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고운 처자들에 감히 물풍선을? 에잇, 받아라∼너도 받고 너도 받아라!”
“이 고운 처자들에 감히 물풍선을? 에잇, 받아라∼너도 받고 너도 받아라!”
  • 문지연 기자
  • 승인 2015.08.25 09: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 좌충우돌 인도 여행기-20회

 

인도를 다녀온 사람들의 반응은 보통 두 가지다. 애정 혹은 진저리. 애정은, 드넓은 대지 위에 우뚝 솟은 수많은 문화유산, 그 속에서 맥을 잇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경의다. 반면 가난, 더러움, 무질서와 끊임없는 골탕, 치근거림은 인도를 몸서리치게 만드는 이유다. 필자는 두 가지를 모두 경험했다. 인도에 두 번이나 가면서 때마다 다시는 안 오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도 순간순간 용솟음치는 감동과 환희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인도는 그래서 애증의 또 다른 이름이다. 멀리 떠나 있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기억을 곱씹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그때 그 시절의 인도 유랑기를 펼쳐본다.

 

▲ 델리 빠하르간즈

 

델리. 태어나 처음 하는 배낭여행의 시작점이었다. 여행에 대한 갖가지 설렘이 증폭된 곳이었다. 종교적 색채가 강한 인도 특유의 문화를 접하며 여러 가지 호기심이 치솟는 장소이기도 했다.

반면 갈피를 못 잡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처자들을 어떻게 골려 먹을까 고민하는 사람들로 인해 자주 기분이 언짢았던 동네이기도 했다. 느닷없이 선심을 쓰며 다가온 어떤 이들이 난데없이 거액을 요구하며 손을 벌렸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때로는 몹시 위협적이며 공격적이어서 흠칫 놀라기도 했다. 상상 그 이상의 소음과 공해, 혼돈과 무질서 또한 여행의 자유와 즐거움을 저해하는 버거운 요소들이었다.

여행의 자유라는 기쁨은 온데간데없고 갖가지 괴로운 요소들로 인해 어웅하게 파인 가슴이 몹시도 시렸던 어느 날, 느닷없이 축제가 눈앞에 펼쳐졌다. 축제는 여행에 지쳐있던 마음을 해갈하는 또 다른 천연수와 같았다. 

3월. 우리나라의 한 여름과 같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샤일과 와히드가 필자 일행을 찾아왔다. 그들의 안내에 따라 관광안내소와 연계, 여행객들이 하루 이틀 머무는 숙소로 향했다.

 

▲ 델리 코노트플레이



그런데 가는 길이 수상했다. 동네 꼬마들이 밑도 끝도 없이 필자를 향해 풍선을 던지는 것이 아닌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 대부분은 조준에 실패, 풍선이 필자의 발아래로 ‘흉’하고 떨어져 ‘툭’ 하고 터져버렸다. 터진 물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내용물이 가관이었다. 별의 별 색의 물감이 응고돼 풍선 안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휴~맞았으면 진짜 큰일 날 뻔 했네….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래?’

동네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물 풍선 투척 흔적이 곳곳에서 확인됐다. 벽면이며 자동차며 상점의 간판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가지각색으로 얼룩덜룩 했다. ‘어라?’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예사롭지 않았다. 얼굴과 옷가지에 오색 찬란 무지개 색 물감을 범벅 하고 여기저기를 신나게 누볐다. ‘뭔가 있네, 있어.’

몇 번 왔던 익숙한 숙소여서 거리낌 없이 앞장서서 계단을 올라갔다. 옥상에 이르러 조금 전의 일을 떠올리며 방어 태세를 하고 문을 빼꼼 열었다. 그 순간, 누군가가 갑자기 문을 확 끌어 당겼다. 동시에 거대한 물 풍선이 목덜미를 향해 슝~ 하고 날아왔다. ‘퍽’.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가격 당한 흰 옷을 내려다보니 퍼런 물감이 물결을 치며 스멀스멀 번지기 시작했다. 눈 깜짝 할 사이 벌어진 일이 몹시 당혹스러워 어쩔 줄 몰랐다.

 

▲ 빠하르간즈



얼떨떨해 하는 필자와 조양의 표정을 보며 물 풍선을 던진 한 남자가 소리쳤다. “해피 홀리!!”

그랬다. 이날은 인도에서 가장 큰 축제 중에 하나로 꼽히는 ‘홀리(Holi)’가 열리는 날이었다. 홀리는 봄이 오는 것을 기념하는 힌두교의 축제다. 매년 3월 즈음에 열린다.

이날은 형형색색의 가루와 물을 아무에게나 뿌리며 활기찬 봄을 축하하고 결속을 다진다. 신분, 계급, 지위 등 카스트도 무시된다. 계급에 갖춰 웅크려 사는 천민도 이날만큼은 허리를 곧추세운다. 신분과 계급에 갇힌 이들에게 홀리는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인 셈이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하나 돼 즐기는 축제, 외국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좋은 표적이 되곤 한다.

필자는 그날따라 가방 안에 예쁘게 접어놓은 흰 티셔츠에 마음이 꽂혔다. ‘오늘은 좀 산뜻하게 보이겠노라’며 새로 산 티셔츠를 정갈하게 차려입었더랬다. 그런데…흐미….

뭐, 이쯤 되니 이제 인정사정 볼 것이 없었다. 눈 꼬리 입 꼬리 한 번 치켜세우고 큰 소리로 외치며 돌진했다.
“받아라! 너도 받고, 너도 받아라!”

 

▲ 염색제와 장신구를 파는 할머니들



숙소에 마련돼 있는 온갖 물 풍선을 정신없이 집어 들었다. 샤일과 와히드, 처음 보는 그들의 친구와 숙소에서 일하는 네팔청년, 일본에서 건너온 다케시를 향해 사정없이 물 풍선을 던지고 또 던졌다. 동행인 조양을 향해서도 강속구를 날렸다.

서로에게 물 풍선을 던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지금 머물고 있는 옥상을 요새 삼아 앞, 뒤, 옆 건물 옥상까지 차츰차츰 공격의 진영을 넓혀갔다. 벽 아래로 숨어 있다가 건너편 옥상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면 사정없이 물 폭탄을 투하했다. 물불 안 가렸고, 상대가 누구인지 신경도 안 썼다.

“아싸, 맞았다. 하하하하∼!”
“야, 네 얼굴 좀 봐. 꼴이 그게 뭐냐. 깔깔깔.”
“네 옷은 또 어떻고. 케케케.”

숙소 안팎 사람들이 서로서로 물 풍선을 던지고 가루를 뿌리며 한바탕 축제를 즐겼다. 국적과 인종을 초월한 동심의 발현이었다.

 

▲ 홀리 축제를 신나게 즐기느라 못쓰게 된 옷



숙소 옥상에 멀끔한 차림의 사람은 이제 단 한 명도 없었다. 외국인이란 이유로 필자 일행과 일본인 청년 다케시는 더욱 많은 공격을 받았다. 흰 티셔츠를 도화지 삼아 수 십 개의 색을 그려 넣었기에 본디의 색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머리가 훌렁 벗겨진, 물에 빠진 생쥐마냥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만신창이였다.

그래도 좋았다. 인도 사람들과 하나 돼 동심으로 돌아간 경험이 티셔츠 몇 장의 가격보다 훨씬 값졌기 때문이었다. 뜻하지 않은 축제의 경험은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하지만 축제 후유증은 적지 않았다. 한국에서 달랑 하나 가져온 신용카드가 이날 축제를 신명나게 즐기는 바람에 마그네틱선이 고장 나 도통 쓸 수가 없었다. 덕분에 카드가 절실했던, ‘반 걸인’ 생활에 직면했을 당시에 아예 써먹지를 못했다. 이날 조양 카드까지 망가졌으면 어쩔 뻔 했을까. 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게다가 잃어버리지 않겠노라고 복대에 곱게 보관 중이었던 여권이 푸르스름한 색으로 물이 들어버렸다. 고이고이 간직하자며 배에 철썩 붙여 놓았던 여권이 알 수 없는 색으로 바뀌고 보니 왠지 모를 걱정이 앞섰다.

 

▲ 홀리



아니나 다를까. 출국하는 날 출입국 직원이 고개를 갸우뚱 하며 여권 한 장 한 장을 꼼꼼히 들춰보기 시작했다.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저기 말이야. 이거 홀리 축제 때문에 요래 된 거야.”

“흠~” 그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 봐.” 이내 의심을 한 방에 거두더니 어서 가라고 손짓을 했다.

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출장 때문에 예정에 없던 일본에 급히 갈 일이 있었다. 사전에 계획했던 여행이 아니었기 때문에 여권을 꼼꼼히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일본에서 돌아오는 길, 출입국 직원이 인도 출국 때처럼 여권을 열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고개를 이리 갸웃 저리 갸웃 했다. 그는 도통 보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순간 겁이 덜컥 났다.

▲ 홀리포스터

‘이대로 안 보내주고 이민국 수용소 같은 곳으로 보내버리는 것이 아닐까.’
“이 여권 왜 이래? 문제 있는 것 아니야?”
“아, 그거 인도에서 ‘홀리’라는 축제를 즐기다가 물감에 젖어서 그래. 아무 문제없어.”

필자는 ‘나는 전혀 위험하지 않은 상냥한 보통 시민’이라는 듯 어색하게 배시시 웃었다.

“저기 뒤에 쫙 서 있는 한국 사람들, 나와 같이 동행한 취재기자들이야.” 묻지도 않은 말을 내뱉으며 ‘일행이 있으니 위험인물이 아니다’라는 점을 열심히 강조해댔다. 직원이 상황을 이해했는지 다행히 더 이상 붙잡지는 않았다. 천만다행이었다.

“더는 의혹의 시선을 받지 않겠다.” 결심을 하고는 다음에 예정된 중국 출장 당시 제일 먼저 여권을 새로 발급받았다. 뻣뻣하고 깨끗한 새 것을 받아드니 여러 가지 기억들이 새록새록 끄집어 올랐다. 누가 보면 처음 받은 여권이 마냥 신기하고 좋아서 저런가 싶을 만큼, 한 장 한 장을 들추며 웃고 또 웃었다. ‘아~ 간 졸이며 즐거웠던 그때 그 기억들이여…. 후후훗!’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 뉴텍미디어 그룹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다 07108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 인터넷 : 서울, 아 52650 (등록일·발행일 : 2019-10-14)
  •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영필
  • 편집국장 : 선초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목로 72(신정동)
  •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전무이사 : 황석용
  • 고문변호사 : 윤서용(법무법인 이안 대표변호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 위클리서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weeklyseoul.net
저작권안심 ND소프트