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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의 말씀은 계시지 않는다

<연재> ‘우리말 달인’ 엄민용의 ‘우리말 나들이’ 엄민용 기자l승인2015.08.06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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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공비례(過恭非禮)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나친 공경은 오히려 예의에 어긋난다는 얘기죠. 이는 행동뿐 아니라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는 ‘과공비례’한 표현이 적지 않습니다. ‘말씀이 (안) 계시다’라는 표현도 그중 하나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간곡한 부탁의 말씀이 계셨다”라거나 “말씀이 안 계셔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따위처럼 ‘말씀이 계시다’라는 표현을 자주 쓸 듯합니다. ‘계시다’가 ‘있다’의 높임말이다 보니, 존경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계시다’가 ‘있다’의 높임말이기는 하지만, 아무 때고 ‘있다’를 ‘계시다’로 높여 쓸 수는 없습니다. ‘계시다’는 ‘있다’의 여러 의미 중에서 ①사람이 어느 곳에서 떠나거나 벗어나지 아니하고 머물다.(그는 집에 있는다고 했다 → 할아버지께서 집에 계신다고 했다) ②사람이 어떤 상태를 계속 유지하다.(가만히 있어라 → 편안히 계세요 ③앞말이 뜻하는 행동이나 변화가 끝난 상태가 지속됨을 나타내는 말.(아이가 앉아 있다 → 할아버지가 앉아 계신다) ④앞말이 뜻하는 행동이 계속 진행되고 있거나 그 행동의 결과가 지속됨을 나타내는 말.(동생이 지붕을 고치고 있다 → 아버지께서 지붕을 고치고 계신다) 따위에서만 높임말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즉 ‘계시다’는 사람(그중에서도 윗분)이 있다거나 사람이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을 높일 때 쓰는 말입니다. 동물이나 사물에는 ‘계시다’를 쓸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가 허리를 펴고 계신다’는 가능하지만 ‘구부러진 철사가 펴지고 계신다’라고 쓸 수는 없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조시고 계신다’는 가능하지만 ‘강아지고 졸고 계신다’ 역시 쓸 수 없지요. ‘사장님이 서류를 정리하고 계신다’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사장님 서류가 계신다’라고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따라서 ‘할아버지께서 말씀을 하고 계셨다(할아버지께서 말씀을 하셨다, 할아버지의 말씀이 있으셨다)’는 돼도 ‘할아버지의 말씀이 계셨다’는 안 됩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귀를 잡수시어 아무것도 못 들으셔” 따위 문장에서 보이는 ‘귀가 잡수시다’도 과공비례가 빚은 해괴한 표현입니다.

‘귀(가) 먹다’의 높임말이 ‘귀(를) 잡수다’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는 ‘먹다’의 의미를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잡수다’는 “음식 따위를 입을 통해 배 속에 들여보내다”를 뜻하는 ‘먹다’의 높임말입니다. “조반을 잡쉈다”라거나 “아버지께서 진지를 잡수고 계신다” 등으로 쓰이죠.

그러나 ‘귀가 먹다’에서 쓰인 ‘먹다’는 “귀나 코가 막혀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다”를 뜻하는 말입니다. 즉 “귀가 막혔다”는 의미인 것이죠.

코가 막힌 것을 “코를 잡수셨다”로 쓸 수 없듯이, 귀가 막힌 것을 “귀를 잡수셨다”로 쓸 수는 없습니다. 윗사람에게는 ‘귀가 잘 들리지 않으신다’ 정도로 표현하면 됩니다. <경향신문 엔터비즈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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