 기념하고 축하해야지 그 날짜를 기념할 이유는 없습니다.
‘탄신’은 다른 말로 ‘탄일’ ‘생일’ ‘탄생일’로 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난해 충북 옥천에서 열린 고 육영수 여사 86회 탄신 숭모제 모습”이나 “단재 신채호 선생 탄신 132주년 기념 헌화식” 등의 예문에서 보이는 ‘탄신’은 ‘탄생’을 잘못 쓴 것입니다. 특히 “‘탄신에서 열반까지’ 성철 스님의 모든 것”이란 문장에서 보이는 ‘탄신’은 아주 이상합니다.

그리고요. ‘탄신’의 동의어가 ‘생일’(정확히 말하면 ‘탄신’이 ‘생일’의 높임말임)이므로, ‘탄신일’도 이상한 글꼴의 말이 되고 맙니다. ‘생일’을 ‘생일일’로 쓴 것과 같은 꼴이지요. ‘탄신일’은 ‘탄일’이나 ‘탄생일’로 쓰는 게 바른 표현입니다.

그런데요. 여기에는 하나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석가탄신일’입니다. 분명 ‘탄신일’은 바른 표기가 아니지만, ‘석가탄신일’은 예외적으로 쓸 수 있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1970년대 들어 불교계에서 “예수님이 태어난 12월 25일은 공휴일로 삼으면서, 우리가 예부터 믿어온 부처님이 태어난 날은 왜 공휴일로 삼지 않느냐”며 거세게 비난했습니다. 한 불교신자는 행정소송까지 제기했지요.

하지만 당시 서울고법원에서는 ‘이유 없다’며 각하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에 계류 중인 이 사안을 1975년 정부가 받아들여 국무회의에서 법정공휴일로 지정·공포했습니다. 그러면서 붙인 이름이 ‘석가탄신일’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우리말에 대한 지식은 ‘까마귀’급인 국무위원들이 모여서 정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이 때문에 ‘탄신일’은 바른말이 아니지만, ‘석가탄신일’은 고유명사가 됐습니다.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도 ‘석가탄신일’과 ‘부처님오신날’을 모두 고유명사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충무공탄신일’도 고유명사로 올려놓았고요. 

그러나 ‘탄신일’은 어느 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은 말입니다. ‘세종대왕탄신일’ 등도 고유명사로 올라 있지 않습니다. 반면 전·현직 국립국어원 관계자들이 2007년 함께 엮은 <방송 뉴스와 어휘 선택>(비매품)에는 ‘탄신일’이 옳지 않다는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우리가 ‘성탄절’을 ‘성탄일’로는 써도 ‘성탄신일’로는 쓰지 않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탄신일’은 분명 바른말이 아닙니다.

따라서 새로운 출발을 알린 안전행정부가 이참에 ‘석가탄신일’과 ‘충무공탄신일’을 ‘석가탄일’과 ‘충무공탄일’로 바로잡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경향신문 엔터비즈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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